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베이비트리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숲 속으로

$
0
0

숲을 가로질러 가는 아이의 용기

20130916_1.jpg 

앤서니 브라운 지음, 허은미 옮김
베틀북 펴냄(2004)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 숲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다.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예전의 아이들이라고 숲이 익숙한 공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가 일상적인 공간이 되기 전에도 숲은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품고 있는데다, 계절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길을 잘못 들면 어느 곳인지 모를 미궁으로 빠질 수 있는 숲은 아이들에게 모험과 금기의 땅이었다. 아이들은 낮에는 함께 모여 숲 속 새로운 길을 탐험하면서도 밤이면 혼자 숲에서 길을 잃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숲을 지나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미래 역시 그렇다. 새롭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찬 공간일수록 위험을 안고 있다. 숲을 가로지르는 길은 지름길이지만, 그런 길일수록 가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숲에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 나무는 어느 순간 괴물로 변하고, 어느 순간 또 요정으로 변할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은 또 하나의 숲이다. 아이들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이에게 괴물이 될지, 요정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씩씩하게 숲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어쩌면 아이이기에 그런 용기를 낸다.

앤서니 브라운의 <숲 속으로>에서 주인공 아이는 숲으로 난 지름길로 걸어간다. 엄마는 멀리 돌아가라고 했지만 아이의 마음은 급하다. 엄마와 싸우고 집을 나간 아빠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급한 마음 덕분에 곤경에 정면으로 대응하게 된다. 정면 대응은 어렵고 위험한 선택이지만 만약 어려움을 잘 이겨낸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몰라보게 성장할 수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숲 속을 걸어가는 아이는 천연색으로, 배경인 숲은 흑백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장치는 아이가 숲에서 만나는 것이 과거의 기억임을 보여준다. 숲의 나무들이 어느 순간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이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내 뒤에서 움직이고, 어느 순간 가지를 뻗어 나를 조여 오는 것, 사방에서 나를 보고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지르는 나무들. 이들은 지나온 날의 기억이다. 상처받은 순간, 비웃음을 당한 순간의 기억. 잠잠하게 숨어 있던 기억이 어느 순간 튀어나와 나를 해치려 드는 것이다. 아이가 숲에서 만나는 것은 아이를 괴롭히는 마음속의 감정이다. 아픔, 욕심, 외로움, 두려움이다. 아이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점점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 순간 할머니의 집을 발견한다. 마지막 의심. <빨간 모자> 이야기처럼 혹시 이 집에 할머니가 아닌 늑대라도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공포를 극대화하는 순간,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할머니를 만난다.

1365763910_57574415199_20130413.JPG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이제 다투었던 엄마와 아빠도 화해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 보낸 케이크는 사실 아빠에게 전하는 엄마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은 알지 못했다. 다만 아픈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어 할머니가 준 따뜻한 사랑을 보답하고 싶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이가 버티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온전히 받아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이라고.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베틀북 제공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