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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시간 많다고 사춘기가 이해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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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겨울방학이다. 방학하기 바로 직전까지 상담실이 붐볐는데, 다녀간 아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기 말, 특히 학년 말엔 예고 없이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거의 매해 학기 말에 갑자기 터진 일로 방학식날까지, 때로는 방학식 이후 며칠 동안을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을 만나며 해결의 과정을 거치곤 한다. 그럴 때는 ‘아, 왜 이제야…. 좀 더 일찍 드러났으면 더 잘 개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아이들 나름대로 참고 참았던 것이 삐져나오는 것이라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기 초는 낯설음에 대한 경계와 불안이 있다 보니 아이들이 예민해지는데, 학기 말에는 그사이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이 짜증과 화를 발산하게 되는 것 같다. 때로는 지치고 우울해져 눈물을 매달고 있기도 한다. 분노를 표출하는 쪽 아이들은 친구가 그냥 힐끗 보는 눈초리에도 발끈해서 “왜 째려보냐?”고 따져 묻고 윽박지르기 십상이다. 사실 이럴 때 어떤 대답을 해도 성에 차질 않는다. “안 째려봤는데?”라고 대답해도 거짓말한다고 다그치거나 그 말투가 싸가지 없다고 더 펄펄 뛴다. 무서운 기세에 눌려 아무 말 못 하고 있어도 “내 말 씹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복도를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쳐도 자신을 공격한다고 받아들여 바로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우울해하는 쪽 아이들은 눈물과 함께 마음의 불안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복잡해진 마음을 호소한다. 막상 대상들에게는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당해왔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요즘도 그 애를 볼 때마다 짜증나고 화가 치밀어 올라요. 그때 당했던 걸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요. 이런 생각 들면 안 되지만, 제가 당했던 것처럼 걔도 당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두통과 주의집중의 곤란, 기운 없음, 식욕부진, 메스꺼움, 소소한 감기 증상 등 신체적 증상들을 많이 호소한다. 병원에 가도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렇게 펼쳐진 상태에서 감정을 제대로 싸매지도 못하고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다. 방학이 잠깐이라 하더라도 숨 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잠시 덮어두고 관계의 시소에서 내려와 학업이나 새로운 이들과의 놀이에 집중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방학 기간의 충전으로 안정감과 자신감 향상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새로운 영역에서 만난 친구들과 돈독해져 오기도 하고 반대로 일탈경험이 더해져 오기도 한다. 긴긴 방학 동안 늦은 기상과 취침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하루 종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디지털 폐인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 나름의 복잡한 고민과 괴로움에 지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부모들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아이의 빈둥거리는 방학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부모 입장에선 꼭 공부가 아니라도 좋으니 활기차게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 아이가 매사 ‘열심히’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무서운 생각이다. 부모 자신이 안심하기 위해 아이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긴 학기 동안 끊임없이 학업과 관계에 지친 아이들을 여유롭게 쉬게 놔두질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겪었던 불안과 고민을 말하고 위로받길 원하지만, 말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을 테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말문을 더 닫고 혼자만의 속앓이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주세요’,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보세요’ 등의 권유가 적절하고 효과적일 수 있지만, 가정마다 사정이 달라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사춘기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건 아니다. 차라리 이번 방학 때 해보고 싶은 게 뭐가 있는지, 뭘 좀 더 채우면 다음 학기엔 나아질 것 같은지 물어보는 게 좋겠다. 평소 이런 대화를 나누는 관계가 아니었다면 한 번이 아니라 조금씩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려봐야 할 것이다. 학교 아이들에게 이번 겨울방학 때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틀 연속 자기, 잠자는 시간 줄여보기, 여드름 없애기, 살 빼기, 복근 만들기, 친구네 집에 초대 받아보기, 친구들이랑 겨울바다 가보기, 가족여행, 일본 애니메이션 자막 없이 보기, 완전 예쁘게 꾸미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가서 모델들이랑 사진 찍기, 한국사능력시험 잘 보기, 방과후수업 지각하지 않고 잘 듣기, 예·복습 하기 등’을 말했다. 가정에서도 같이 각자의 것들을 써보고 서로 해나가는 것들을 챙겨 봐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대단한 역할모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일이나 취미 활동 등을 꾸준히 해나가는 부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배우는 게 많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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