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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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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마루벌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
마루벌 펴냄(1997)

겨울이 되면 피해갈 수 없는 그림책 작가가 레이먼드 브릭스다. 그의 그림책은 유난히 겨울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많다.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은 <산타 할아버지>와 연작인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는 물론 <곰>도 겨울 느낌이 물씬 난다. 물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애니메이션으로도 큰 인기를 끈 <눈사람 아저씨>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아이는 눈사람을 만든다. 자기 키보다 더 큰 눈사람을 만들고는 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를 매준다. 아이는 스스로 만든 작품에 뿌듯하다. 이윽고 밤이 되었지만 아이는 온통 눈사람 생각이다. 잘 있을까, 추운데 괜찮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내다본 순간 놀라운 일이 시작된다. 눈사람이 모자를 벗고 아이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이는 눈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집 구경을 시켜준다. 거실과 욕실, 안방을 거치며 눈사람에게 집안 물건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눈사람은 호기심꾸러기에다 장난꾸러기다. 아빠의 옷을 입어보고, 두루마리 휴지로 장난도 친다. 구경을 마친 둘은 거하게 음식을 차려 밤참을 먹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눈사람이 아이를 안내할 차례다. 눈사람은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손을 잡고 하늘을 난다. 그래서 성을 구경하고 부둣가에 가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이 장면에 모두 열광한다. 밤하늘을 날아 먼 곳을 가서 보지 못하던 풍경을 보고 돌아오는 것. 이건 글자 그대로 아이들의 꿈이다. 낮에 만든 눈사람이 밤에는 마법이 풀린 듯 살아나고 그 눈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런 꿈은 누구나 한번쯤은 꾸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꿈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만드는 눈사람은 아버지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보다 못한 친구, 자기의 약한 부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수동적이고 여러모로 부족한 눈사람을 만들어 내며 아이들은 역으로 자신의 유능함을 확인하고 우월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든 물건을 만들든 그 시기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존재를 담아내는 경향이 있다. 눈사람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필요한 아이는 친구 눈사람을, 엄마가 필요한 아이는 엄마 눈사람을 만든다.

브릭스에게 절실한 존재는 아빠였다. 그것도 친밀한 아빠다. 자기 일에 빠져 있는 아빠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빠, 아이의 바람을 이뤄주는 아빠다. 강하고 능력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미있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아빠를 그는 바라고 있다. 그의 눈사람은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와 무척 닮아 있다. 이 그림책이 그려진 1970년대 말의 영국의 아이들에겐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빠가 필요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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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브릭스는 이 그림책에 글을 넣지 않았다. 다만 만화처럼 작은 구획을 나누어 많은 장면을 그려 넣었기에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듯 이야기의 줄거리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오직 색연필만으로 그린 그림은 따뜻하면서도 섬세해 작은 그림이지만 인물들은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 글이 없어도 이 책을 즐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르게 아이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마루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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