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강정연 글, 오정택 그림/라임 펴냄(2014)이제 여름방학이 끝났다. 그토록 기다린 방학인데, 모든 끝은 이처럼 벼락같이 찾아온다. 물론 엄마 입장이야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예전과 달리 고작 일기쓰기와 책 읽기 정도로 단출해졌지만 그래도 숙제는 숙제. 방학은 숙제를 남긴다. 하지만 숙제도 하기 나름이다. 이번 방학에 ‘장군이’처럼 특이한 숙제를 한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나의 친친 할아버지께>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장군이는 좀 특이한 숙제를 받았다. 선생님이 난데없이 “자기가 잘하거나 하고 싶은 걸 한 가지만 골라서 해보자”라고 방학 숙제를 정하더니 아이들에게 계획을 발표하자고 했다. 최고의 방학숙제로 뽑힌 아이에게는 소원을 들어 주겠다며 선생님 혼자 신이 났다. 하지만 장군이는 걱정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친구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 도무지 자신이 없다. 발표를 하려면 달달달 떨기 일쑤다. 잘하는 거라곤 우는 것밖에 없다.장군이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사업이 망한 뒤 아빠는 매일 술추렴이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아무런 보살핌 없이 방치된 장군이는 소심하고 자신 없는 아이가 되었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데 선생님조차 장군이 이름을 헷갈려 하거나 같은 반 창식이가 ‘뚱보 울보’라고 대놓고 놀리면 마음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말은 안 나오고 억울해서 눈물이 먼저 나온다. 그럼 또 놀림을 받는다. 주눅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방학이 시작되던 날, 속초에 사는 할아버지가 서울로 왔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읽고 쓰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상태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할아버지, 평생을 책읽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버지마저 집을 떠난 날, 할아버지는 장군이에게 말한다. “할아버지를 좀 부탁해.”<나의 친친 할아버지께>는 열두 살 소년이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기막힌 설정으로 시작한다. 의사에게 손자를 소개하며 “이 아이는 제 보호자 박장군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이리하여 장군이는 여름방학 내내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고, 운동도 함께 하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후 큰 소리로 읽으며 보호자 노릇을 한다. 할아버지 역시 장군이의 편지를 베끼며 치매를 극복하려고 애쓴다.쓰자고 하면 무척 고통스럽고 어두운 사연이 되었을 법한 열두 살 보호자 장군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작가는 밝고 따뜻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장군이 곁에 사랑의 화신이자 지혜의 어른인 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면 장군이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여름방학이 끝난 후 장군이는 달라졌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빠가 돌아온 것도 아니다. 오로지 친한 친구 같은 ‘친친’ 할아버지가 나누어 준 사랑의 힘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변할 수 있다. “잊지 마라. 할아버지는 장군이를 절대로 놓지 않아”라는 말을 기억해내자 장군이는 잊었던 꿈도 찾았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