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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육아의 괴로움, 육아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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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09135601_20140721 (1).JPG» 그림 지경사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안 돼, 데이빗!
데이빗 섀넌 지음
지경사 펴냄(1999)
 
날도 더운데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부모의 인내심도 바닥을 친다. 물론 아이가 날을 덥게 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이는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다. 육아가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는, 아이는 본능대로 행동할 뿐인데 부모는 놔둘 수 없다는 데 있다.

하루에도 아이들은 수십 번 말썽을 부린다. 데이빗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책은 표지부터 상징적이다. 데이빗은 읽으라고 있는 책을 밟고 올라선다. 그리고 탁자 위의 어항을 잡으려 한다. 딛고 선 책은 흔들리고 곧 탁자도 흔들릴 것이다. 어항은 떨어져 깨질 것이고 금붕어는 바닥에 나뒹굴 것이다. 그것을 예감하듯 금붕어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데이빗을 보고 있다. 이 순간 “안 돼!” 하고 소리 지르지 않을 부모란 없다. 그리고 그 위에 제목이 쓰여 있다. <안 돼, 데이빗!>. 데이비드 섀넌은 영리하게 제목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데이빗의 하루 일과다. 데이빗은 찬장 위의 쿠키를 꺼내려고 의자를 타고 오르고, 더러운 흙이 묻은 채로 양탄자 위를 걸어 다닌다. 목욕을 시켜놓으니 벌거벗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고 엄마가 요리를 하자 프라이팬을 국자로 치며 장난을 친다. 장난감으로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침대 위를 뛰어다니다 이내 집 안에서 야구를 해 화분을 깨뜨린다. 결국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 벌을 서고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엄마는 안아준다. “얘야 이리 오렴. 그래 데이빗. 엄마는 널 가장 사랑한단다.” 데이빗도 눈을 감고 엄마를 꼭 안는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장면에서 한숨이 푹 쉬어질 수밖에 없다. 눈물도 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미칠 지경의 심정. 그것이 육아다. 데이비드 섀넌은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그려낸 이 첫 번째 그림책으로 단번에 스타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부모는 아이의 모습에 공감하고, 내가 너무 아이에게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그럼에도 나 역시 아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반면 아이들은 데이빗의 악행에 신 나면서도 자신은 데이빗만큼은 아니라며 뿌듯해한다. “엄마, 난 저러지 않지? 응?” 아이의 이 말에 “그래, 우리 아가가 훨씬 낫지” 하며 꼭 끌어안게 된다. 이것이 이 그림책의 힘이다. 아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다른 아이의 모습을 통해 교육도 하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서천석.JPG»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육아란 버티는 것이다. 수많은 육아에 대한 조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다. 부모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어른스럽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다. 때로는 제지하고, 때로는 사랑을 주며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생생한 색채, 멋진 구도, 생략과 과장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낸 재미난 그림에 있다. 힘든 육아의 시기, 그 시기는 괴롭지만 가장 화려한 시간이다. 매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날것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더는 괴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그림은 희미해지고 즐거움도 줄어들지 모른다. 왜 좋은 건 같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아이러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지경사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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