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우정의 거미줄![20131223_한미화.JPG 20131223_한미화.JPG]()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김경 옮김
창비 펴냄(1985)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책이 있기 마련인데 내게는 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우정의 거미줄>이 그렇다. ‘동화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려준 책 중 한 권이기 때문이다. 1953년 뉴베리 영예 상을 받은 작품이며 미국 어린이들의 스테디셀러로, 다코타 패닝이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한 연예인이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기까지 했으니 동화로는 이례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렇게 잘 알려졌으니 구태여 또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첫사랑을 못 잊듯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을 놔두고 어떤 동화를 말하랴 싶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라벨 집안의 막내딸 펀은 유난히 약하게 태어난 새끼 돼지 윌버를 우유를 먹여가며 정성으로 보살핀다. 덕분에 무럭무럭 자란 윌버는 이웃 주커만의 농장으로 옮겨지는데, 펀의 보살핌을 받다가 외떨어진 윌버는 심심하기 짝이 없다. 하루 종일 풀이 죽어 흐느껴 울던 날 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니, 윌버? 내가 친구가 되어 줄게. 난 오늘 종일 널 지켜보았는데, 네가 마음에 들었어” 하는 가냘픈 목소리를 듣는다. 밤새 설레던 윌버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알사탕만한 크기의 잿빛 거미가 여덟 개의 다리 중 하나를 윌버를 향해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거미의 이름은 샬럿 에이 캐버티카!
친구가 생겼지만 윌버에게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성탄절 무렵 베이컨과 햄을 만들기 위해 윌버를 죽일 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 종일 징징거리는 친구를 보다 못한 샬럿이 윌버를 구해주겠다고 나서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고작 거미 한 마리가 무슨 수로 윌버를 구할까 싶지만, 샬럿은 그럴듯한 묘안을 짜낸다. 온 힘을 다해 ‘대단한 돼지’라는 말을 거미줄에 짜 넣었고 주커만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이를 기적이라 여기고 윌버를 특별하다고 믿기 시작한다. 연이어 샬럿은 ‘훌륭해’와 ‘눈부신’이라는 말을 짜 넣었고 윌버는 그 이름에 어울리도록 최선을 다한다. 정말로 훌륭하고 건강한 돼지로 변해간다. 마침내 농산물 품평회까지 출전하게 된 윌버를 위해 샬럿은 어떤 글자를 새겨 넣을까? 이번에 명예로운 돼지로 뽑히면 윌버는 죽지 않고 샬럿과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걸까?
동화는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숨겨놓았다. 혼자라는 것만큼 사람에게 두려운 건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이라면 같이 술 먹을 친구가 필요하고, 아이들이라면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하다. 나이, 사회적 지위, 재산에 상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믿어줄 만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외롭지 않다. 윌버는 지극히 평범한 돼지에 불과했지만 샬럿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샬럿이 훌륭하고 좋은 친구라고 믿어주는 한 정말로 훌륭한 돼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샬럿 역시 친구의 도움으로 별 볼일 없는 삶이 아니라 ‘훨씬 보람 있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친구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위대한 가치를 우리는 이런 책을 통해 만나고 느낀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이처럼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인생에 대해 말해 준다. 초등 3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