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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손등에 1등 도장 찍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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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내인생의책 제공
인터넷 달군 운동회 사진 바탕으로
차별없는 세상 배워가는 학교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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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없는 운동회
고정욱 글, 우연이 그림
내인생의책·1만1000원

‘손에 손잡고 다함께 1등… 초등 운동회 사진 폭풍 감동’. 1년 전 인터넷에 뜬 한 장의 사진은 서열주의로 빳빳하던 대한민국을 촉촉하게 적셨다. 몸이 불편해 달리기 만년 꼴찌인 같은 반 친구를 위해 ‘다함께 1등’을 만든 용인제일초등학교 아이들의 감동 사연은 언론 보도로 증폭됐다. 남을 제치고 1등을 해야 하는 경쟁과열의 일상에서 작은 배려가 주는 힘은 그만큼 컸다.

되새길수록 흐뭇한 그 얘기를 바탕으로 한 동화가 나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 등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꿔온 고정욱 작가가 다름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를 되살렸다.

운동회를 앞두고 4학년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기국이만 빼고 말이다. 저신장 장애를 지닌 기국이는 연골이 형성되지 않아 몸통에 비해 다리가 짧다. 축구에서 현란한 드리블 기술로 돌파하는 솜씨가 일품인 기국이지만 달리기만 떠올리면 우울해진다. 3학년 때는 죽어라 뛰었는데도 1등이 골인했을 때 절반도 못 갔다. 나머지는 선생님이 손잡고 함께 달렸다. 왈칵 울음이 터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국이의 마음을 눈치챈 단짝 친구 윤섭이와 세찬이, 승찬이, 재홍이가 상처주지 않을 작전을 짠다. 기국이를 골인 지점 가까이서 출발하게 할까? 운동회 프로그램을 짜는 부모님들께 달리기를 빼자고 할까? 결국 아이들의 부탁에도 어른들은 최고 인기 종목인 달리기를 넣었다. 속상할 때면 기국이는 랩으로 마음을 달랜다. “운동회의 달리기 나는 제일 싫지/ 니들 롱다리로 열 걸음에 갈 거리/ 나의 숏다리로 백만 걸음 걸리지.” 출발선에 설 때까지 ‘누구도 먼저 들어가지 않고 다 같이 결승선에 들어간다’는 네 친구들의 계획을 몰랐다. 힘껏 달리던 친구들이 결승선 10m 앞에서 기다리다 기국이 손을 잡아줄 줄이야. 기국이는 처음으로 손등에 1등 도장을 받았다.

전교생 100명 남짓인 기국이네 작은 학교는 말로만 인성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선생님은 조금 다른 친구에 대한 배려와 나무와 꽃과 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친다. 반 친구들은 기국이가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와준다. 이런 광경이 서울에서 전학 온 동진에게는 낯설다. 동진이의 모습은 사실 무심하게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인지 모른다. 기국이가 동진에게 던지는 ‘돌직구’가 심술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아이들이 만든 ‘꼴찌 없는 운동회’에 박수만 보내고 있진 않은지 묻는 듯하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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