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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붓다들을 위한 채식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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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다. 지난 여름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오면서부터 마음이 어찌나 이상하던지, 한 달 이상이나 괜히 우울했다. 그러고는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다는 군에서 보내 온 첫번째 편지와 입고 들어갔던 옷과 신발이 담긴 소포를 받았다. 퇴근 후 경비실에서 소포를 찾아오는데, 경비아저씨는 내가 울거라는 확신을 100% 하고 계신 듯 위로를 해주셨다.

 "다들 가는 군대니까 괜찮아요. 이거 열어보면 마음이 좀 그러실텐데  맘 단단히 먹고 열어보세요. "

아들이 군대 간 다음 부터는 경비 아저씨든, 택시기사 아저씨든, 동네 가게 아주머니든 나와의 대화는 모두 군대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흘리고 다녔던게다. 역시나 소포를 여는 순간, 일제 징병을 보낸 어머니 코드로 마음이 전환되었다. 아들의 편지는 독립투사의 혈서라도 되는 냥 비장한 각오로 쓰여져 있었다. 엄마라는 말 대신 어머니라는 극존칭을 사용한 점은 뭔가 좀 뭉클하기까지 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지겨운 한문원서들과 씨름하며 띠동갑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국가고시를 치뤄야 했다. 정성을 듬뿍 쏟아도 시원찮을 나이에 엄마는 늘 바쁜 입시생으로 살았고, 아이는 저절로 컸다. 주중에는 차려놓은 밥상을 먹고 혼자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밀린 과제때문에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 엄마의 등짝을 보며 성장한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시리고 속상해서 눈물이 저절로 흐르곤 했다. 때로는 내가 참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 좋은 일만 하고 사느라 정작 내 아이는 돌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한약국을 찾아오는 엄마와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저 나이 때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저 아이들은 참 사랑을 많이 받고 크는구나... 저렇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단과 균형잡힌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다니,, 우리 애한테는 이런 혜택을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

이제 조금 정신이 들고 여유가 생겨서 아이에게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벌써 다 커버렸으니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에 아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그저 미안할 뿐.

 

군대 보낸 후 한달 간은 이 증상이 더 심했었다. 괜히 미안해지고, 울컥울컥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휴가나온 아들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분모 위에 올려진 분자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누군가의 분모가 되어 다른 사람을 떠받쳐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의외의 반전이란 말은 이럴 때 쓰여져야 한다. 우리 아들은 전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면서 욕도 한번씩 뱉는 그저 평범한 요즘 아이였다. 그다지 반항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반짝거리지도 않는 아이. 그랬던 아이가 자신의 소신을 표현하는 것을 보니 내가 그렇게 잘못 산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모하리만치 어설픈 채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뛰어다니며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욕을 먹으며 살아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내 아이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제서야 나는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참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서야 그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말고 정말로 기쁘게 가르치고 치유하고 사랑해줘야지.. 내 아이가 준 선물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 신년을 맞기 하루 전, 몇 해전부터 나를 스승이라 따르는 남학생이 손수 빚었다며 만두와 쿠키를 싸들고 왔다. 나를 만난 이후 채식을 하게 되었고, 환경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최근에는 명상도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채식인이 된 후로는 외식도 마땅치 않아 학교에 갈 때도 직접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다는 이 학생의 요리실력이 날이 갈수록 향상된다 싶더니, 만두를 맛은 물론이고 보기에도 탐스럽게 빚어온 게 아닌가. 그날은 마침 한약국에서 어린이 명상모임이 있었던 날인데, 만두 이름을 이렇게 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작은 붓다들을 위한 채식만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어린이들의 사랑스런 모습과 손수 빚은 정성어린 만두를 들고 스승을 찾아온 아름다운 마음이 너무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 기린의 채식레시피 ] 

작은 붓다들을 위한 채식만두

 


131230_기린1.jpg 


재료 : 만두피, 볶은 두부, 들기름, 부추, 당면, 김치, 양파. 소금, 후추


1. 신김치나 잘 익은 김치는 물기를 꼭 짜서 잘게  다져썬다

2. 부추와 삶은 당면, 양파도 다진다.

3. 고기가 안들어가는  대신 다진 두부를 들기름에  약간 씹히는 맛이 날때까지 노릇하게 볶는다.

4.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며 모두 섞는다.

5. 만두피에 넣어 예쁘게 만들어 찌거나 굽거나 만두국을 끓여 먹는다.



<채식만두국 끓이는 방법>


기린3.jpg 


1. 고기국물 대신 맑은 채수를 넣는다. (다시마, 표고, 무, 생강 등으로 미리 채수를 끓여도 좋다)

2. 집간장과 들기름으로 국물맛을 내고,  마지막에 소금, 후추로 간한다.

3. 두부를 떡크기로 얇게 납작 썰어 넣어도 좋고, 유부를 얇게 고명으로 얹어도 맛있다.

   또는 연두부를 오일에 볶아  넣으면 국물맛이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자식일은 장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아이들은 크면서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늘 안심했다가도 내일이면 아슬아슬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오늘 한숨을 쉬다가도 내일 웃을 일을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의 자리는 얼음 위를 걷는 듯 조마조마하고 때로는 위태롭기까지 한 자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그 길이 고단하고 불안해 보여도 우리가 엄마의 자리, 아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우리 앞에 서 있는 세상의 작은 붓다들이 저들만의 노래를 부르며 활짝 그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자라나기를 염원하며 갑오년 새해를 시작한다. 올해는 더 많은 작은 붓다들과 만나 소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린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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