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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허위의식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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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00535394901_20150710.JPG나는 입으로 걷는다

오카 슈조 글, 다치바나 나오노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웅진닷컴 펴냄(2004)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다른 이들의 고통보다는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그렇다. 아픔을 겪는 사람을 보고 울 때도 실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자기 연민으로 서러워 눈물이 난다. 우리 모두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일본의 도쿄 도립 특수학교에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쳐온 오카 슈조는 ‘약자를 이해하고 돌봐야 한다’고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선을 동화 속에서 보여준다. 단편집 <우리 누나>에서는 장애인 누나를 부끄러워하는 동생, 걸음이 불편한 아이를 괴롭혀 놓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 등을 통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을 섬뜩할 만큼 정직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부끄러워진다.

어린이문학은 종종 장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데 장애아들을 그리는 시선이 편견이나 도식에 차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린이문학이 교육적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마치 건강한 사람들이 돕지 않으면 장애아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식의 절름발이 배려를 가르치려 들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오카 슈조의 동화는 ‘약자를 돕는다’는 우리의 허위의식조차 깨부수는 충격을 안긴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치바나는 구태여 도움을 기다리지도 않고, 도움이 필요해 청할 때는 당당하다.

스무 살이 넘었지만 몸이 아파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다치바나는 아이처럼 몸도 작고 등뼈도 마른 생선처럼 동그랗게 굽었다. 날이 맑은 어느 날, 다치바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친구를 만나러 갈까 싶지만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기다란 다리 끝에 바퀴가 달린 침대 위에 누워 사람들을 기다린다. 백미러 구실을 하는, 침대에 달린 거울을 보고 있다가 근처에 사람이 나타나면 부른다. 그러고는 “좀 밀어주시겠습니까?”라고 청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친구의 집에 가겠다고 결정하고, 필요하면 침대를 밀어달라고 당당하게 부탁하고, 도움을 얻는다.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해하며 바쁘다고 핑계를 대거나 멀찍이 물러나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로 여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처음 만난 학생이 침대를 밀며 걱정을 하자, 다치바나는 “이런 식으로 가면 돼요. 난 걷지 못하니까 이렇게 남의 도움을 받아서 가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오히려 다치바나는 “학생이 고생하는 거에 비하면 나 같은 사람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라며 상대를 위로한다. 오랜만에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만나 기뻐하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그것 봐, 나도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고.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도 있단 말야”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오카 슈조는 이렇듯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전복한다.

인간은 힘센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훌륭한 지혜를 생각해냈다. 다치바나의 말처럼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과학기술과 문명을 이룩한 오늘날 모두들 저 혼자 살겠다고 아등바등한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거나 기분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귀 기울여 듣는 법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법도 잊었다. 다른 사람들을 탓할 거 있나, 바로 내가 그렇다. 초등 3학년부터.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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