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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 정상인데 학습 더디다? 아이 ‘마음’ 들여다보면 답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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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정상인데 자기 나이에 맞는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만한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학습부진’을 겪는 학생들한테는 왜 공부가 더디고 힘든지 마음속 상처나 불안 등을 살펴봐주는 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음.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공부가 느린 아이들’ 이유 뭘까?

초등학교 2학년 최아무개군은 주위가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한다. 한글 읽기도 어려워한다. 받침이 없는 말은 천천히 읽지만 받침이 있는 말은 제대로 읽기 어려울 때가 많다. 숫자는 읽을 수 있고 크기도 비교한다. 하지만 두자릿수 덧셈부터는 어려워한다. ‘장애 아닌가?’ 최군의 증상을 보고 ‘학습장애’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지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지능검사를 해보면 정상이다.

학습이 더딘 아이들 24만명
담임교사 혼자 지도하기 어려워
학교 신청하면 시·도 교육청 센터서
전문가 체계적인 진단·상담도 가능

‘왜 더딘 걸까’ 이유 들여다보면
누적된 낮은 성취 경험 등 있어
‘부진아’ 낙인, 더 심각한 문제 키워

‘학습장애’와 ‘학습부진’ 차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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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에 문제가 있어 학습이 더디다면 학습장애로 분류되지만 지능에는 문제가 없는데 학습이 더딘 경우 ‘학습부진’을 의심해봐야 한다. 학습부진은 정상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지능 등 잠재능력이 있지만 환경요인이나 잘못된 습관 등으로 학습이 느린 것을 말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런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약 24만명에 달한다.

학습부진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교육부는 온라인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 가동, 두드림학교 운영, 학습종합클리닉센터(이하 센터) 운영 등 ‘기초학력향상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센터는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쪽의 신청을 받아 찾아가는 맞춤형 학습 서비스를 지원한다. 전문 상담사나 코칭사 등이 학교를 찾아가 아이한테 맞는 개별적인 진단과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교사자격증이나 상담 관련 자격증 등을 취득한 이들이 상담사, 코칭사로 일하고 있다.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임은미 교수는 “요즘 핵가족에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경우가 있는 반면 지나치게 학습 준비를 일찍 해오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에서 학습이 더딘 친구들만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센터처럼 학교 밖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최군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전북학습클리닉센터 군산거점 학습클리닉센터의 남성수 학습코칭사를 통해 문제를 풀어갔다. 아이가 정서적 돌봄이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 탓에 불안한 심리 정서를 보였고, 이것이 학습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남 코칭사의 진단이었다. ‘마음 열기’, ‘내 감정 다루기’, ‘분노 조절하기’, ‘스트레스 해소 다루기’, ‘집중력 높이기’ 등 약 17회기 상담을 거치며 최군은 학습에 조금씩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북학습클리닉센터의 경우, 군산을 비롯해 전주, 익산, 정읍, 남원 등 다섯 개 거점센터를 운영하면서 각 지역 아이들의 특성에 맞춤한 지원을 한다. 전북학습클리닉센터 서민영 학습전문가는 “‘학습부진’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느낌을 주고, 낙인효과도 있기 때문에 ‘학습더딤’이라고 표현하는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도 하고 있다”고 했다.

정서 돌봄 취약할 때 공부 거부감 생겨

학습부진에도 유형이 있다. 전문가들은 “대개 부모나 형제자매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 많이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최군도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족 간에 정서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남 코칭사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학교에 가고,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봐주는 눈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공부와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학습부진의 원인이 되는, 돌봄 부재 상황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적 빈곤으로 양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부터 다문화가정이어서 한글 문해교육 등 기본적인 도구과목에 대한 기초 공부가 안 된 경우,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조손 가정에서 자라 불안한 감정을 안고 사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도 서울학습도움센터라는 이름의 센터가 있다. 상담은 크게 ‘심리정서’를 돌봐주는 상담과 ‘학습전략’을 알려주는 상담 두 가지로 나뉜다. 아이의 심리정서가 학습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잘 모르는 이들은 단순히 한글 읽기가 부족하면 읽기 연습을, 수학 연산 기초가 없으면 연산 훈련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정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아무리 체계적인 학습전략을 세워 공부를 해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서울학습도움센터 이민선 센터장은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보면 ‘자아실현’이 최종 단계에 있는데 그 최종 단계까지 가려면 생리, 안전, 애정·소속, 존경 욕구 등 하위 단계 욕구들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며 “심리정서에 문제가 없는 경우는 효율적인 학습 방법 등을 알려주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지금 내가 왜 우울하고 화가 나는지 알아차리고 감정과 분노 등을 조절할 수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새로운 뭔가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인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크게 6가지 영역(우울·불안, 분노, 사회성, 주의집중, 자아존중감, 동기진로)으로 나눠 살펴볼 때 학습부진 아이들은 ‘우울·불안’ 증세를 많이 호소한다. 이 센터장은 “우울·불안이 밑바탕에 있는 건 평소 여러 상황에서 성취를 못 해본 경험, 즉 ‘저성취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나 학원 등에서 각종 평가를 통해 스스로 학습이 늦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너는 부진아다’라는 주변의 반복된 말 속에서 ‘나는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해버리기 쉽다. 이 과정에서 자존감이 약해지면 친구들과의 관계 등을 원만히 풀지 못하는 등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되기도 쉽다. 저성취 경험에서 비롯된 우울·불안이 학습부진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자존감과 사회성까지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과도한 학습에의 노출, 공부 흥미 떨어뜨리기도

흔히 학습부진 문제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라고 말한다.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서울학습도움센터 김은정 학습상담사는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할 수 있지만 가정의 형편만큼 중요한 게 부모의 무한한 관심이다. 조금 가난해도 가족 구성원이 아이의 배움 과정 등을 따뜻하게 지켜봐줄 경우 아이는 안정적으로 공부한다”고 했다.

때론 부모의 왜곡된 관심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저학년 때 학습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됐던 탓에 고학년이 되어 학습부진을 겪는 역설적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가 막힌다 정말. 너 엄마가 어떻게 해서 가르쳤는데 이 정도야?”

서울 송파구에 사는 양아무개씨의 아들 김아무개군은 재작년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학습부진 현상을 보였다가 서울학습도움센터 김은정 학습상담사 도움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간 사례다. 양씨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아들의 성적표를 보고 화를 냈던 게 아이한테는 일종의 ‘공부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양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해주고 싶은 건 다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맞벌이를 해가며 학원을 여러 곳 보냈다. 하루 종일 학원 뺑뺑이를 돌다 보니 아이는 학습량 때문에 부담스러워했다. 그 과정에서 두뇌 회전이 안 되고 불안감이 생기면서 역설적으로 학습 결손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송씨는 “아이한테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학원을 보내면 다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진 못했다”고 했다. “‘엄마. 나 어릴 때 공부를 너무 많이 한 거 같아. 공부 빼곤 나만의 추억이 없었어.’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미안했죠. ‘공부 방법’을 익히면 잘할 거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공부’에 초점을 두고 교육을 했습니다. 센터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며 많이 깨졌어요.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면 공부가 잘 안되고 더딘 이유가 보인다고 하시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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