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49시간 연속 ‘나쁨’ 최장 기록
시민들, 미세먼지 피하려 안간힘
며칠째 외출커녕 창문 꼭꼭 닫아
거리서 신호대기땐 건물로 피난
노점상들은 장사 안돼 울상
마스크·공기청정기 매출은 ‘껑충’
중국발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뒤덮으며 시민들의 일상까지 뒤바꾸고 있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3일 저녁 7시부터 25일 저녁 8시까지 49시간 연속 ‘나쁨’(121~200㎍/㎥) 단계를 지속했다. 기상청이 정밀 관측을 시작한 200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25일 서울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까지 올라갔다.
미세먼지가 엿새째 이어지는 등 일상화하자,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고 아이를 둔 부모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시민들은 횡단보도 대신 지하도를 이용해 거리를 오간다. ‘은밀한 살인자’ 미세먼지를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가 가장 걱정이 크다. 미세먼지 ‘나쁨’ 단계는 노약자들이 실외활동을 할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이다. 생후 8개월 된 딸을 키우는 주아무개(34)씨는 “아이 건강에 안 좋을까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외출은 물론 집 환기도 제대로 못 시킨다. 문을 닫아두는 것 말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게 가장 답답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3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한아무개(31)씨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보챌 때마다 괴롭다. 요새 날이 풀리고도 미세먼지 때문에 못 나가는데 아이 달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25일 오전 9~12시 서울 등지에선 미세먼지 농도가 성인도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매우 나쁨’(201~300㎍/㎥)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3가 횡단보도 근처에 있는 은행 안은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이들로 붐볐다. 직장인 김아무개(39)씨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잠깐이라도 먼지를 안 마시려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지하도도 대피 장소다. 서울 중구의 한 지하상가 앞에서 만난 직장인 김아무개(30)씨는 “원래 답답해서 지하로는 잘 안 다니는데 바깥 공기가 안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근처 지하상가에서 4년째 옷가게를 하는 고미영(55)씨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 지하도에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미세먼지는 상인들을 웃기고 울린다. 노점상인들이 가장 괴롭다. 서울 종로구의 한 극장 앞에서 군밤을 파는 안아무개(56)씨는 “이런 날은 매출이 평소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를 피해 다니느라 노점을 이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단다. 안씨는 “나부터도 아이들한테 길거리 음식 조심하라고 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는 대목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신동미(60)씨는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 매출이 3~4배 정도 오른다”며 “다른 때보다 안약이나 기관지 약도 훨씬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공기청정기도 거의 필수품이 됐다. 서울의 한 전자제품 양판점에선 2월 공기청정기가 1년 전에 견줘 10배 넘게 팔렸다.
이재욱 정환봉 박기용 기자, 김정수 선임기자 uk@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