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불안·대출상환 부담 소비줄여
불황형흑자 지속땐 내수회복 발목
자금 부족에 가계빚 규모 점점 증가
저소득층 이자갚기도 버거운 처지
가계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소비 여력이 살아나지 않는 ‘불황형 가계흑자’가 지속되면서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저소득층 가구의 채무상환 비율은 57%로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급급했다.
엘지(LG)경제연구원은 16일 ‘가계흑자 계속되지만 소비 늘릴 여유는 없다’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래 불안과 원리금 상환 부담 등으로 추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계가 많아 부채가 늘어나고 소비 여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에서 당분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보고서를 보면, 가계흑자율(가계소득에서 지출을 하고 남은 흑자액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에 27.5%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추세로 가계수지는 소득에 비해 소비 증가세가 더 빠르게 둔화하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 기조가 뚜렷하다.
2010년 이후 가계(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의 연평균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4.5%로 외환위기 이후와 금융위기 이전 시기(1999~2008년)의 6.2%에 비해 둔화됐지만, 소비 증가율은 같은 기간 5.6%에서 2.7%로 급락했다.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에 비해 소비를 하지 않음으로써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건우 엘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기부진에 따른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과 원금상환 부담 증가, 전월세 보증금 증가, 노후 대비 저축 수요 등이 어우러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가계수지의 흑자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지 않는 현상은 같은 시기 가계부채가 줄어든 선진국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늘어난 가계 저축을 자산 매각과 함께 부채를 줄이는 데 투입한 주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저축만으로 자금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추가 차입에 의존하는 가구가 여전히 많은 게 현실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2010년 하반기 82조원이던 대출상환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144조원으로 늘었다.
반면 신규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115조원에서 158조원으로 증가했다. 신규대출 규모가 상환액을 앞서면서 전체적으로는 대출 잔액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가계부채 부담은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경제주평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에서, 저소득층(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의 채무상환 비율(원리금 상환액/가처분소득)이 2012년 42.6%에서 지난해 56.6%로 높아져, 이자 갚기에도 버거울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통상 채무상환 비율이 40%를 넘어서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채무자로 분류된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소득층의 채무상환 비율은 중소득층(28.1%)과 고소득층(26.2%)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저소득층의 절반 이상은 대출 기한 내 상환이 불가능해, 소득계층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가계부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