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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보려 시간제로 옮겼지만…육아·경력 둘다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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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들 토론회서 대책 호소

콜센터 안내원
12시반 퇴근시간 지나도 붙잡혀
두아들 집에 올 시간 넘기기 일쑤

학습지 교사
방문수업 오후 2시부터 시작인데
각종 교육·회의 준비에 아침 출근

정부가 할 일은
시간제 확대는 현실 고착화 불러
점심 유급화 등 노동시간 단축을

35살 ㄱ씨는 첫아이를 임신한 8년 전 해운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를 갖자 사직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올해 3월 일자리를 찾았지만 경력이 부족한데다 4살짜리 아이까지 보살펴야 해 결국 과외업체 콜센터 안내원 자리밖에 없었다. 조건은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 오전 9시3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일하면 되고 영업 부담도 없다고 했다. 실상은 달랐다. 영업 한건당 수당 1만원을 준다며 영업을 유도했다. 과외상담을 1건도 못 채우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저녁 6시까지 붙들어두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통 퇴근은 오후 3시에나 가능했다. 남편은 빨리 귀가해야 저녁 8시다. 계획과 달리, 낮 12시30분이면 학교가 끝나는 첫째나, 오후 2시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둘째를 보살필 수 없는 상황이다.

30대 여성 ㄴ씨는 큰아이가 3살 무렵이던 4년 전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밤 11시까지 일하는 학원강사보다, 오후 2시 방문수업이 시작되는 학습지 교사가 더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수업 준비와 각종 회의며 교육 때문에 오전 10~11시까지는 출근해야 했고 금요일을 빼면 밤 11시가 퇴근 시간이었다. 그사이 큰아이는 7살로 자라났고 2살짜리 둘째도 생겼다. ㄴ씨는 어쩔 수 없이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본인부담금이 높아지는 보육 지원 제도다.

“잦은 야근과 회식 등 장시간 노동문화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시간제 일자리로 몰리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서울시직장맘센터가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연 ‘보육의 오늘을 말하다, 내일을 그리다’라는 토론회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이렇게 정리된다.

여성민우회가 5~10월까지 미취학 자녀를 둔 양육자 19명을 집단 심층면접한 결과, 여성 양육자들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거나 시간제 일자리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였다.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는 직장과, 보통 오후 4~5시 문을 닫는 어린이집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저녁 7시까지 아이를 돌봐야 한다.

권박미숙 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활동가는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몰리는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 조건이나 임금 체계가 불안정한 더 열악한 일자리여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사실상 어렵다.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남성 ㄷ(41)씨도 참석했다. 아이가 4살인 그는 아내가 이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 쓴 상태에서 보조양육자도 없어서 아이가 10개월 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일해 육아휴직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남성에게 육아는 부수적인 일이라는 사회적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휴직 때 아빠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고 말했다. 권박미숙 활동가는 “육아휴직이 여성만 사용하는 제도로 잘못 이해되면서 여성은 직장 내에서 일을 덜 하는, 불성실한 노동자로 인식된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해야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민우회는 토론회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점심시간 유급화 등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어린이집을 종일제와 반일제로 구분하는 등 현실에 맞는 운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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