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와 함께 읽는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오이대왕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사계절·9000원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그 시절의 삶을 다룬 많은 소설을 읽다 보면 술 먹고 노름하고 바람피우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큰소리치고 군림하는 아버지들이 늘 등장한다. 한데 책을 읽다 보니 아버지가 가부장적 절대 권력자로서 군림한 것은 우리뿐 아니라 바다 건너 유럽에서도 비슷했던가 보다. 독일어권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오이대왕>은 가정에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 아버지의 모습을 판타지와 유머를 섞어 그려낸 작품이다.물론 가부장적 권위 운운한다면 요즘 아버지들은 억울해할 것 같다. 자신들의 아버지가 누렸던 권력과 존경은커녕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고 푸념할 법하다. 오죽하면 개와 아버지가 동시에 실종되면 누굴 찾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만약 사정이 이렇다면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오이대왕으로 보이니?” 하고 물어보길 바란다. 물론 그 전에 <오이대왕>을 읽는 건 필수다.주인공 볼프강의 아버지는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한다. 많은 아버지가 그렇듯 회사에서는 기를 못 펴고 집에 와서는 소리를 지르고 사사건건 간섭이 많다. 엄마는 가족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니 직장을 구하겠다지만 실천은 못 하고 있다. 여기에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와 모범생인 마르티나 누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 닉, 그리고 불량스러운 척할 뿐 실제로는 평범한 열네살 볼프강이 가족 구성원이다.이 평범한 가족에게 어느 날 기상천외한 일이 생겼다. 부엌 식탁 위에 왕관을 쓴 커다랗고 통통한, 마치 오이 같은 녀석이 등장했다. 이 녀석은 가족들을 보자마자 “짐은 트레페리덴 왕조의 쿠미오리 2세 대왕이다. 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편안한 잠자리를 대령하라”고 명령한다. 오이대왕은 백성인 쿠미오리들을 끔찍이 위해주었으나 배은망덕하게도 반란을 일으켜 잠시 피신한 중이라며, 곧 쿠미오리들이 자기를 모시러 올 거라며 거들먹거린다. 가족들은 오이대왕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지만 아버지는 솔깃해한다. 심지어 “주무시는 동안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라며 마치 신하처럼 오이대왕을 떠받든다.오이대왕의 등장은 내재해 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킨다. 그동안 가족들은 텔레비전도 아버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야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여행을 하거나 놀러 갈 때도 명령에 따르도록 했다. 엄마 역시 옷을 사거나 가전제품을 살 때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공짜로 얻었다며 둘러댔다.소설을 읽다 보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작가는 왜 뜬금없이 오이대왕을 등장시킨 걸까. 아버지는 왜 오이대왕에게 굽실거리며 신하 노릇을 한 걸까. 이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책의 메시지와 연결된다.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