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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이들의 가슴에 나무를 심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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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38599919_20140414.JPG» 그림 시공주니어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나무는 좋다

재니스 메이 우드리 글, 마르크 시몽 그림, 강무홍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1997)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 담백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마르크 시몽의 그림도 좋고, 화려한 수식어 하나 없는 단조로운 서술만으로도 유려한 시구를 만들어낸 재니스 메이 우드리의 글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가 좋다. 시몽의 그림과 우드리의 글이 좋은 것도 그들의 그림과 글이 나무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나무처럼 멋스럽고 글은 나무처럼 단단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니 읽는 중간에도 자꾸 창밖으로 눈이 간다. 언제나처럼 거기엔 나무가 서 있다. 새삼 그 나무들이 사랑스럽다. 얼른 나가서 줄기를 손으로 쓰다듬고, 이파리들이 바람에 몸을 흔드는 것을 보고 싶다. 그 푸르름을 가슴에 담고 싶다.


우리는 나무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잊고 살지만 나무가 없는 삶이란 없다. 부모가 고맙지만 부모를 잊고, 내 몸이 나를 지탱하지만 내 몸 생각을 안 하고 살 듯 우리는 나무의 고마움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마움보다는 당장 내 마음을 끄는 것이 우선인 것이 인간이다.

<나무는 좋다>는 담담한 말로 아이들 눈높이에서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사랑할 만한 존재인지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나무는 놀이터이고, 뜨거운 해를 피해 쉴 수 있는 그늘이다. 낙엽과 나무 막대와 같은 장난감을 주고 맛난 사과도 준다. 어느 곳에나 있는 나무는 어느 곳에서나 그 자리에 꼭 맞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어른들은 대개 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작은 나무 하나라도 얼른 공터에 심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다섯 살 무렵의 아이에게 읽어줬을 때 아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림만 보고도 마음속에 나무의 푸른 기운이 가득 차 신나는 말투로 “재밌지? 나무는 너무 멋지지 않아?” 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이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책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아이와 대화를 했다. 나무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즐거웠던 시간까지. 나무를 타고, 나무 위에 올라가 즐겼던 놀이들, 나무의 잔가지로 하루 종일 운동장에 낙서를 하고 놀았던 기억, 아이가 기억 못하지만 아이와 함께 간 여행에서 땄던 귤 이야기까지. 그렇게 나무가 이야기 속에 들어오자 아이도 나무에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나무는 자기 삶 속의 친구가 아니었다. 도시의 아파트 숲 속에 사는 아이에게 나무는 그리 가까운 대상은 아니었다.


어쩌면 유아들에게 나무는 너무 크다. 고개를 들어도 눈에 다 담을 수 없다. 친근하게 여길 정도로 만만한 크기도 아니고 동물과는 달리 움직임이 없으니 호기심도 덜 간다. 크고 단단하기에 든든하지만 마음을 주기엔 부담스럽다. 내 것 같지가 않다. 친구라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아이에게 오래 보여주어야 한다. 자연이 우리 삶으로부터 몇 발자국 쫓겨난 시대이기에 더 이상 자연을 밀어내지 않도록 아이와 이 그림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나무 심는 아이가 나온다. 작은 나무를 심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뿌듯해하는 아이가 나온다. 너무 큰 나무가 아닌 자신에게 만만한 나무, 내가 심었고, 내가 자라며 함께 자라는 나무를 보며 아이는 나무에게 정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줘야 한다.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을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시공주니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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