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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언젠가 용을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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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5160001_20141013.JPG» 현북스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빠가 용을 사 왔어요
마거릿 마이 글, 헬렌 옥슨버리 그림, 황재연 옮김
현북스 펴냄(2012)

용은 동양과 서양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실존하지도 않는 동물이 여러 문화권의 상징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경우다. 동양에서 용은 물에 산다. 물은 농경민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기에 물을 관장하는 용은 지혜의 수호자이자 강력한 힘과 권위를 지닌 존재다. 반면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용은 주로 동굴에서 기거한다. 불을 내뿜고 사나운 용은 퇴치해야 할 존재로 인간이 지닌 악한 힘을 상징한다.

이처럼 동서양에서 용이 상징하는 의미는 사뭇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용은 사람이 지니지 못한 강력한 힘을 품은 존재다. 선한 힘이든, 악한 힘이든 용은 강하다. 평범한 인간은 넘보기 어렵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융은 용을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힘을 지니며 때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때로는 우리를 삼켜버리기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무의식이다.

전래동화에서도 용은 강하고 무서운 존재다. 공주를 납치해 성 안에 가두기도 하고, 육지에 사는 토끼를 속여서 데리고 와 간을 빼어 먹으려 한다. 아이들은 민담 속의 용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려움을 품는다. 독립적인 존재로 살 기회를 주지 않고 자신을 다 먹어치우려는 존재가 용이다. 어쩌면 아이가 상상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부모의 가장 나쁜 모습이 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사가 용을 물리치고, 토끼가 용왕을 속이면 자기 일인 양 좋아한다. 반면 요즘 그림책에서 용은 더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저 귀여운 장난꾸러기이다. 둘리가 그렇고, 크롱이 그렇다. 용은 부모의 상징이 아니라 아이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가정에서 권력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빠가 용을 사 왔어요>의 용 역시 귀엽고 엉뚱한 녀석이다. 너무 지루하고 일상이 단조롭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애완동물로 용을 사온다. 용은 처음엔 작은 상자에 들어갈 만큼 작았지만 나중에는 마당 전체를 채울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 급기야는 시장이 와서 용을 동물원에 보내든 처분하든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가족이 고민을 하자 용이 말을 건넨다. 자기와 함께 마법의 섬으로 가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자고.

서천석.JPG»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이 그림책의 용도 강력한 힘을 지녔다. 하늘을 날 수 있고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용은 아이 내부의 꿈의 상징이다. 자유롭게 마음껏 상상을 펼쳐나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다. 가족이 함께 모험을 마치고 온 책의 말미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은 한 번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아이는 상상을 멈추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양이의 목소리를 빌려 한마디 한다. “다시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아이에게서 상상을 빼앗을 수 없다. 상상하기를 빼앗기면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아이의 강력한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상에서 온다. 상상이 곧 아이들의 용이다.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현북스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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