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여행기 이어 갑니다.
남편과의 불화로 엄청난 조회수!! 송년회에서 주목 받을 수 있었네요.
위로, 격려해주고 조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흠흠, 여기는 다시, 싱가폴입니다.
엄마, 저기 좀 봐! 두리안 같이 생겼지? (에스플레네이드 Esplanade극장)
어어, 콤타르가 언제 여기로 옮겨졌지? (페낭의 고층 건물, 원기둥 모양이 닮았다.)
아침에 먹은 사과 같아.
아침에 먹은 사과란, 바로 이것! (사과 커터를 처음 본 아이들이 열광했다!)
싱가포르에는 똑같은 건물들이 없단다. 같은 설계로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했기 때문.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재미난 구경거리이지만 너무 반듯하고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컴퓨터 도시
싱가포르에선 비누 냄새가 난다. 밤에 개가 짖으면 그 개의 성대를 잘라 버린다. 남자들은 더운 날씨에도 긴 바지만 입어야 하고, 여자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모든 자동차는 시속 80킬로미터를 넘으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내는 경적이 내장되어 있다. 교통 혼잡과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오전 6시부터는 승용차를 운전자 혼자 타고 다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직장 동료나 무료 편승자들을 태워 주어야 한다. 국민들의 행로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경찰은 자동차 밑에 발신기를 부착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이동 상황을 대형 스크린 위에서 추적할 수가 있다.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에게 자기 이름을 말해야 한다. 도시 곳곳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할 만큼 한정된 인구를 가진 새로운 나라이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이런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최초의 컴퓨터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싱가포르 국민들은 싱가포르 공화국이라는 거대한 컴퓨터의 소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지난번에 센토사 섬에 가려고 하버프런트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갈림길에서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다.
“미안해요. 실수로 이렇게 빙 돌아가게 되었네요. 카메라가 많아서 아무 데서나 차를 돌릴 수 없거든요.”
한참을 돌아 다시 제대로 된 길을 가면서 택시기사가 미안해했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는데 그냥 좀 돌리면 안 되나, 싶은 마음이 들던 찰나였다.
싱가포르는 범죄율이 낮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나라로 유명하다. 단정하고 잘 꾸며진 이 도시 곳곳에는 빨간 동그라미 안에 빗금을 그은 ‘금지’ 표지판이 눈에 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지하철에서는 먹거나 마시지 마세요. 그리고 CCTV가 찍고 있습니다, 라는 표지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의하면 기름때가 묻는 종이를 버리는 행위, 화분에 물을 주다가 거리에 물이 고이게 하는 행위(물이 썩으면 모기가 생긴다.)도 금지! 벌금 대상이란다.
정해진 규율을 어겼을 때 무시무시한 벌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애연가 좌린 선생도 담배를 피울 때마다 사람들에게 어디서 피워야 하는지, 여기서 피워도 되는지 묻곤 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환경이 깨끗해지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금지 표지판과 CC TV를 너무 자주 맞닥뜨리니까 지나치게 감시하고 필요 이상으로 제재하는 것 같아 불쾌해진다. 잔소리쟁이가 쫓아다니며 ‘안돼!’를 외치는 것 같고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잘못하면 혼날 줄 알아!’ 하고 겁박 당하는 기분이랄까.
며칠 다녀보니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지하철에서 물 마시는 사람도 보았지만, 책에서 읽은 내용이 정말 사실일까 싶기도 한데, 독재 정치가 독립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무척 통제된 사회인 것 같다.
컴퓨터 도시의 설계자인 리콴유는 31년간 총리를 지냈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수석 총리, 그의 아들이 총리가 된 현재에도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뉴스 시작과 함께 ‘리콴유 고문께서는~’이라는 ‘땡전’ 뉴스가 여전하단다.
독립 초기에 일어난 말레이-중국계의 유혈 폭동은 언론, 집회, 사상의 자유를 강력하게 제한하는 구실이 되었다. 남북한 분단 현실을 장기집권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종북, 사회 갈등 세력으로 몰아가는 우리 현실과 비슷한 맥락인 듯.
경제성장이라는 이유로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되는가?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다.) 정당한 비판과 절차를 무시하는 독재 정치가 그들의 포장처럼 투명하거나 공정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 결과, 그리고 우리의 정치 현실이 떠올라 잘 꾸며진 이 도시에 자꾸 반감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오후 늦게 클락키 역에서 친구를 만나 강변을 따라 멀라이언(merlion, 반은 물고기, 반은 사자, 싱가포르 상징 동물) 공원까지 걸었다.
좌린은 야경에 취했고-어쨌든 도시의 불빛이 참 아름답기는 하다!-
나는 경치보다 사람들~ 석유 재벌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 이 언니들의 의상이 참 세련되고 멋있었다!
모두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친구를 만났다. 블로그로 알게 된 사진 찍는 친구, 내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여행한다고 올렸더니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며 만나자고 쪽지를 보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대학 동창, 1학년 때 기숙사 방 짝의 같은 과 친구였다. 심지어 실험 수업을 함께 듣기도 했단다!
전공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날마다 사진기 메고 동아리 방, 집회 현장, 학교 앞 술집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던 나는 그녀와 같은 모범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내가 그럭저럭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가 여행하고 아이 낳고 사는 동안 그녀는 전공을 바꾸어 가며 공부를 계속했단다. (미쿡 유명 대학의 학위도 있다!) 학위를 밑천으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해 보였지만, 열심히 달려온 그 길을 놔두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단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 사진, 그리고 아직 ‘꿈’을 좇는 우리, 거의 처음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친구,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의미가 다채로워지는 것 같다. 함께 지낸 옛 추억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고 현재의 일상을 나누는 친구도 있고, 거창하게 말해서 소울메이트라고 할까?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느낌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다. 자주 만나거나 이야기를 오래 나누지 못하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은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나를 북돋워 주곤 한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네 마음속 빛을 따라 살아라, 라고.
맥주를 마신 건 어른들인데 아이들이 흠뻑 취했다.
낮부터 오래 걸었는데 어디서 힘이 나는지 펄펄 날아다녔다. 밤늦고 피곤하니 택시 타자는데도 아이들이 버스를 고집하며 앞장섰다.
우우우우~
괴성을 지르며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해람이를 보니 마치 취한 사람 같았다.
해람이를, 아이들을 취하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한국 말, 한국 사람!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즐거웠나 보다.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낯을 가리지도 않고 처음 보는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까불고 수다를 떨었다. 친구가 귀찮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동안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글자 속에 둘러싸여 아이들이 느꼈을 긴장감과 생경함에 비로소 생각이 미쳤다.
물론 늘 우리가 곁에 있지만, 길거리에서, 숙소에서, 식당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막연히 두렵고 불안하기도 했으리라.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이 지쳐 쓰러졌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등을 쓸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낮에 만난 친구와 나눈 이야기, 느낌이 통하는 친구가 생겨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여행에 대해, 새로운 친구, 새로운 풍광을 만날 때의 흥분,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남미를 여행할 때 스페인어를 몰라서 겪었던 일들, 외딴 언어의 섬에 갇힌 듯 답답하고 외로웠던 경험...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을까? 사실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기보다 내 마음에 취해 토해내듯 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일기에 적었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를 허락하는 한편 내 안의 외로움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이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언어, 풍경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에 ‘자유’니, ‘외로움’이니 하는 단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우리말, 우리나라 사람에 취해서 격하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그 마음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들에게 ‘여행자’로서의 동지의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