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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내 마음을 편지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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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10241401_20140804.JPG» 그림 미래아이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우체부 아저씨와 비밀 편지
앨런 앨버그 글, 자넷 앨버그 그림
미래아이 펴냄(2003)

우체부 아저씨보다는 택배 아저씨가 더 친숙하고, 우편함을 열기보다는 컴퓨터를 켜야 편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삶이다. 손 글씨는 생일 카드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손으로 쓴 편지를 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에 속한다. 이런 변화는 불과 20년 사이에 일어났다. 앨버그 부부가 1986년에 <우체부 아저씨와 비밀 편지>를 출판했을 때만 해도 이들 역시 지금과 같은 변화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급변했고 그 덕분에 이 그림책은 다시 나오기 어려운 특별한 책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여섯 통의 편지와 이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놀랍게도 편지들은 한 통, 한 통 따로 인쇄된 채 책에 들어가 있어 아이들은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직접 편지를 꺼내 읽을 수 있다. 아이들로선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편지의 내용은 유명한 고전 동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낸 뒷이야기로 일종의 외전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발머리 소녀는 곰 세 마리의 집에 사과 편지를 보내 자기 생일 잔치에 초대하고, 거인 아저씨에게서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훔쳐 간 잭은 신나게 여행을 다니며 관광지에서 거인에게 우편엽서를 보낸다. 빨간 머리 소녀의 부탁을 받은 변호사는 할머니 복장을 한 늑대에게 할머니를 어서 풀어주라고 하고 <피리 부는 사나이 출판사>의 사장은 왕비가 된 신데렐라에게 왕비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해도 되냐고 편지를 보낸다. (심지어 견본으로 만든 작은 신데렐라 그림책도 동봉되어 있다.)

이 그림책은 한 권의 그림책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라 할 수 없다. 편지를 통해 <금발머리와 곰 세 마리>, <늑대와 빨간 머리>, <잭과 콩나무>가 하나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이야기에는 끝이 없으며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음을 경험한다. 편지란 본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앨버그 부부는 편지가 지닌 이어주는 구실, 연결의 기능을 영리하게 이야기의 연결로 확장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데 편지가 더없이 좋은 매개체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서천석.JPG»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유아들은 자기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려니 착각하고, 내 마음을 상대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주면 그것은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싫어해서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부모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은 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 마음을 잘 전달할 필요가 있고 편지는 이를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조금 귀찮지만 앉아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상대에게 보내는 것.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편지라고. 비록 전자우편이 대세고, 우체부 아저씨는 점점 보기 어려워지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만들기에 까다로운 이 책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미래아이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8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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