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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 이어주는 부탄의 교육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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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 모습.  김소민 제공
팀푸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 모습. 김소민 제공
[한겨레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착한 남자는 거의 비슷하지만 나쁜 남자는 다 다르다. 도박하는 놈, 때리는 놈, 바람피우는 놈, 술 퍼마시는 놈…, 이걸 다 하는 놈들도 있다. 행복의 나라 부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박에 빠진 도지(35) 남편은 일진이 사나운 날은 도지를 때렸다. 이혼하고 도지는 행상을 한다. 천장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판잣집 월세가 3000눌트룸(약 6만원)이다. 부탄 만두인 모모 팔아 월세 따라잡기도 숨이 차는데 그는 곧 죽어도 한달에 200눌트룸(4000원)씩 저축한다. 아들(10)의 10학년을 준비하는 거다.

부탄의 동쪽 트라시강 산골마을, 한달에 한번 발목까지 떨어지는 키라를 입고 엄마들은 산을 탄다. 우리로 치면 면사무소에 여성 소액저축을 돕는 은행원들이 오는 날이다. 이 아줌마들은 한달에 100눌트룸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2000원을 저축하러 왕복 4시간을 걷는다. 아이들의 10학년을 준비하는 거다.

그 공포의 10학년은 뭔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부탄엔 12학년이 있다. 1학년에서 10학년까지는 공짜다. 삼시세끼 기숙사도 공짜다. 그런데 10학년에 시험을 쳐 60~70% 정도만 국립고등학교(11~12학년)에 진학할 수 있다. 국립학교는 계속 무료다. 부탄 대학 9개 가운데 8개가 국립인데 여기도 그렇다. 부모들이 돈을 모으는 까닭은 자녀가 그 안에 못 들 때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다. 10학년만 나와서는 좋은 직장 잡기가 어렵다. 투어가이드도 12학년은 마쳐야 자격증을 준다. 그래서 애들은 시험을 치는 10학년을 지옥이라 하는데, 한국 학생들을 본다면 복에 겨운 소리란 걸 알게 될 거다.

불평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립학교 교사로 일하는 체링이 그런다. “부잣집 애들이야 10학년에 공부 안 해도 느긋하지. 부모가 돈으로 사립학교에 보내줄 거니까.” 학원은 없다. 과외는 금지이지만 팀푸의 잘사는 애들은 몰래 받기도 한다. 11학년에 머리 깎은 도지 스님은 부촌인 모티탕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교 선생님들이 몰래 과외를 해주거든. 한번에 500눌트룸(약 1만원). 우리 형편엔 큰 부담이었어.” 그래도 부모 애간장을 녹이는 ‘염산’급 교육 불평등 맛은 아직 못 본 거 같다.

무엇보다 공짜다. 부탄 정부가 애쓴다. 모든 정책의 근본인 ‘국민총행복’ 9개 축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10분의 1(2381달러)밖에 안 되지만 정부 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인 17%는 교육 몫이다(부탄 재경부 자료). 1960년대 후반에 가서야 근대 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6~12살 가운데 95%가 학교에 다닌다(2015년 부탄 교육부 자료). 봄이 오면 해발 4000m 이상 올라가버리는 유목민도 애들을 학교에 보낸다. 지난해 체추 연휴 때 16살 소녀 소남은 해발 3500m를 봇짐 하나 달랑 메고 올라갔다. 유목민 딸 소남은 방 한칸이 식당, 침실, 놀이터가 되는 집에 가는 중이다. 여름 내내 못 만났다. “산하고 부모님이 너무 그리웠어요.” 소남은 아랫마을 기숙학교에 산다. 밥은 맛이 없지만 배는 안 고프다고 했다.

좋은 교육 받자고 수도 팀푸로 꾸역꾸역 올 필요는 없다. 교직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나면 젊은 선생님들을 시골로 보낸다. 이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리 근육이다. 차가 안 다녀 이틀을 걸어가야 하는 학교도 있다. 그곳에서 5~6년 버텨야 도시로 전근 신청을 할 수 있는데, 배정은 국가가 각 지역 필요에 따라 한다. 보통 부탄 사람들의 3배쯤 임금을 받는 탄딘은 딸을 사립학교에 안 보낸다. “국립학교 선생님이 믿을 만하지.”

가난해도 이 교육 ‘사다리’를 타고 사회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다. 부탄에서도 가난한 지역인 삼드룹 종칵에서 온 푼조(47)는 1975년 처음 학교에 갔다. 학교가 마을에서 너무 멀어 학교 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마을 애들이랑 같이 살았다. 교복은 달랑 하나, 여름엔 알몸으로 수영하며 교복을 말렸다. 푼조는 지금 4성급 호텔 매니저다. 체링(38)이 다닌 초등학교는 집에서 3시간 거리였다. 중학교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항상 배가 고팠어. 밥을 나무숟가락에 담은 뒤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숟가락 위를 싹 쓸어내거든. 평평하게 되도록. 딱 그만큼만 먹을 수 있었어. 선생님이 아주 무서웠어. 내 종아리엔 아직도 그때 맞아 생긴 상처가 있잖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체링은 여행사 사장이다. 수도 팀푸의 중산층이 됐다.

예시(25)는 아빠 얼굴을 모른다. 엄마는 6살 때 숨졌다. 목수인 할아버지랑 살았는데 살림이 빠듯했다. “어릴 때 만날 뭘 팔러 다녔어. 채소를 많이 팔았어.” 그는 부탄에서 제일 알아주는 국립대학 셰룹체를 나왔다. 공짜가 아니면 꿈도 못 꿨다. 그 셰룹체 대학은 수도 팀푸에 없다. 동쪽으로 굽이굽이 가다 세번은 토해야 도착하는 곳에 있다. 대학만 덩그러니 있다. 아무것도 없다. 여기 대학생들은 안 노나? “모르는 소리, 밤에 몰래 빠져나가서 아무 농가나 가서 아라(부탄 소주) 달라 그러면 주거든.”

그런데 교육 ‘사다리’에 구멍도 많다. 부탄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투자한다 해도 아직 가난한 탓이다. 13살 소녀 린진은 7살처럼 보인다. 아기 돌보는 부탄판 ‘몽실 언니’다. 한번도 학교에 못 다녔다. 부모는 도로 건설 노동자인데, 학교가 공짜라도 못 보낸다. 린진의 벌이가 필요하다. 시골 학교, 기숙사까지 공짜라니 끝내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1년에 석달은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을 추카에 가봤다. (다음에 계속)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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