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룡소 그림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너무 부끄러워!
크리스틴 나우만 빌맹 글, 마리안 바르실롱 그림, 이경혜 옮김, 비룡소 펴냄(2012)
어떤 아이들은 부끄럼을 많이 타고 어떤 아이들은 행동에 거침이 없다. 부끄럼이 많은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부모도 답답하지만 정작 가장 답답한 건 바로 그 아이들이다. 부끄럼이 많다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재밌는 말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싶고, 신나게 운동장을 달리며 함께 뛰놀고 싶다. 하지만 말이 내키지 않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탓한다. 뭐가 그리 겁나냐고 다그치고, 한번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다며 비웃곤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다그치거나 비웃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격려한다고, 충고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이미 한두 번 해봤는데도 여전히 나서기가 두렵다면, 작은 일에도 자꾸 겁부터 난다면 아이는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내가 못난 아이, 부족한 아이인가 보다’고. 그리고 이제 더 근거를 갖고 용기를 잃고 만다. 두려움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틴 나우만 빌맹의 책 <너무 부끄러워!>는 부끄럼이 많은 레아의 이야기다. 레아는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부끄러워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지만 부끄러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운동장에서 놀고 싶어도 아이들에게 밀려 미끄럼조차 타지 못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어도 고백은커녕 멀리서 쳐다볼 뿐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반전 그림에 있다. 마리안 바르실롱은 그림의 왼쪽 절반은 그대로 둔 채 오른쪽 절반을 이중으로 만들어 정반대 내용의 그림 두 개를 그려낸다. 그 그림 중 하나는 레아의 소망이고, 나머지 하나는 레아의 현실이다. 친구들 앞에서 나비춤을 추는 레아의 그림에서 반쪽을 펼치면 부끄러워 혼자 서 있는 레아가 나온다. 이러한 반전은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자질구레한 설명 없이도 단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책은 이제 레아와 비올레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레아는 비올레트를 부러워한다. 비올레트는 무서움도 없고 뭐든 잘하는 것 같다. 장난도 잘 치고 웃긴 이야기도 많이 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비올레트가 갖고 있기에 레아는 비올레트의 약점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비올레트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 조심성이 없기에 장난은 종종 엉망인 결과를 만든다. 차분하고 신중한 레아 덕분에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비올레트는 오히려 레아가 부럽다.
결국 부러움은 허상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일 뿐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다. 지금의 나를 사랑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믿지 않으면서 자신감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에게는 강요보다는 격려가 필요하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하게, 그리고 천천히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결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비룡소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