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깜박깜박 도깨비
권문희 글·그림
사계절 펴냄(2014)
아이들이 유난히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과 도깨비. 어두운 밤, 기괴한 몰골을 하고 나타나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데 무섭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이가 겁을 내면 부모는 이야기한다. “그런 것은 세상에 없어. 다 거짓말이야.” 아이는 부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나?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아이 입장에서는 세상사 무슨 일이든 확신을 갖기 어렵다. 세상은 아이의 머릿속에선 아직 뒤죽박죽이다. 현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아이는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공간을 상상을 통해 채워둔다. 그 공간에서 도깨비는 조금도 이상한 존재가 아니다. 더 엉뚱하고, 황당한 것도 아이들의 상상 속에는 존재한다.
권문희의 <깜박깜박 도깨비>는 우리 전통 도깨비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 그림책이다. 부모도 없이 남의 집 일을 거들며 사는 소년에게 도깨비가 나타난다. 산길에서 마주친 도깨비는 소년이 하루 일을 해서 번 돈 서 푼을 빌려달라고 한다. 소년은 겁이 나서 할 수 없이 돈을 빌려줬고 이게 운명을 바꾼다. 도깨비는 매일 와서 돈 서 푼을 갚는다. 어제 이미 갚았다고 해도, 어제 빌렸는데 어떻게 어제 갚을 수 있냐고 하며 매일같이 돈을 갖다 준다. 돈만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소년의 집에 있는 낡은 가재도구를 보더니 냄비도 갖다 주고 방망이도 갖다 준다. 맛난 음식을 뭐든 지어내는 요술냄비이고, 두드리면 뭐든 나오는 요술방망이다. 가난한 소년은 큰 부자가 된다.
우리 도깨비는 못된 사람은 욕보이지만 딱한 사람은 도와주는 괴물이다. 어리석고 멍청하지만 착하고 순수하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여백을 충분히 두고 담백하게 그려낸 권문희의 그림은 익살스럽고 귀엽다. 반복 어구가 흥겨운 도깨비의 대사는 내용뿐 아니라 글씨체도 재미나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즐거워하고, 또 읽으며 즐거워한다. 그러면서 모든 낯선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이에게도 도깨비가 필요하다. 부모에 비해 아이는 약하다. 언제나 눌릴 수 있다. 계속 눌리면 스스로 귀신이 된 듯 생명력을 잃고 잔인해진다. 잠시 눌릴 때도 필요하지만 언제든 튀어 오르는 생명력이 아이에게 필요하다. 어리석은 도깨비를 비웃지만 아이도 안다. 자신 역시 아직 어리석은 것을. 그래서 부모는 말해줘야 한다. 어리석지만 그 안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그렇게 자기를 믿어야 아이는 쑥쑥 자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사계절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