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변신 로봇을 좋아하는 이유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바바빠빠
아네트 티종, 탈루스 테일러 글·그림, 이용분 옮김/시공주니어(1994)
아네트 티종과 탈루스 테일러의 그림책 <바바빠빠>는 그림책의 고전 중 하나다. 1970년 첫 작품이 나온 뒤 쉰 편이 넘는 후속작이 나왔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어로 솜사탕이란 뜻을 지닌 상상 속 존재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 꽃밭에서 태어난다. 바바빠빠는 솜사탕처럼 덩치가 큰데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착한 바바빠빠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게다가 덩치마저 크니 집에서 함께 살기 어렵다. 프랑수아의 부모는 바바빠빠를 동물원에 보낸다. 그렇다고 동물원 역시 바바빠빠에 어울리는 곳은 아니다. 바바빠빠는 갈 곳도 없이 거리로 쫓겨난다.
큰 덩치,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능력. 그 때문에 바바빠빠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지만 바로 그 이유로 곧 영웅이 된다. 불이 난 집 근처에 있던 바바빠빠는 계단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구하고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나운 표범을 가두는 우리가 된다. 이제 영웅이 된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매정하게 동물원으로 바바빠빠를 쫓아냈던 프랑수아의 부모는 정원 한켠에 꼭 맞는 집까지 지어준다.바바빠빠는 실은 어린이책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의 변주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나 시골에서 구박을 당하며 자라는 고귀한 왕자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꿈이다. 아이들은 현실에서 상처를 받을 때면 자신이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은 아이가 현실을 잠시 버텨낼 수 있는 꿈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게 꼭 맞는 자리가 분명 있을 텐데 지금 나는 잘못된 운명을 맞아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들의 흔한 환상이다.어른들은 아이들이 늘 행복할 것이라 말하곤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서럽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무능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사랑받는 것 외에 아이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랑을 얻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도 많고 사랑을 주는 데 미숙한 부모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은 서럽기 마련이고 서러운 순간을 견뎌내기 위해 상상을 동원한다. 지금은 비록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지만 분명 내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야 생각하며 순간을 버틴다. 바바빠빠는 그런 아이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영웅이다.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