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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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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머나먼 여행
에런 베커 지음/웅진주니어 펴냄(2014)

글 없는 그림책은 아무래도 부모에게 부담스럽다. 어떻게 아이에게 읽어줘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문자에, 텍스트에 의존한다.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고, 아이들에게는 글보다는 다른 표현 방법이 더 강한 전달력을 갖지만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매체인 글자에 의존하고 아이 역시 그럴 것이라 착각한다.

적잖은 그림책 작가는 이런 부모들의 기대에 저항한다. 그들은 글로 전달하는 의미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그리고 아이의 상상력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 깊게 느낀다.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고 지금 어떤 발달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쓰는 단어도 다르고 이루는 문장도 다르다. 색깔도 질감도 다르다. 글자로 나열된 텍스트는 이런 아이들의 차이를 무시하고 아이를 하나의 생각 앞에 줄 세우게 한다.

에런 베커의 <머나먼 여행> 역시 글 없는 그림책이다. 주인공은 외로운 소녀다. 가족은 있지만 각자 바쁘다. 거리에서 노는 친구들은 자기와 마음이 맞지 않다. 늘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던 아이는 방에서 빨간 펜을 발견한다. 그 펜으로 벽에 문을 그리자 마법의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법의 숲에는 개울이 흐른다. 소녀는 빨간 펜으로 보트를 그리고는 보트를 타고 개울을 따라 내려간다. 곧 커다란 성이 나타난다.

소녀의 모험은 계속된다. 빨간 펜으로 열기구를 만들어 새장에 갇힌 신비로운 보라색 새를 풀어주고 이내 마법의 양탄자를 만들어 감옥에서 탈출한다. 신비의 새는 소녀를 마법의 보라색 펜을 가진 소년에게 안내한다. 신비의 새는 실은 소년이 그린 새다. 소녀와 소년은 친구가 되어 함께 빨간색, 보라색 바퀴를 그린 자전거를 만들고는 앞으로 함께 달려 나간다.

외로움의 가장 큰 친구는 상상일 수밖에 없다. 어른도 그렇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상상한 것을 표현한다.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엉뚱한 것을 그린다. 상상 속에서만 현실의 구차함을 견뎌낼 수 있다. 모험을 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친구를 만든다. 만약 상상할 수 없다면 아이는 한없이 작아져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몸은 커지겠지만 마음은 여전히 움츠린 아기 그대로일지 모른다.

이 그림책의 모티브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상상을 통해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기의 미래를 만드는 소녀는 흔한 캐릭터다.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실은 책의 친구들이니 어쩔 수 없다. 무엇이든 그려내면 현실로 변하는 마법의 빨간 펜은 멈추지 않고 멋진 춤을 계속 추게 만드는 빨간 구두나, 황금알을 낳는 암탉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하지만 이 책은 멋지다. 수채물감과 잉크를 함께 써서 그린 그림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빠르게 진행하는 이야기 구조는 아이들을 흥분시킨다. 글자는 하나도 없지만 아이들은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아이를 보는 즐거움.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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