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보고 놀던 시절은 이제 갔다!”
중학교 1학년. 많은 부모들이 “책은 초등학교 때 봤으니 이제부터는 영어·수학에 집중해야 한다”며 아이 손을 잡고 학원가를 찾는다. 하지만 “이 시기야말로 독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일 인천 구산중학교 학교도서관에서 구산중 허우정 사서교사(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학교도서관 운영평가 유공자), 독서교육전문가 임성미(<중학생의 책읽기>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 등 저자)씨, 학부모 박부흥(고2·중2 자녀를 둔 학부모로 독서동아리 등 운영)씨를 만나봤다.
자유학기제로 ‘진로독서’ 등 주목받아
‘좋아하는 책’ 더해 ‘권장도서’도 봐야
교과학습 돕는 사교육 찾을 시간에
독서습관 잡아주는 게 더 중요해
동아리 등 꾸려 ‘함께 읽기’ 해보길
중학교 새내기, 읽을거리 늘어나
-오늘 많은 학교들이 입학식을 했다. 중학교 1학년들은 독서와 관련해서도 변화가 있지 않나? 자유학기제 도입되면서 ‘진로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던데.
허우정(이하 허) 특별한 건 아니고,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서 진로와 연계된 독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교육부는 ‘교과수업을 좀 더 자유롭게, 새롭게 하고, 책을 이용해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최근 들어서는 아이들이 ‘위인 시리즈’ 등도 많이 본다. 특정 종류의 책을 놓고 ‘이것이 진로독서 책’이라고 규정할 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책이라도 아이가 발견할 만한 게 있으면 진로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다.
임성미(이하 임) 아이들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독서가 다 진로독서일 수 있다. 책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과 나 자신 찾기’, ‘삶에 필요한 기초 능력(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능력 등) 찾기’, ‘인성을 가꿔주는 덕목 만나기’ 등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진로독서가 아닐까.
박부흥(이하 박) 올해 고2 올라가는 딸이 중학교 때 가수 빅뱅이 쓴 <세상에 너를 소리쳐!>를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할모델을 비롯해 아이들 각자 관심을 갖는 대목이 다 다르다. 관심 있는 부분에서부터 독서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가면 ‘권장도서’나 ‘필독도서’ 등 봐야 할 책도 늘어난다.
허 도서관을 이용해 다양한 책을 접하되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학교별로 아이들에게 ‘소개해준다’는 개념으로 책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학기 초 교육과정계획을 짤 때 도서관 운영계획도 포함된다. 그 안에 보통 ‘한 학기에 한 시간 이상 도서관 활용 수업을 한다’, ‘교과별 권장도서를 추천한다’ 등의 내용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교과학습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이런 식으로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독서에 ‘필독’을 붙이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람마다 생김새, 걸음걸이가 다 다르듯 읽고 싶은 책의 종류, 읽어낼 수 있는 능력 등이 다 다른데 강요하는 방식은 좋지 않다고 본다.
임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라고 나온 책들을 보면 내용이 굉장히 어렵다. 혼자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혼자 읽는 책’, ‘함께 보는 책’ 등을 나눠보는 걸 권하고 싶다. 혼자 읽는 책은 초등 3, 4학년 대상 그림책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 ‘함께 보는 책’은 권장도서 등에 나오는, 중학교 수준에서는 반드시 볼 필요가 있는 책들이다.
-요즘 중1 아이들 독해 수준이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려오던데.
허 수행평가 자료를 보면 쉽게 파악이 된다. 사실 한 반 약 30명 가운데 스스로 책을 골라서 직접 읽어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 3명도 안 된다. 지역 등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다 그렇다.
임 ‘단군 이래 가장 공부 많이 하는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정작 기본적인 ‘읽기’도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반드시 교육적 차원에서 읽혀야 한다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중학생쯤 되면 미래에 비판적이고 유능한 독자가 되기 위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읽고 가야 할 책도 있다. 공교육에서 그런 책들에 대해 왜 이 책이 가치가 있고,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가정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어떻게든 독서를 한다. 책에 대한 간단한 퀴즈를 내보는 등 읽게 도와줄 방법들은 많다. 요즘은 독서활동도 양극화됐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열성적으로 독서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경우 상황이 너무 다르다. 청소년기에 독서는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커서 운동선수가 되어도 책은 읽어둬야 하는 시대다. “이것만은 모두 같이 읽자!”라고 말하는 ‘열정적인 동반자’가 필요하다. “싫으면 그냥 읽지 말라”고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읽은 게 없다면 “부끄러운 게 아니니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하면 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보던 책만 계속 보니 “너는 언제쯤 중학생다운 책을 볼 거냐”고 하는 부모들도 많다.
박 어릴 때 보던 책을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준에 안 맞으니 보지 말라고 하면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독서교육 단계로 가기 전, 아이한테 흥미와 호기심이 일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때 독서에 동기부여가 된 상태로 진학하면 좋지만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독서 수준이나 성향이 아이들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책을 추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임 ‘주입’이 아니라 적절한 ‘코칭’이 필요하다. 책읽기로 이어지게 동기유발을 돕고,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는 거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선택해 읽는 걸 존중하되, 그 나이대에 꼭 읽고 가야 할 책들을 소개하거나 연계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은 자발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안내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진학에도 도움 줘
-소수이겠지만 방과후 남들 학원 보낼 때 독서동아리 활동을 독려하는 부모들도 있던데.
박 내 경우가 그렇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좋은 담임교사를 만나서 독서습관을 잘 들여뒀다. 반 아이들이 30명이었는데 학급문고 100권을 선정해서 교실에 두고, 그 안에서 아무거나 골라 읽으라고 해주셨다. 아이마다 선택하는 책이 다 달랐다. 그때 선생님 조언을 바탕으로 큰아이, 작은아이 친구들을 모아 독서동아리도 운영해봤다. 읽은 책 가운데 친구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가져오면 된다는 식으로 부담 없게 해줬다. 소박하게 시작했다. 진행·토론도 아이들끼리 해보게 했다. 어려우면 간단한 질문을 적어보거나 그림을 그려보는 활동 등을 해보라고 권했다. 내가 가끔씩 책과 관련한 동영상 등 자료가 있으면 보여줬다. 큰아이는 3년 가까이 활동을 했는데 학년이 올라가니 그 활동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애들이 책을 읽으려면 엄마가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나도 독서모임을 한 지 7년 정도 됐다. 처음엔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인문, 철학 등 어려운 책들도 읽게 된다.
임 독서동아리 활동은 중학생 때부터 하면 정말 좋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네가 먼저 나서서 독서동아리 개설해달라고 요청해봐”라고 말한다.
허 오늘자로 구산중에 왔는데 이 학교에서도 ‘1인 1독서토론동아리’ 운영을 해보려고 한다. 지난해까지 10년 머물렀던 인천 부흥중에서 매일 방과후 2시간 동안 독서토론동아리를 운영했다. 아이들이 이런 활동을 하며 엄청나게 성장한다는 걸 봤다. 처음에는 말을 안 했는데 한 두달 지나니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했다. 아이들은 책이라는 매개가 있으면 서로 자기들 수준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
-사교육을 안 받고도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찾아 진학하고, 대학생활까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독서를 꾸준히 해왔다”고 말한다.
임 대학생인 내 아들, 딸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둘 다 대학에 가더니 “독서는 대학입시를 떠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거였어!”라고 말한다. 청소년 때 독서를 잘하고 진학한 아이들은 대학 과제 내는 것부터 다르다.
허 아까 얘기했던 독서토론동아리 학생들이 지난 2012년 당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한 ‘창의체험페스티벌 독서프레젠테이션(PT)대회’ 등에서 상도 받고, 성과가 참 컸다. 일반고 가서 원하는 대학, 학과로 진학도 잘 했다. 고교에서도 중학교 때 했던 걸 바탕으로 책읽기, 토론 활동 등을 했다고 한다. 수능 언어영역은 고교 1학년 때 점수와 졸업할 때 점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때 어휘력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고교에 가야 한다. 중학교 1, 2학년 때 책을 못 읽어둔 아이들한테는 “중3말 12월~2월 석 달이 앞으로 네 모든 걸 좌우한다”고 세게 말한다. 보통 학교 도서관은 12월께 중3 학생들한테는 대출을 잘 안 해준다. 애들이 책 반납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앨범과 대출증을 맞바꾸게 해서라도 책을 빌려준다. 그만큼 이 시기라도 책을 읽어두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1 때부터 계획을 세워서 가면 정말 좋겠다.
글·사진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