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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꿈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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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3826501_20140929.JPG» 그림 낮은산 제공

공격당한 이라크 사람들과 
군인들의 고통을 함께 감싸 

1411898694_00513826301_20140929.JPG그 꿈들
박기범 글, 김종숙 그림 
낮은산·1만8000원(2014)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동화작가 박기범은 포탄이 쏟아지는 그 나라로 들어갔다.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고자” 해서였다. 평화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전쟁을 겪은 뒤의 무력감과 자괴감은 작가의 마음의 평화를 앗아간 모양이다. 펜을 들지 못하고 목수로 일했다는 작가. 그러나 그는 슬픔의 힘에 의지해 다시 글을 썼고, <그 꿈들>을 펴냈다.

책을 넘기면 여러 얼굴과 풍경이 하나씩 눈앞으로 뛰어들어온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알라위의 초롱초롱한 눈, 택시를 운전하며 예쁜 가정을 꾸리겠다는 하이달의 데이트 풍경,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다르기를 바라는 초등학교 교사 파라의 미소. 그러니까 이 꿈은 이라크 사람들의 꿈이다. 작가는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독자 앞으로 불러내온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웃임을 자신의 숨결로 증명하겠다는 듯한 글이니, 아주 찬찬히 읽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그들에게 폭탄을 퍼부은 군인들의 꿈이 나온다. “이 나라 아이들도 내가 떠나온 곳 아이들처럼 똑같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초등학교 교사 마이클, 자신의 열정과 용기를 미래의 장인에게 증명해 떳떳하게 청혼하려는 스미스, 가난한 집안을 지탱해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토미. 작가는 이라크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때와 다르지 않은 어조로 그들의 이름도 불러준다. 그 애잔한 어조로, 폭격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이라크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 전쟁이 그런 것인 줄 몰랐던 군인들의 찢기는 마음도 아프게 그려낸다. 전쟁에서 공격당하며 고통받는 이, 공격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함께 감싸 안는 깊은 연민의 목소리가 책을 읽는 내내 나직하게 울린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곳에 꿈들이 있었습니다”이다. 이제 꿈은 없다는 절망의 선언일까. 그러나 그림을 보면 그렇지 않다. 수줍게 활짝 웃고 있는 이라크 소녀의 얼굴은 새로운 꿈을 읽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꿈을 작가는 슬픔의 힘으로 끌어내고 싶어한다. 그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우리 모두가, 좀 더 오래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초등 3학년부터.

김서정 작가·중앙대 강의교수, 그림 낮은산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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