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지음,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1991)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가방이 조금만 무거워도 돌아다니기 싫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자는 아이는 업고 기저귀 가방은 둘러멘 채 나들이를 해낸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 낳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을 해내는 제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정말 강한 것은 아니다. 늘 자신이 잘하고 있나 걱정스럽고 혹시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현실의 엄마는 흔들리고 약하다. 다만 그런 모습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으려 강한 척 가면을 쓴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지켜야 하니까.
아이들은 강한 엄마를 원한다. 무서운 엄마는 원하지 않지만 강한 엄마는 아이들의 바람이다. 아이들은 엄마와 자신을 별개의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가 강하면 자기도 강해지고, 엄마가 똑똑하면 자기도 똑똑하다고 느낀다. 자기 스스로를 믿기 어려운 아이들은 부모를 이상화하여 그 속에서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부모처럼 나도 강하고 멋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현실의 부모는 결코 아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애써 부모를 포장한다. 그래야 자신이 안정 속에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토 와키코의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는 아이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엄마는 요즘은 보기 드문 강한 엄마다. 외모부터 튼튼해 보이는 엄마는 행동도 거침이 없다. 엄청난 양의 빨래를 후딱 해버리고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빨 것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한다. 하늘에서 무서운 도깨비가 떨어졌지만 엄마는 조금도 겁을 내지 않는다. 그냥 빨래통에 넣고 빨아버린다. 어찌나 세게 빨았는지 도깨비는 얼굴조차 사라졌지만 아이들이 눈, 코, 입을 그려주자 다시 살아난다. 전화위복으로 심술궂던 얼굴은 예쁘게 변했다. 그러자 이제 그 모습이 부러운 수많은 도깨비들이 구름처럼 나타나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나도 빨아주세요.” 이런 난리판에도 엄마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당당하게 외친다. “좋아, 나에게 맡겨!”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무서운 도깨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하는 엄마에게 열광하고, 도깨비의 얼굴을 아이들이 새로 그려 넣어 예쁘게 바꾼다는 설정에 재밌어한다. 그림책 속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무서운 것도 없다. 그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자기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실의 엄마는 그리 강하지 않지만 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면 왠지 엄마도 더 강해 보인다. 자기도 힘이 쑥쑥 날 것만 같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와 이 책을 읽길 원한다. 안정감을 느끼고, 더 강해지고, 더 자라고 싶기 때문이다.
빨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살림살이로 이처럼 거침없이 상상을 펼쳐나간 사토 와키코의 이야기 전개는 그야말로 속이 시원하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걱정투성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어차피 지나갈 것이고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걱정은 현실을 더 잘 맞이하기 위한 수단일 때만 의미가 있다. 걱정한다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걱정을 멈추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진 것도 없고, 믿을 것도 없지만 그냥 배짱을 좀 부려야 한다. “좋아, 나에게 맡겨.” 엄마에겐 배짱이 필요하다. 배짱 좀 부려도 된다. 세상에 그처럼 자식을 더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한림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