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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살랑살랑 나비에 눈팔린 아기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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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6350901_20140217.JPG» 그림 비룡소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기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낸시 태퍼리 지음, 박상희 옮김/비룡소 펴냄(1999)

아직은 뽀얀 얼굴에, 달리는 품새는 아슬아슬한 아가지만 두 돌이 지나면 아이는 저만의 모험을 시작한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울음을 터뜨리던 시절은 까맣게 잊고 부모가 손을 잡으려 하면 이내 뿌리친다. 어찌 보면 대견스럽지만 부모에겐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서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아이가 눈에 안 보여 덜컥 가슴이 내려앉은 경험을 한 부모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른바 멀티태스킹이 쉽지 않은데 아직 두뇌의 생각하는 힘이 그만큼 자라지 못해서다.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채우면 다른 생각은 까맣게 잊는다. 멀리 지나가는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좋아서 따라갈 뿐 그러다 부모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덕분에 무엇을 보든,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이제 막 세상 경험을 하면서, 머릿속에 사물의 표상을 하나둘씩 만들어가야 하는 아이의 처지에선 한가지에만 깊게 빠져드는 편이 오히려 유리하다. 사물의 공통점을 찾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생각할 재료가 모인 다음에야 필요한 능력이다.

낸시 태퍼리의 <아기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에 나온 아기 오리 역시 살랑살랑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나비에 매혹되어 작은 모험을 시작한다. 나비가 머리에 들어온 이상 엄마가 나를 찾을 것이란 생각이나 엄마를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그런 불안이 머리를 채우고 있는 아이라면 모험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다. 두가지를 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이 아가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적당함이나 균형은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아가들은 이 그림책을 보며 아기 오리에 푹 빠져든다. 자기 모습이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진정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 오리 때문이다. 엄마 오리는 연못의 여러 친구들에게 아기 오리를 보았는지 물어보며 열심히 찾아다닌다. 해오라기와 거북이, 비버 아저씨에게 아기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고개를 물속에 넣고 아이를 찾아본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지만 늘 자기를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숨고, 그런 자기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엄마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게다가 자기가 사라져도 엄마가 엄마 오리처럼 열심히 찾아다닐 것이라 생각하며 안심할 수 있다. 안심과 믿음은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안심해야 재미난 모험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엄마 오리가 아이를 찾은 순간 역시 매력적이다. 엄마는 아이를 찾느라 고생한 것, 마음 졸인 것에 대해 아이를 야단치지 않는다. 심지어 다음에는 이야기하고 가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앞장서 연못을 헤엄쳐 간다. 늘 부모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들은 이 모습에 푹 빠져든다. 갈 곳이 뻔한 연못이 아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런 부모가 되기란 어렵고,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게 불안해서 아이의 모험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아이를 더 작고 무능하며 내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라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균형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어려운 말이지만, 부모는 아이가 아니기에 균형을 잡으려 애써야 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비룡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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