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청개구리
백석현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일하는 아이들〉(양철북, 2018)
느낄 감, 움직일 동. ‘감동’을 국어사전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으로 풀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따라 움직인다는 걸까. 이 풀이에는 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느끼고 움직이는 주체가 마음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달리 풀어 보게 된다. 느낌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게끔 하는 상태. 그것으로 인하여 나도 따라 하고 싶게, 또는 더는 하고 싶지 않게 멈춤을 촉구하는 힘. 마음속 느낌을 몸으로 옮기기, 감동은 그런 것일 게다.
백석현의 ‘청개구리’는 어린이 시집 〈일하는 아이들〉(이오덕 엮음)에 실려 있다. 쓴 날짜는 1969년 5월3일, 백석현은 경북 안동 대곡분교 3학년이었다. 나는 이 시를 마흔 가까운 나이에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아이는 대체 어떻게, 이토록 놀라운 생명 감수성을 갖게 되었을까. 타고난 걸까, 아니면 부모나 교사에게 배운 걸까. 질투가 났다. 난 그렇지 못했다.
봄이 되면 비료포대와 작대기를 들고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묵직하게 잡아 와 집 뒤 닭장 앞에서 동강 내어 닭들에게 던져 주었다. 굵은 알을 쑥쑥 낳으려면 영양 상태가 좋아야 했다. 부모님이 그 일을 시켰다. 수많은 개구리를 죽이고 칭찬받은 일, 한 번도 그 일에 죄의식을 가져 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내게 이 작품은 처음으로 나를 또 다른 죄 앞에서 멈추게 했고, 돌아서게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어렸을 적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 뼈아픈 후회가 되어 돌아올 때가 많다. 파리 날개를 떼어 바닥을 기어 다니게 하고, 잠자리 꼬리에 풀대궁을 끼워 시집보낸 일. 새가슴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고서야 어렸을 적 잡아먹은 참새를 떠올린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는 일에 바빠 꽃 밟을 시간조차 없다 하더라도 올봄에는 한번쯤 이런 근심을 피워 보면 좋겠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장석남, ‘입춘 부근’)
이오덕은 어린이 시 쓰기의 3대 원칙으로, ①제재를 확장하고 ②산문 형태로 쓰게 하며 ③사투리로 쓰게 할 것을 제시했다. ①은 시적인 소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과 놀이, 미와 추 등 삶 전반이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②는 행갈이와 연 나눔 같은 시의 외형이 내용에 간섭하고 제한함을 경계한 것이다. ③은 집과 마을에서 쓰는 말, 삶에 밀착된 자기 고장의 말로 쓰게 하자는 것인데, 쓰고 읽는 데 현장감과 실감을 더할 뿐 아니라 사투리를 표준어로 번역하는 부담을 줄이고 언어 사용자의 자존감을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 작품은 이 세 원칙이 매우 잘 실현된 예이다.
풀
김용구(상주 청리초 4)
독 새에 풀 한 포기 억지로 빠져나와 해를 보려고 동쪽으로 고개를 드는데, 동생들이 호매로 쪼아가면 그 풀 뿌리는 또 억지로 나오니라고 얼마나 외로이 얼마나 애를 먹을까?
쓴 날짜가 1964년 3월 7일로 되어 있다. 동생들이 돌 사이로 나온 풀을 호미로 쪼는 것을 보고 썼다. 제재 확장(①), 행갈이를 하지 않은 산문 형태(②), “독 새”(돌 사이), “호매”(호미), “나오니라고”(나오느라고) 등 사투리 입말이 자연스레 구사되었다(③). 호흡이 긴 한 문장의 형식은 돌의 무게와 어둠에 짓눌린 채 그것을 빠져 나오느라 애쓰는 새싹의 끈질긴 안간힘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알맞다. 이 아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절실함이 호흡이 긴 한 문장의 형식과 “그 풀 뿌리는 또 억지로 나오니라고 얼마나 외로이 얼마나 애를 먹을까?” 같은 절묘한 리듬을 만들어 냈다. 어린이 시에서는 이처럼 내용과 형식, 리듬의 문제가 쓰는 이의 절실함에 힘입어 한꺼번에 해결된 예를 드물잖게 볼 수 있다.
눈
김석님(상주 공검초 2)
눈아, 눈아, 오지 마라.
코가 따굽고 입이 새파랗고
발이 얼어서 개룹고
손이 시려서 호호 시려서
장갑이 있어야 한다.
눈아, 눈아, 오지 마라.
1958년 12월 27일 경북 상주에는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 〈일하는 아이들〉에는 이날 쓴 ‘눈’ 시가 세 편 실렸는데, 이 작품이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2학년 아이가 이런 형식과 리듬의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썼고 한 글자의 퇴고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이 아이의 심정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외침소리를 발전시킨 것이라거나 강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 서정시라고 할 때, 이 작품은 그에 꼭 맞춤한 예다. 동상에 걸린 발과 손, 장갑은커녕 변변한 양말이나 신발도 갖지 못했을 이 아이에게 펑펑 쏟아지는 눈은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신음 같은, 간절한 기도 같은 리듬의 출처가 여기에 있다. 1행과 6행의 수미상관, 2-4행의 반복과 변주는 교사의 손을 탄 것이 아니다. 너무나 완벽해서 교사가 끼어들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따굽고” “개룹고”는 표준어 ‘따갑고’ ‘가렵고’보다 깊고 둔중하게 찌르는(ㅜ) 느낌이고, 3행의 “얼어서”와 4행의 “호호”는 정확히 독자의 통각점을 자극하는 변주다.
어린이 시를 읽을 때는 쓴 날짜, 학년이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앞의 세 작품을 쓴 날짜, 학년과 연관 지어 읽어 보면, 날짜와 학년과 시의 내용이 조응됨을 알 수 있다. 다음 작품을 5학년이나 6학년이 썼다고 하면 좋은 작품이 되기 어렵다.
내 자지
이재흠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 줬다.
해바라기는 둥그렇고 커다래서 사람 얼굴을 떠올리기 쉽다. 고개 숙이고 있는 걸 보면 고행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윤동주는 해바라기에서 누나 얼굴을 보았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해바라기 얼굴’ 전문)
이재흠 어린이는 안동 대곡분교 3학년이던 1969년 10월 14일에 이 작품을 썼다. 4학년만 되었어도 이 작품의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3학년이기에 이런 반응(해바라기가 보려고 했지만 안 보여 준)이 발달단계에 적합하다. 2학년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10월 14일이라는 날짜도 가을 해바라기와 맞다. 다음은 얼마 전 열린 제주 어린이 시인 캠프(2018. 2. 23.-25)에서 나온 시다. 쓴 날짜는 모두 둘째 날인 24일. 몇 학년인지 가늠하며 읽어 보자.
①
배가 시렵다
고대현
아침 산책하는데
배가 시렵다.
밥을 먹고 나니 좋다.
배가 땃뜻하다.
②
눈들이 말했다
조아영
눈들이 말했다.
“우리 위에 눕지 마시오 우리가 눌려서 기절합니다.”
눈들이 말했다.
“우리를 뭉치지 마시오 싫어하는 눈들과 뽀뽀하기 싫습니다.”
“우리를 먹지 마시오 우리가 녹아서 죽습니다.”
눈들이 말했다, 눈들이 말했다.
“우리를 건드리지 마시오!”
③
모둠 선생님
고시온
모둠에서 선생님이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선생님을 보니 남자였다.
그래서 실망했는데
보니깐 여자만 좋은 게 아니었다.
④
약수터
고재협
시인 캠프 처음 와서
숙소로 가는 길에 돌받침에
물이 놓여 있었다.
나는 머냐 물어 보았다.
약수터라고 하셨다.
약수터가 머냐고 또 물어 보았다.
먹는 물이라고 하셨다.
절물에 먹는 물이 있는 게 신기하였다.
⑤
마법 지우개
정하늘
내 손이 들고 있는 지우개
글씨를 지울 때 쓰지
내 마음이 들고 있는 지우개
안 좋은 일을 지울 때 쓰지
*마법 지우개 사용설명서
잠을 잔다
①은 제주 아라초 1학년이 썼다. 캠프가 열린 절물휴양림의 아침 공기는 서늘했다. 1학년이니 더 시리게 느꼈을 것이다. “땃뜻하다”고 적어서 글자에 옷을 입혀준 듯하다. ②는 신광초 3학년이 썼다. 지난겨울 제주엔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이글루를 짓고 놀았다고 했다. 그 경험이 이런 멋진 시를 탄생시켰다. 내용도 기발하지만 문장부호의 사용 또한 절묘하다. ③은 태흥초 1학년, ④는 외도초 1학년이 썼다. 캠프 현장의 경험을 나이에 맞게 잘 표현했다. ⑤는 애월초 5학년이 썼다.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의 내면이 표 나지 않게, 알맞은 형식에 잘 담겼다.
아이들과 시를 쓸 때는 ‘자기 실감’을 잡아 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말만 늘어놓은 것은 얼른 버리게 하고 다른 것을 찾아 쓰게 해야 한다. 알맹이가 없으면 고쳐 쓸 수 없다. 거칠어도 알맹이가 있으면 조금씩 다듬어 좋은 시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행을 바꾸어 보고, 연을 나누어 보고, 다시 이어서 산문처럼 배치해 보기도 하면서 그 미묘한 차이를 감각해 보는 것이 시 연습이다. 점을 찍어 보고 지워 보고, 조사를 넣어 보고 빼 보고, 없어도 되는 말을 하나둘 덜어내 보는 것이 언어감각을 예민하게 단련하는 길이다.
〈일하는 아이들〉은 1978년 초판(청년사)이 나온 이래 2002년(보리)과 2018년(양철북)에 개정판을 냈다. 출간된 지 꼭 4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이 시집의 고전이자 원본이다. 어른에게도 큰 공부가 되는 책이다. 이후에 나온 어린이 시집은 대부분 이오덕의 문제의식을 얻어 탔다. 이오덕의 문제의식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이 나와야 〈일하는 아이들〉을 넘어서는 어린이 시집이 나올 수 있다. 아이들도 달라졌고 동시도 달라졌는데 어린이 시 교육에선 큰 진전이 없다. 이오덕이 외면한 동시를 어린이 시 교육에 적극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