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하고도 넷, 결혼 11년차..
그러나 남편과 단 둘이 한 이불 덮고 잔 기간은 결혼하고 두 달만에
첫애 가진 후 출산하기까지 달랑 12개월 뿐이다.
첫 애가 태어난 후 아이와 내가 침대 아래에서 자고 남편 혼자 침대 위에서
자기 시작한 후, 2007년에 태어난 둘째가 내 옆을 차지하고 2010년에
태어난 막내까지 아이 셋이서 내 옆을 다투는 세월이 벌써 10년 째다.
그러다보니 남편과 나누어야 할 둘 만의 시간을 갖는것이 점 점더 어려워진다.
애들 어릴땐 남편하고 한 이불 덮는거 꿈도 못 꾸었다고 푸념하시던
형님께 '그런데 어떻게 셋째는 만드셨어요?'물었더니
'그건 같이 안 자도 다 생기게 되있어'하시더만...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한 이불 덮고 안 자도 애는 다 만들며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다섯 식구가 한 공간에 모여 자는 우리집에서 남편과 모처럼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작전 아닌 작전이 필요하다.
우선 애들을 다 재워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눕기 전에는 절대 잠들지 않는
아이 셋을 다 재우기 위해서는 집안 일 다 끝내고 우리도 같이 누워
불을 끄고 애들 잘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눕자마자 코 고는 남편이나
밤만되면 저질 체력으로 허덕이는 나나 애들 재우다 잠들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다 중간에 깨더라도 부부생활이고 뭐고 잠이나 자고 싶어 마다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의지가 강한 날은 애써 잠을 참으며 애들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건너편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 신호를 보내 살그머니 일어나 발끝으로 걸어서
다른 방으로 간다. 그리고 반드시 문을 걸어 잠근다.
이렇게 해야 남편 한 번 안아볼 수 있다.
어제도 모처럼 서로 의지가 강한 날이었다.
애들 재우다 같이 잠들었는데 한 밤중에 남편이 나를 깨웠다.
조용 조용 일어나 제일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짧게 은밀한 시간을 막 나눈 찰라, 남편이 몸을 벌떡 일으켜 귀를 귀울이는 것이다.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뭐지? 하면서도 애들한테 어서 가봐야지 싶어
서둘러 옷을 입고 문 열고 나왔더니, 어두운 마루 한 가운데 윤정이가 울며 서 있다.
자다 깨었는데 엄마도 아빠도 안 보이니 무섭고 놀라서 여기 저기 돌아다닌 모양이다.
우리를 보자마자 '엄마, 아빠 어디 있었어?'한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큰 아이도 깬 눈치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응... 안방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아빠랑 가서 보고 있었어'
얼결에 이렇게 둘러댔다.
'무슨 소리?'
'뭔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가 봤지'
둘째는 이 정도로 다시 안심을 하고 눕는데
'안방 화장실에 가봤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하고 큰 놈이 묻는다.
뭔가 눈치챘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리바이를 밀고 나가야 한다.
'세면대 아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더라고...'
'세면대 아래, 어디요?'
큰 놈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으윽.. 이 녀석... 이 정도에서 그칠것이지...
'세면대 아래 휘어진 곳 있잖아. 거기서 물이 떨어지고 있어서 아빠가 확인하고
잠깐 손 보셨어. 천정에도 물이 많이 고여있던데 필규 너 저녁에 욕조에 물 엄청 채우고
목욕했지? 날도 추운데 더운 물을 그렇게 많이 써서 나중에 씻는 사람들은 더운 물이
잘 안나왔다고.. 천정에도 습기가 많이 차고... 안방 화장실은 제일 외벽이라 추워서
그렇게 습기차면 얼 수 도 있어. 다음부턴 그런 목욕 하지마. 겨울 지날때까지...'
난 애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화살을 아이에게 향하면서 이런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그래서 어제 마지막으로 그런 목욕 한거예요'
다행히 큰 녀석이 주제를 돌렸다.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오빠야, 안방 화장실 얼면 오줌싸다 썰매 타도 되겠다'
기분 좋아진데다 잠까지 확 깬 둘째가 이렇게 말했더니 큰 아이도 큭큭 웃는다.
'왜 다들 자다가 깨서 난리야. 어서 자. 내일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려고.'
남편은 이렇게 훈계를 하며 큰 아이 옆에 누웠다.
'아빠, 나랑 안고 자요'하며 큰 아이가 남편에게 매달린다.
둘째는 다시 내게 찰싹 붙는다. 이런 소동속에도 굳건히 잠들어 있는 막내도
잠결에 발로 내 배를 비벼댄다. 두 아이 사이에서 다시 옴쭉달쭉 못하며 나도 잠을 청했다.
아이들은 자면서도 엄마를 확인하는 놀라운 촉수를 작동시킨다는 것을
10년 육아 기간 내내 경험하고 있지만 어젯밤은 정말 아찔했다.
그러다 안방문을 열려고 했다면, 안방문이 닫혀있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되었을까.
11살 큰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도 성생활이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한 밤중에 다른 방에서 나오는 부모의 모습을 들키고 싶진 않다.
언제쯤 아이들이 제 방으로 독립해 들어가고 우리 부부만 한 방에서 자 볼 수 있을까.
열한 살 큰 놈이나 일곱살, 네살 딸 들이나 너희 방으로 가서 자라는 말을
마치 집에서 내쫒기나 하는 것 처럼 질색을 하며 받아들이고 있으니 당분간도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정말 아이들이 다 커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릴때면, 그때도 우리에게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남아 있을까..
어렵고 힘들어서 더 간절해지는 감정이 막상 쉬워지고 편해지면
그때도 이렇게 서로에게 적극적일까.. 온갖 생각들이 솟아오른다.
유명한 연작 만화인 홍승우의 '비빔툰'을 보면 신혼일때는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눈에 불꽃만 튀기면 아무때나 살을 섞던 부부가
애가 생긴 후에는 잠 한 번 같이 자기 위해서 설계도를 꺼내 작전을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막 하려고 하는데 애가 깨는 경우, 하는 중간에 애가 엄마를 찾는 경우, 한 사람이
애를 재우러 들어가야 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작전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만화의 결론에는 작전과 상관없이 애랑 한 밤중에 씨름을 하기도 하고
재우런 간 배우자 기다리다 잠들어 버리기도 하는 가슴 아픈 모습이 나오는데
내가 살아온 10년 세월이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경우엔 10년간 띄엄 띄엄 세 아이를
낳는 바람에 지금도 여전히 미션 임파서블같이 아슬아슬 외줄타는 부부생활이다.
결혼전엔 정말 몰랐다. 옆집 남자도 아니고 내 남자와 자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울 줄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