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도 많은 그림책이 나왔다. 좋은 책도 많았고 기억할 만한 작가도 여럿 있었다. 다만 그 책들 대부분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초판 인쇄 부수는 계속 줄어만 간다. 이 와중에도 좋은 그림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참 대단하다. 더 놀라운 것은 재료비도 뽑기 어려운 상황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작가들이다. 믿기 어렵게도 여전히 뛰어난 젊은 작가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한해 우리 그림책은 몇 명의 새로운 작가를 만났다. 오늘은 그중에 꼭 말하고 싶은 작가를 모아서 이야기해보려 한다.색연필을 섬세하게 사용하여 수박 특유의 질감을 제대로 표현해낸 <수박 수영장>의 안녕달 작가는 2015년의 스타였다. 유난히 인성교육용 그림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던 2015년, 그의 책은 새로운 상상력과 재미만으로 적잖은 판매고를 올렸다. 서사가 약하고, 아이들이 감정을 이입할 적절한 대상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가 창조한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을 충분히 끌어들였다. 사물의 크기를 비틀어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그의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수박을 먹는 재미와 여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천유주 작가는 우리 그림책에 새 감성을 갖고 왔다. 도시에서 자라서 현대적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아이의 감성. 시골에서 자라고 전통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작가들과 그의 그림은 사뭇 다르다. 그림뿐 아니다. 그의 글에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나는 도시 아이 특유의 쓸쓸함이 있다. 쓸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쓸쓸하기에 더 섬세할 수 있고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 그림책은 그간 우리 아이들의 시각적 환경이나 정서적 풍경과는 제법 먼 곳에 위치하였다. 천유주는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과 거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진정한 동시대 작가다.상상력은 역시 그림책의 본령이다. 김상근 작가는 어디에 숨어 있다 튀어나왔는지 깜짝 놀랄 정도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두더지의 고민>은 친구가 없어서 고민인 두더지 이야기다. 두더지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땅속에만 있기 때문이다. 자기 세계에만 머무르려 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그 모습이 꼭 두더지다. 하지만 두더지에게 기회가 왔다. 눈이 온 것이다. 두더지는 늘 그렇듯 눈에 파묻혀 눈을 굴린다. 눈은 많은 친구를 감싼다. 곰도, 멧돼지도, 여우도 두더지의 눈덩이 속에 들어온다. 누구나 하나쯤은 잘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두더지는 커다란 눈덩이에 갇힌 친구들을 위해 동굴을 판다. 두더지 덕분에 모두가 무사히 탈출. 두더지에게 따뜻한 마음이 없거나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저 쑥스러웠고, 다가가기 어려웠고, 자기를 좋아해줄지 믿음이 없었을 뿐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김상근 그림책에는 설명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공감할 주인공이 있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어려움을 통과할 힌트를 얻는다. 아이들에겐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험이 필요하고 자기 삶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올해를 빛낸 우리의 멋진 젊은 작가들. 그들이 있어 그래도 나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