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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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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7792101_20140303.JPG» 현북스 제공

서천석의내가 사랑한 그림책

사과가 쿵
다다 히로시 지음, 정근 옮김
보림(2009)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을 처음 본 부모들은 이 그림책이 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림은 엉성해 보이고 내용은 단순하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자면 의문 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나오는 동물들의 상대적 크기에 비추어 볼 때 사과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하긴 그렇게 큰 사과부터 있을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부모에게 갖고 와서 읽어달라고 매번 조르고, 그럴 때마다 부모는 어설프게 동물들이 먹는 흉내를 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 모습에 까르르 넘어간다. 가끔은 자기도 사과를 먹을 것처럼 책에 입을 갖다 대는데 보드북으로 나와 다행이지 안 그러면 아이의 침에 책은 금방 걸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이 책을 좋아할까?

이 책은 전형적인 읽어주기 책이다. 그런데 읽어주는 글귀가 의미를 가진 낱말은 아니다. 대부분이 의성어, 의태어다. 개미들은 야금야금 먹고, 벌과 나비는 쪽쪽쪽 빨아 먹고, 너구리와 여우는 아삭아삭 먹는다. 악어는 우적우적, 사자와 곰은 와사삭와사삭, 기린은 긴 혀로 날름날름 먹는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연속이다 보니 읽어주기에 어설픈 부모라도 리듬감 있고 생생하게 읽어주게 된다. 아이들은 따라 하기 쉬운 발음이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좋아한다. 듣고 말할 때 재미가 있어 처음 말을 배우는 아가들이 흥미를 붙이기에 좋다.

책의 구조 역시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중요한 요소다. 이 책은 짧은 패턴이 반복된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각각의 동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사과를 먹는다. 동물은 달라지고 먹는 소리도 달라지지만 사과를 먹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아가들의 주의력은 아직 이야기를 따라갈 정도가 못 되기에 비슷한 패턴이 작은 변주를 주며 반복되어야 계속 흥미를 유지할 수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해 지루할 정도지만 아이들에겐 이 정도가 딱 즐겁다. 아이와 어른은 몸집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주의력에도 차이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잊는다. 그래서 어른이 좋아할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왜 나는 재미있는데 아이는 흥미가 없을까 답답해한다.

물론 형식적인 부분만이 이 책의 매력은 아니다. 사과 역시 아이들에게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요즘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아가들이 먹는 첫 번째 과일이 사과인 경우가 많았다. 모유나 미음만 먹다 사과의 단맛과 미묘한 신맛을 처음 느꼈을 때 아이는 비로소 맛의 세계에 눈을 뜬다. 동그란 모양에다 겉은 붉지만 한 입 깨물면 엄마의 속살과 같은 색을 띤 사과는 생김새조차 아이들에게 강한 욕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사과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큰 동물들까지 모두 나눠 먹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꿈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맛나지만 먹으면 사라졌던 사과는 늘 아쉬웠는데,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고 비가 오면 나를 감싸서 지켜줄 사과. 아이들은 그런 사과가 갖고 싶다. 그런 사과가 있다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될 텐데. 함께 나누고 모두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텐데. 결국 이 책은 아이들의 꿈이다. 그것도 부모가 재미나게 읽어주기에 더 즐거운 아이들의 꿈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비룡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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