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장풀(달개비) |
[산야초 세밀화] 닭의장풀(달개비)
진짜 궁금할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
1년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노키드 부부, 아기를 갖다'연재를 했다.
음, 아시다시피, 애 안낳고 자유롭게 살려다가 아기를 갖게돼 낳아 키우는, 말그대로 좌충우돌 이야기였다.
그러다 복직을 즈음해 몸과 마음이 바빠지면서 글쓰기를 한동안 중단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운전을 하는데 갑작스레 어떤 깨달음이 뒷통수와 이마를 팍! 쳤다. 어엇!
왜 지금 이야기를 쓰지 않는거지?
복직을 하고, 진짜 어린 아기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되고 나서, 그 뒷얘기를 독자들은 알고 싶어할텐데.
어쩌면 정말 궁금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인데(애 두고 일하기 괜찮아? 누구 도움 받아? 일은 잘 돼? 해보니 힘들지? 후회도 좀 하지?)
비교적 여유로운 시절인 육아휴직기의 이야기만 남겨둔채
왜 지금, 이 찬란한 전쟁같은 나날의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거지?
대상은 없지만, 어쩐지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짬짬이 다시 기록을 하려고 한다.
기록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얼마전 내가 쓴 기사를 첨부한다.
내가 앞으로 하게될, 하고싶은 말의 많은 대목이 이 책 <린 인>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사를 통해 임지선 기자가 한겨레신문 문화부 책지성팀으로 복귀했다는, 뒤늦은 신고도 해본다.
앞으로 자주 글 올리도록 노력해볼게요~!^^
여성들이여 두려움 대신 기회를 움켜쥐라
올해 초 미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린 인>은 책의 서두에서 지은이가 예견했듯 ‘남녀 모두의 심기를 건드리며’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자녀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오후 5시30분에 퇴근하고, 비즈니스 회의에 두 아이를 데려가고, 유모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엘리트이자 고액 연봉을 받는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쯤 되니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가사일을 절반씩 분담하는 남편이라니! ‘보통 여성’들은 상상도 못할 조건을 가진 그가 여성들에게 건넨 “더 당당해지자”는 말은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와 빈곤여성노동자의 일상을 비교하며 샌드버그의 주장을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흥분 말고 내용부터 보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은행, 재무부를 거쳐 구글에서 일하게 된 샌드버그는 임신 기간, 9개월 내내 입덧을 하면서도 하루 12시간씩 사무실에 박혀 일을 했다. 출산휴가 3개월 동안에도 일을 쉬지 않았다. 복직 첫날에는 차를 몰며 앞으로 아기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아파 울었다. 여기까지, 학력과 경력은 차치하고 그의 고민은 ‘보통 여성’과 다르지 않다.
아기가 잠잘 때 집을 나와 잠들면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는 선택을 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30분에 퇴근해 아침저녁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겠다고 말이다. 일벌레이던 그가 5시30분에 퇴근하며 느낀 불안감은 엄청나다. “줄어든 근무시간을 들키면 직장에서 신임을 잃거나 자리 자체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려 “퇴근할 때마다 주차장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고 한다. 아이가 잠들면 다시 업무를 시작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회사 이메일을 확인했다.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직을 할 때는 밤샘 회의도 불사하는 회사 문화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찍 퇴근해 가족과 저녁을 함께한다”고 원칙을 고수했다.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은 한국 여성들과 얼마나 가까울까. 떠밀리듯 결혼하고, 아기 낳고 살면서 회사와 가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숱하게 널려 있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회사를 그만두려 하거나 너무 바쁜 부서에 가려 하지 않거나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길 주저하곤 한다. 부장님 눈치보며 종종걸음으로 퇴근해 집안일이며 시댁 김장까지 다 해낸다. “어쩔 수 없이” 하고있는 일들은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불안감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일지 모른다. 샌드버그는 그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 때문에 아프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리더가 되려는 야망이 적다”거나 “여성들은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린다”는 샌드버그의 ‘돌직구’에는 괜한 반감이 생기기 쉽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에게 좀더 당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가서 앉아 기회를 ‘움켜쥐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성은 식탁 테이블에 더 많이 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풀타임 직업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여성들이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기업이, 사회가 인지해야 하며 여성 스스로 남성 중심의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직의 절반을 여성이 운영하고 가정의 절반을 남성이 움직이는 세상을 꿈꾸는 샌드버그의 바람은 조롱받을 이유가 없다. 당장 오늘, 퇴근시간을 결정짓고 남편과 육아 분담을 의논할 용기가 지금 그대에게는 있는가?
새 중국동포 입주도우미를 구하기까지…
» 요즘 부쩍 큰 아들 민규의 모습. 대걸레 봉을 뽑아 마법을 한다며 휘두르고, 집아 모든 물건을 난장판처럼 쏟아놓고 논다. 첫째 아이를 동네에서 엄마들이 선호한다는 어린이집에 어렵사리 보낸 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시엔 형제자매 입학의 경우에는 우선 입학이 가능했기에, 둘째 아이는 때 되면 쉽게 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 부부는 개인적으로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36개월 이전에는 가능하면 일대일 양육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잘 알고 있는데다, 나 스스로도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보니 36개월도 좀 이른 느낌이 있었다. 첫째가 처음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떼놓으면서 내 가슴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갔는지 모른다. 오히려 아이가 집 앞 놀이터에서 이모와 신나게 놀고, 간식 틈틈이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경제적 부담을 지더라도 아이도 좋고 내 맘도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010년 8월에 태어난 둘째 아이는 5살이 되는 내년에나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언제 그렇게 내 맘대로 흘러가던가. <한겨레> 토요판에 중국 도우미(베이비시터) 관련 기사(http://babytree.hani.co.kr/?mid=media&category=38804&page=8&document_srl=101154)를 썼듯이, 2년 동안 둘째를 잘 봐오던 이모께서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났다. 당시 나는 방 이모를 너무 철석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모의 이별 통보에 핵폭탄을 맞은 느낌이었다. 다시 도우미가 입주한다 해도 방 이모처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겁이 덜컥 났다. 아무리 정을 줘봐야 도우미 사정으로 떠나겠다고 하면 내가 막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 그냥 어린이집에 보내자. 어떤 아이들은 돌부터도 가는데, 민규는 많이 컸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며 어린이집에 연락을 해봤다.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는 즈음이라 내가 보내겠다 생각하면 당연히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혹시 몰라 보육신청 사이트에 신청도 미리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형제자매 우선 입학 기준은 사라진데다, 3살 때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들이 상당수 그대로 올라하면서 새로 충원하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 부원장님은 “어머님~ 다행히도 일찍 신청하셔서 대기 1순위세요. 학기 중간에 가끔 빠지는 아이 있으니 여름 정도면 연락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저희가 전화하는 즉시 등원하셔야 해요.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요.”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볼까, 아니면 중국동포 입주 도우미를 다시 구할까. 파트타임 도우미를 구하고 갑자기 주 양육자가 바뀌지 않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더 나을지 등등 고민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5살부터 어린이집 보내면 너무 늦다며 당장 보내라고 성화였다. 최근 어린이집 입소가 빨라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번민과 갈등의 순간이었다. 그즈음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를 쓰신 서천석 소아정신과 원장과 <한겨레> 창간25주년 관련 설문조사 일로 연락할 일이 생겼다. 연락하는 김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 선생님께 여쭤봤다. 도우미를 새로 구하는 게 나을지, 이모와 강하게 애착이 형성된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30개월 아이인데 차라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나을지 등등 고민을 털어놨다.
서천석 원장은 나의 고민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었다.
“꼭 어린이집에 36개월 지나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마다 다릅니다. 30개월이 지났다면 일단 어느 정도 안정성은 확보한 것이니 아이가 특별히 불안감을 보이는 증상이 없다면 파트타임 도우미 분을 고용하고 어린이집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환경의 변화가 동시에 여러 가지 벌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좋게는 풀타임을 쓰고 3개월이 지나서 어린이집을 시도하고 이후 풀타임을 파트타임으로 바꿔가면 좋습니다. 그런데 풀타임->파트타임으로 바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겠죠. 이상적으로는 하던 분이 계시면서 어린이집 적응을 도운 후 그만두면 제일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전 도우미 분에 대한 애도 반응입니다. 부모들은 새로운 분을 구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지만 아이는 과거의 도우미 분에게 준 애착이 끊어지는 것을 괴로워할 수 있어서 이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합니다. 1달까지는 잘 봐야 됩니다.”
서 원장님의 메일을 읽고 복잡하던 생각들이 단숨에 정리됐다.
`일단 아이의 애도 반응에 집중하자.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일은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은 하지 말자. 지금 아이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입주 도우미를 구해서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자’고 결심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이모가 주양육자였던 민규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다시 중국동포 입주 도우미를 구했다. 방 이모와 함께 구한 이모는 며칠 함께 지내보니 도저히 우리 부부 양육 스타일과 맞지 않아 삼일 만에 그만두시라 했다. 그리고 10만원 정도 월급을 올려 새로 면접을 봤다. 10만원의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역시 도우미 시장은 돈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과 내 마음에 드는 분이 있어 어차피 돈 드는 것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분을 선택해 입주시켰다. 새로 오신 이모는 57살 흑룡강 출신이시고 이름은 김아무개다. 중국에 갔다 다시 재입국하신지 얼마 안 돼 비자 기간도 충분했고, 선한 인상을 가진 분이시다. 중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유학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하셔서 한국 음식을 제법 잘 하셨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첫 면접을 하고 일하기로 한 다음날 입주하시면서 이모께서는 지하철에서 샀다며 민규를 위해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팽이를 사오셨다. 주말에 쉬고 돌아오면서는 민지 민규 옷 한 벌을 사들고 오시기도 했다. 낯선 이모가 무서워 잘 가지 않던 민규는 팽이에 홀딱 반해 이모와 쉽게 가까워졌다. 민지는 이모가 사준 옷을 좋아했다.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뭐든 서두르지도 않고 아이들을 위해 기다려줄 줄 아는 이모가 우리 부부는 맘에 들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무릎이 좋지 않아 체력이 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흠이다. 그러나 인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믿고 맡길 만한 분이라 지금까지 넉달 째 잘 생활해오고 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쉽게 새로운 이모와의 생활에 빨리 적응해 이모와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은 것도 있다. 바로 아무리 도우미가 아이를 잘 키워주고 믿을만해도 양육의 주도권은 엄마인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방 이모가 2년이나 넘게 둘째 아이를 보살피면서 나의 아이에 대한 책임의식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방 이모가 나를 대신해 아이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고 있으니 너무 안심한 결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째 때 만큼 먹거리, 놀이, 습관, 하루 생활 패턴 등등에 덜 신경썼고, 이모가 하는 방식대로 방임했다. 기사를 쓰고 베이비트리 업무를 본다고 늦게 퇴근하는 일도 많았고, 술자리도 빈번하게 가졌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이모와 자는 횟수가 늘더니, 엄마와 자지 않고 이모와 자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이모가 그만두시겠다고 하니 그동안 아이가 애착을 형성해온 것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모와 애착을 잘 형성했다 하더라도, 내가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아이가 덜 걱정됐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너무 이모에게 양육의 주도권을 내어 주다보니, 이모가 그만두시겠다고 하는 순간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양육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내 생활 패텬을 다잡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잔다. 둘째, 힘들다고 이모와 아이가 잘 지낸다고 너무 이모에게 양육을 의지하지 않는다. 양육의 주도권은 내가 가진다. 셋째, 남편과 아이들에 관련해 더 자주 얘기하고 소통한다. 넷째, 주말 중 하루는 아이들과 몰입해 전적으로 논다. 가급적 이 네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믿고 맡길만한 도우미가 있어도 방심은 금물!
내 아이와 가장 친밀한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아이들은 엄마의 기운으로, 엄마는 아이들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차밭에 다녀온 날, 아루는 하루종일 시무룩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차를 타고 보내는 시간이 지루해서 그런 줄 알았다. 딸기 농장에 못 가서 단단히 골이 났다고 생각했다.
기분을 풀어주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장난도 걸어봤는데 시큰둥하기에 나도 힘이 빠졌다. 일곱 살 아이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묵묵히 견디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얼굴 구기고 있는 아이가 못마땅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불평하지 말자, 그러면 모두가 더 힘들어지니 얼굴 펴라고 잔소리를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든 아이가 내게로 기대었다. 잠든 얼굴을 보니 안쓰럽고 짠해져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마에 닿는 순간, 따끈따끈한 열감이 느껴졌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내 이마를 짚어 보고, 좌린 이마도 짚어 보고, 그제서야 알았다. 열이 났구나! 머리 아프다는 말을 몇 번 했는데, 불평하는 소리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애가 아픈 줄도 모르고 빗속에 끌고 다니고 짜증 낸다고 나무라기까지 하다니! 한없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가 아프면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괴로운데, 낯선 여행길에서 라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살면서 내가 원치 않았던 상황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나는 펑따오씨 이야기를 떠올린다. 펑따오씨는 남미를 여행할 때,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만난 대만 사람이다. 라디오 진행자라더니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마치 라디오를 켜 놓은 것처럼 입에서 재밌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펑따오씨는 자신의 이집트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스가 고장 나 멈추고, 사막 한가운데 버려지기도 하고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그러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눈앞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에 더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니까 나중에는 어떤 나쁜 일을 겪어도, ‘이것이 최악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나쁜 상황에서 더 나빠질 것을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낫다고 생각하면 현실에서 긍정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다.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9도가 조금 넘었다. 최악은 아니야, 그리 나쁘지 않아, 펑따오씨 교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다행히 다른 증상은 없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해열제가 있지만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한밤중에 열이 더 오를 수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손발을 주물러 주고 잠이 든 후에도 계속 곁에 머물렀다. 열 때문에 발그레 상기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말레이시아에서 지낸 일들이 한 장면 한 장면, 영화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란도란, 낮은 목소리로 잠든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씩씩한 네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어. 네가 어릴 때 처음 가는 낯선 놀이터에서 내 다리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낯선 곳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첫날부터 낯선 풍경, 낯선 모습의 사람들 속에서 씩씩하게 걷는 네가 참 대견했어. 타만네가라의 무시무시하게 울창한 숲, 까마득히 높이 매어 놓은 흔들다리에서는 나도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오히려 성큼성큼 앞서 가는 너를 보며 용기를 내었지. 쿠알라룸푸르에서 해람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너는 여행이 좋다고 했지? 새로운 것을 많이 봐서 좋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나도 그런 이유로 여행을 좋아해. 새로운 것에 눈뜨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니! 우리 모두 함께 볼 수 있으니 더더욱. 나는 우리가 느릿느릿 피곤할 정도로 걷는 가운데 조금씩 다가가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 빠르고 간편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힘들어도 그게 더 가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단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비가 오는데도 우리 함께 가 볼까? 했을 때 ‘그래!’ 라며 따라 나서줘서 고마워. 힘들어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잘 참아 주어 고맙고. 몸이 아픈 것은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신호야. 생각해보니 우리가 지난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너무 달려온 것 같아. 영하의 날씨에서 갑자기 삼십 도의 무더위를 경험하다가 또다시 서늘한 곳에 오니 몸이 적응 못 하는 것도 당연하지. 잘 자고 푹 쉬고 나면 금방 좋아 질거야. 열나고 아팠는데 살펴주지 못해서 미안.
아루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마음속에서 샘 솟았다. 이야기하면서 가슴이 뭉클했고 따뜻해졌고 힘이 났다. 아이가 아파서 머리맡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예상치 못한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는 것이 유명한 관광지에서 눈도장 찍고 인증 샷을 남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멀리 나가지 않기로 했다. 주차장처럼 꽉 막힌 도로를 떠올리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연히 게스트하우스에도 손님이 많았는데 아침이 되자 하나 둘 집으로 혹은 관광지로 빠져나가고 조용해졌다. 아이들을 늦게까지 재우고 느지막히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주인이 허락해주어 부엌의 전기밥솥에 전날 산 옥수수와 고구마를 쪘다. 좌린이 밖에 나가 쌀국수도 사왔다.
내 소원대로 아루는 많이 좋아졌다. 열은 남아 있었지만, 쌀국수에 옥수수를 양껏 먹었고 표정도 밝았다.
아루랑 끝말잇기, 손가락 숫자 게임을 했는데 오늘따라 내가 계속 졌다. 아루가 4를 부르며 엄지 두 개를 치켜들면 나도 따라 두 개를 다 올리고, 2하고 부르면서 저는 손가락을 하나도 안 드는데 나 혼자 두 개 다 들어서 지기도 했다. 하하하, 엄마는 내 말을 너무 잘 듣는 것 같아. 내가 말만 하면 그대로 되잖아!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얼마나 밝아지는지. 까짓것, 게임에서 지는 것쯤이야...
아빠는 아기 나무야! 아기가 주렁주렁 열렸네.
게스트하우스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다가 가까운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아직 열이 있는데, 괜찮을까?
차 타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뭐. 힘들다고 하면 내가 업어줄게.
아프다고 누워만 있는 것보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게 좋을 것도 같다. 숲에 가면 공기가 좋으니 머리가 맑아질 수도 있고.
애 둘을 안고 무단 횡단. 신호등이 거의 없다. 있어도 별로 의미가 없다. 늘 무단 횡단을 해야 하는데 차 방향이 우리랑 반대인데다가 차들이 보행자를 별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길 건너기가 무섭다.
버스 터미널 뒤에서 놀이터를 발견했다.
카메론 특산물들 모형. 머리 아프다던 아이가 신발 벗어 던지고 오르기 시작.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누나 따라 양배추 산에 오른 해람. 올라가긴 했는데 어떻게 내려가지?
드디어 숲 속으로 들어왔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걷기 쉽다.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울창하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막 쏟아지지는 않고 보슬보슬 조금씩 계속. 비라기보다 그냥 물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의 숲을 mossy forest 라고 소개하는 이유를, 숲에 이끼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바위를 뒤덮은 이끼...폭신폭신하다.
오늘은 비 맞으며 걸으라고 하지 않을게. 약속대로 머리 아플 때마다 좌린은 계속 아기 나무
로빈슨 폭포. 폭포 자체는 별로 멋이 없다.
엄마, 딸기가 먹고 싶어. 딸기 먹으면 머리 아픈 게 나을 것 같아.
산책로 입구로 돌아왔을 때 아루가 다시 딸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울 가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굳이 여기서 비싼 돈 내고 먹어야겠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아픈 아이 소원이니 들어주기로.
그래, 그래도 먹자! 딸기 먹자!
역시나 해람이는 초콜릿 바른 딸기 꼬치를 고르고...
순식간에 해치워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다.
실속파 아루는 딸기를 한 팩 골랐다.
아프다고 징징대더니 금세 웃고 계심.
누나가 머리가 아파쪄 딸기 먹고 고쳐야 돼.
(해람이가 두 돌 지나 말문이 막 터졌을 때 한창 하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원래 해람이 이야기는 ‘차가 쿵해쪄, 그래서 견인차가 왔쪄. 포도 먹고 딸기 먹고 고쳐야 돼.’-차가 부딪쳐서 사고가 나서 견인차가 끌고 갔어. 사람이 아플 때 약 먹고 낫는 것처럼 포도, 딸기 먹으면 낫는다는.)
딸기 약효가 50미터는 되었을까.
길바닥에 떨어진 깨진 아크릴 광고판을 발견하여 글자 맞추기를 한다.
정답은?
엄마, 이거 봐! 뱀 같지?
아이가 아프면
“아이들은 엄마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는 조산원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덩달아 지치고 힘들어지는데 이 말을 떠올리면서 기운을 차린다. 내 기운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힘을 내고 내가 가졌던 용기보다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엄마 또한 아이들의 기운으로 살아감을 깨닫는다. 아픈데도 잘 견디고 잘 노는 아이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그리고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내 곁에 있으니 마음속에 밝은 기운이 마구 샘 솟는다.
아루의 이 하나가 흔들흔들, 빠지기 직전이다.
애들 아프다고 애달플 거 없다. 애들이 아픈 건, 크느라고 그런 거다.
엄마 말씀이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
사족
카메런 하일랜드의 딸기 맛은
한 마디로 그저그랬다.
조그맣고 달지 않았다. 요즘 우리가 먹는 딸기에 비교하면 초라하고 맹물 같지만 옛날, 어려서 먹던 노지 딸기의 맛이었다. 옛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고, 품종 개량으로 크고 달게 만든 하우스 딸기보다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분노는 언제부터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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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토피피부염을 악화시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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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체험마을로 떠나볼까
반딧불이 보러 갈까 신나게 말을 탈까노
일월산 북쪽 자락에 자리잡은 청정 숲길 /박미향 기자 |
[한겨레 esc]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여행자들에게 손짓하는 농촌체험마을 5선
농촌체험여행은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과 푸근한 인심, 그리고 때묻지 않은 자연을 함께 누리는 여행이다. 대체로 쾌적하고 안락한 휴식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주민들의 삶을 엿보면서 그것의 일부나마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일정으로 이뤄진다. 주민들이 꾸려가는 여러 체험마을 중엔 나름대로 매력과 장점을 지닌 곳이 많다. 올여름 휴가여행지로 삼거나, 오가는 길에 들를 만한 체험마을들을 골라봤다. 재미있고 유익한 체험행사가 돋보이는 곳, 자녀와 함께 놀고 먹고 즐기기 좋은 곳들이다.
청정숲길 명상 영양 대티골 자연생태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일월산 북쪽 자락에 자리잡은, 청정 숲길(사진)이 매력적인 마을이다. 숲속교실에서 ‘반딧불이와 친구하기’(6월말~7월초), ‘가족 함께 야생화 그리기’를, 요리교실에선 ‘꽃쌈과 꽃밥 만들어먹기’ 등을 진행한다.
숲길 명상, 일월산 산행을 진행하고 ‘풀누리소반’이라는 자연식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산나물과 꽃, 열매 등 제철에 나는 재료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먹는 체험(1인 3만5000원)이다. 주민들이 차려내는 시골밥상(1만원)도 맛볼 수 있다. 대티골에 취사시설을 갖춘 독채형 숙소 황토구들방(1박 13만원부터)이 있다.
주변에 용화2리 자생화공원, 일제강점기 제련시설, 용화삼층석탑 등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대티골 주변 숲길은 청송~영양~봉화~영월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의 한 구간(비포장 옛 국도 등)이기도 하다.
☎체험 문의 010-3465-3467
반딧불이 관찰 괴산 둔율올갱이마을
충북 괴산군 칠성면 둔율2길(옛 율원리). 속리산국립공원 부근 달천 상류(둔율천)의 마을이다. 하천이 완만하고 물이 깨끗해 다슬기(올갱이)가 많이 산다.
주민들이 다슬기잡이와 민물고기잡이, 물놀이 등을 바탕으로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하천에 돌무지(돌무덤·돌무더기)를 쌓아두어 물고기들을 모은 뒤 주변에 그물을 치고 돌무더기를 허물며 고기를 잡는 체험이 인기다. 올갱이를 잡아 전을 만들어 먹는 체험도 있다. 초여름 밤엔 하천 주변에서 눈부신 반딧불이 군무를 만날 수 있다.
최종하 마을 위원장은 “요즘 반딧불이가 장관”이라며 “6월말까지 하천과 논 등에서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탐방행사를 주말마다 운영한다”고 말했다.
6월20일부터 7월 초까지는 감자 캐기 및 감자 쪄먹기, 이후엔 옥수수 따기 등 수확체험도 진행한다. 8월2~4일 제6회 둔율올갱이축제를 연다. 주변에 걸어볼 만한 숲길인 산막이옛길이 있고, 청정 골짜기인 갈은구곡도 멀지 않다.
☎체험 문의 010-9417-5244
매실따기, 달관측도 순천 향매실마을
전남 순천시 월등면 계월리. 향이 뛰어난 매실을 체험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향매실마을이란 이름을 붙였다. 25만평의 매실나무밭에서 주민들이 매실을 생산한다. 6월 말까지 매실 따기 체험을 할 수 있고, 6월20일 이후엔 감자 캐기도 할 수 있다.
인기 체험행사는 매실을 이용한 장아찌 담그기, 매실 효소 만들기, 말린 매화로 열쇠고리 만들기 등이다. 이번 6월부터 문을 연 대규모 한옥민박(2인 1박 5만원부터) 시설이 있어 한옥에서 묵으며, 마을 부녀회에서 제철 약초와 나물을 재료로 차려내는 약초밥상(1만원부터), 시골밥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여름엔 복숭아 따기, 밤중 산메기 낚시도 진행한다.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는 달관측소도 마련중이다. 조현자 마을 사무장은 “7월 말부터는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한 뒤 달 사진을 컬러 출력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고 자랑했다. 차로 1시간 안쪽 거리에 태안사, 선암사, 정혜사 등 고찰이 있고 순천정원박람회장, 낙안읍성도 가깝다.
☎체험 문의 010-7512-1001
레저스포츠·먹거리 특화 양양 해담마을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산 깊고 물 맑은 양양 구룡령 자락 미천골 들머리에 자리잡은 체험마을이다. 청정 자연이 돋보이는 이 마을에선 어린이들이 좋아할 레저스포츠 체험과 친환경 먹을거리를 특화시켜 눈길을 끈다.
쌍천 물길에서 즐기는 수륙양용차(4인승) 타기, 카약(2인승) 타기, 뗏목(3~4인승) 타기 등이 인기다. 수륙양용차의 경우 물길과 숲길을 넘나들며, 15분(1인 1만원)·25분(1인 2만원)짜리 두 코스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활쏘기(양궁·20발 5000원)와 송어 맨손잡기(1인 1만5000원) 체험도 있다. 송어(2인 1마리 가능)를 잡아 오면 즉석에서 회를 떠주거나 구워준다.
양승범 마을 사무장은 “7월 중순엔 야영장 앞에 사륜구동차량(ATV) 체험장도 문을 열어 8월 중순까지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갈로(4만원부터)와 펜션(15만원부터)에서 묵을 수 있다. 방갈로는 6만원짜리부터 난방이 된다. 가까운 곳에 미천골 선림원터, 미천골휴양림이 있다. 구룡령 자락엔 갈천약수가 있고, 미천골 안쪽엔 불바라기약수도 있다.
☎체험 문의 (033)673-2233
승마체험 빙떡만들기 제주 청수마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 숲지대 탐방을 하며 주민들이 마련한 이색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승마체험학교다. 일반 말타기 체험 말고도 체계적인 이론교육과 함께 진행하는 심신 치유 승마, 재활 승마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돌에 이끼나 난을 부착하는 석부작 만들기, 빙떡 만들어먹기 등도 체험할 수 있다.
고경심 마을 사무장은 “방문객들이 주문하면 부녀회에서 내는 돔베고기, 산나물 장아찌 등이 곁들여진 제주 시골밥상을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체험 문의 (064)773-1949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각 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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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해바리마을 체험여행
1 지난 6월7일 새벽,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지족리의 농어촌체험마을인 해바리마을(신흥마을) 갯벌에서 가족여행객들이 ‘홰바리 낙지잡이’를 하고 있다. |
[한겨레 esc]남해 해바리마을 체험여행
여름 휴가지를 고민하는 이즈음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게 농촌 체험여행이다. 고생만 하다 오는 거 아닐까? 걱정 붙들어매시라.
밤에 횃불 들고 낙지를 잡는 ‘홰바리’ 체험을 하는 해바리마을을 비롯해 독특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체험마을을 추천한다.
화려한 횃불 쇼 틈틈이“게다!” “조개다!” 이어지는데
정작 ‘낙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드렁해질 무렵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본격 휴가철은 아직 멀었으나, 봄부터 이미 ‘본격 여름’이었음은 피부로 느끼시는 바와 같다. 유난히 길고 지루할 듯한 올여름, 피서든 휴가든 서둘러 일정을 짜는 분들이 많을 터이다. 올여름엔 붐비고 비싸고 고달픈 유명 피서지 제쳐두고, 기나긴 여름나기 기간의 하루이틀을 농촌·산촌·어촌에서 지내보는 건 어떨까. 훈훈한 시골 맛, 고향 맛 느끼며 배우고 즐기는 온 가족 여름휴가, 농어촌 체험여행이다. esc가 올여름 가족여행자들을 위해,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는 농어촌 체험마을들을 골라냈다. 주민들이 마음을 합하고 몸을 던져서, 여러 해째 인기를 끌고 있는 탄탄한 체험마을들이다.
2 낮에는 갯벌에서 게·조개 등을 잡는다. |
3 점심식사 후 편백나무 숲에서 유자차를 마시며 쉬는 여행자들. |
2% 부족한 남편의 육아
우리집 남편은 대체로 가정적인 편이라 할 수 있다.
아빠가 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만큼
집안일과 육아의 몇몇 부분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라 여기며 잘 도와준다.
시간이 나는대로 둘째 유치원에도 데려다주고
아이들이 아플 때
평균 한, 두 시간씩은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병원방문도 자주 맡아주고
가끔이긴 하지만, 주말 반나절 정도는 내가 혼자 쉬거나 밀린 일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차에 태워 셋이서 훌쩍 어디론가 사라져 준다.
그런 날은 나간 김에 저녁에 시댁에 들러 아이들과 저녁까지 얻어먹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황홀한 날이 있다.
놀이에 늘 목말라하는 별난 아이 둘과 하루종일 밖에서 지내다
돌아온 그의 두 손엔 시댁에서 얻어온 식량 보따리가 주렁주렁...
신선한 유기농 달걀에 가까운 밭에서 수확한지 얼마 안되는 채소들과
시어머님의 홈메이드 일본 가정식(규동, 고로케, 초밥...)들이 가득하다.
아직 따끈한 온기를 담은 반찬통을 열어 하나씩 맛보며
살림과 육아에 찌들어 신경쇠약 직전이었던 이 아줌마는
이날만큼은 남편이 백마탄 아저씨로 보이고도 남는다.
또 남편은 심하게 피곤하지만 않으면 아이들과 친구처럼 참 잘 놀아준다.
취미나 관심사도 다양해서
딸아이와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아들과는 두 돌 겨우 됐을 무렵부터 단 둘이서 기차박물관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끔 남편이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부엌에서 밥하며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푸하하- 하고 웃음이 날 만큼 재밌게 들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아빠의 육아로 채워지는 걸 자주 실감하곤 했다.
하지만,이런 때를 제외한 남편은 육아 파트너로서
한숨이 저절로 나는 부분이 너무 많은 남자다.
빨래를 널면 돌돌 말린 양말을 펴지도 않고 그대로 너는게 주특기인데
저녁무렵에 내가 빨래를 걷으려고 베란다에 나가면
양말들이 죄다 주먹쥔 채로 널려있어 기함을 하기를 벌써 몇 년째인지.
청소나 정리정돈, 자잘한 집안일은 처음부터 싫어했지만
그래도 몇 개 안되는 그릇들을 씻느라 물은 계속 틀어놓은 채
1시간을 부엌에 서 있지를 않나..
식구들 중에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밥솥을 꺼내 물에 담그는 것도 귀찮아
딱 한 숟갈만큼의 밥만 남기고 그대로 뚜껑을 닫는.. 아침까지 그 한 숟갈 양의
밥을 데우느라 뜨겁게 달궈진 큰 밥솥을 발견하고 꺼내 씻으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나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다.
근데 이런 모습도 요즘은 보기가 힘든 게
둘째가 어느 정도 크면서 그나마 흉내내는 듯 하던 집안일도
모조리 내 몫이 되어가고 있다.
둘째는 아들이라 배변훈련은 완전 맡겨도 되겠다 싶어 잔뜩 기대했더니
찬찬히 가르치는 과정없이 처음부터 스파르타 식으로
"왜 제대로 못하는거야!"며 다그치니 아이가 아빠랑 화장실 가기를 거부해
누나보다 훨씬 길고 지루한 배변훈련의 여정은 결국
온전히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근데 뭐.
10년 넘게 살다보면 서로의 몇 가지 단점 정도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게 된다.
여전히 똑같은 주제로 티격태격 싸우긴 하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인정하고 그것만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도 장점만큼 단점이 지나칠만큼 분명한 사람이고
세월이 흘러도 더 심해만 가는 나의 폭풍 잔소리가
남편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진 않는지, 반성도 자주 하게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남편도 이젠 마흔을 훌쩍 넘었으니 똑같은 회사일도 전보다 버겁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예전보다 더 피곤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낸 뒤라
긴장이 풀려 요즘 더 마냥 쉬고 싶기만 한 건 아닐까 ...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한가지 깨닫게 된 건, 내가 너무 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순하게 서로 하루동안 쌓인 피로를 저녁 식탁에서 한잔하며
즐겁게 풀어버릴 수도 있는거 아닐까.
남편이 오늘 열받은 회사 동료나 상사 얘기 들어주고
나도 오늘 열받은 유치원 엄마 흉보며
남편이 그토록 사랑하는 맥주와 맛나는 안주들 먹으며
은근슬쩍 아빠로서의 육아를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당분간 맥주값이 좀 들더라도 냉장고 안을 영국의 어느 퍼브처럼
종류대로 갖춰두고 남편에게 힐링저녁을 선물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층 혈기왕성해진 5살 아들을 키우기 위해선 아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니까
어쩔 수 없다.
나의 이런 고민과 노력의 이면에는 얼른 남편에게 아이들을 떠맡기고
어떻하면 또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사실.
이거 우리 남편이 알면 절대 안 된다.
아! 그가 이만큼의 한국어까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여보 미안!
암튼 요즘 날씨도 무더운데 오늘 일찍 와서 같이 한잔해요 ^3^
식충식물의 일생에서 보는 자연의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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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해그림 제공 |
내 이름은 파리지옥
이지유 글, 김이랑 그림
해그림·1만1000원
수다쟁이 ‘몬스테라’의 대화
유쾌함 끝에 숙연한 깨달음이과학적 지식을 동화적 캐릭터와 사건에 담아 전달하는 논픽션 책 만들기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내 이름은 파리지옥>은 정보와 이야기라는 두 토끼를 양손에 들고 의기양양해하는 사냥꾼 같은 책이다. 광합성이란 무엇인지, 잎들은 왜 모두 다르게 생겼는지, 물관과 체관은 무엇인지 같은 기본 사항 사이에 식충식물의 진화 과정이나 곤충 잡는 방식 같은 독특한 사항이 짜여 들어가 있는데, 그 정보의 양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만하다.이 책에서 정보를 부담 없을 뿐 아니라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구실을 맡는 것은 파리지옥과 ‘치즈잎’으로 불리기도 하는 몬스테라 캐릭터이다. 파리지옥은 ‘치료 불가능한 공주병 환자’이고 몬스테라는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는 수다쟁이다. 이 둘이 주고받는 대화는 마치 만담처럼 혹은 판소리처럼 끊이지 않고 흥겹게 전개된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고수의 북장단 소리까지 들릴 듯하다. ‘별똥별 아줌마’라는 별명이 붙은 지은이의 아줌마다운 입담에 표정 풍부한 만화풍 일러스트가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이다.티격태격 종알종알 이어지는 둘의 수다는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해 주지만, 그 끝에는 자연의 숙연한 섭리에 대한 깨달음도 스며들어 있다. 먹고 먹히면서 이어지는 생명의 고리,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고 겸허하게 죽는 한 존재의 의미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파리지옥이나 몬스테라는 우리 야생초가 아니라 식물원이나 화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나 가치가 덜한 것은 아니다. ‘다문화’ 교육은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초등 3학년부터.김서정/작가·중앙대 강의교수
죽을 뻔했지만 안죽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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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제공 |
아이코, 살았네!
이주영 글, 김홍모 그림
고인돌·1만2000원
[6월 17일 새 그림책]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외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2009년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가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에 이용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야생 방류 결정으로 2013년 6월 중순 아시아 최초로 바다로 되돌아가게 된 사연을 재구성한 그림책이다. 4살부터.
김산하 글, 김한민 그림/비룡소·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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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들 사이에서 느낌표는 언제나 튀는 자신이 모습이 고민이었다. 어느 날 물음표가 질문을 쏟아낸다. 짜증이 나서 소리를 치다가 느낌표는 자신만의 능력을 발견한다. 문장부호가 익살스런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4~7살.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글, 탐 리히텐헬드 그림, 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1만원.
말과 놀며 배우는 3~4살, `어록'은 필수품
우리 아이 말·말·말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신비롭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하는 말을 즐겨보자. 어록을 만들면 육아의 기쁨도 두 배!
위인이나 유명한 사람만 ‘어록’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말문이 트이면서 자신만의‘어록’을 남긴다. 형민 엄마와 해람 엄마는 오늘도 형민이와 해람이의 말에 웃고 울고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이들의 ‘어록’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3~4살 때다. 이 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 폭소를 터트리게 만든다. 가끔 어떤 부모는 ‘우리 아이가 천재 아닐까’ ‘우리 아이는 시인이 되려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3~4살 시기에 ‘어록’이 쏟아질까?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첫 시기는 12개월 즈음이다. 아이들은 이때 자동차라는 사물을 보면서 그것이 ‘자동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물과 사물의 명칭에 대한 대응을 이해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시기는 18~24개월이다. 이 시기에는 단어를 가지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엄마, 물” “이거 뭐야?” 같은 두 단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아이가 3~4살이 되면 언어와 언어의 연결이 이뤄지면서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한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장(소아청소년과·소아신경과 전문의)은 “3~4살 때의 아이들은 어휘가 대폭 확장되면서 자기가 알게 된 말을 여기 저기 써먹는다. 언어의 융통성이 대폭 늘어나는 시기라, 재밌고 창의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3살 형민이는 처음 본 낙타를 보고 “기분 좋은 말(馬)이네”라고 했다. 그림책에서 말을 자주 봤고, 눈이 처진 낙타가 웃는 말처럼 보인 것이다. 길가에 널브러진 담배 꽁초를 바라보며 “왜 담배가 죽어있어?”라고도 한다. 아이는 한정된 지식과 정보, 언어로 자신이 처음 접하는 세상을 표현하는데, 아이의 말 때문에 어른들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이 시기에 아이들의 ‘어록’을 작성한다. 특히 인터넷의 미니홈피나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게 되면서 아이가 한 인상적인 말들을 적어놓는 부모가 많아졌다.
김 원장은 “3~4살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두려움 없이한다. 시행착오를 하면서 뇌의 전두엽 부분이 활발하게 발달하고, 그러면서 말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가 5~6살만 되어도 언어적 두려움이 생긴다. 아이는 5~6살 때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려 하고, 부모 등 자신과 관계된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해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 부모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부모가 생각하기에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한다고 아이 말을 부정하거나 고치려 하지 말자. ‘낙타’를 보고 ‘기분 좋은 말’이라고 한 아이에게 “말이 아니야, 이건 낙타야. 낙타”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기분 좋은 말처럼 보이네~ 재밌는 생각이다. 엄마도 보니 기분 좋은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얘는 이름이 낙타야. 낙타는 주로 사막에 살아”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좋다. 김 원장은 “언어적 융통성을 칭찬해주고 사실을 들려주면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아이가 쓰는 유아어를 부모도 똑같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교육학자인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장은 “아이 주변에 좋은 언어적 본보기가 있는 것이 좋다. 아이 눈높이에 맞게 얘기를 한다고 ‘쭈쭈’ ‘맘마’ ‘삐약이’ 등 유아어를 쓰는 어른들이 있는데 이같은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세번째로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작용이 가능할 때, 아이는 말하기를 즐기며 더 말하고 싶어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디브이(DVD) 등 불필요한 소리를 지나치게 들려주지 말자. 이 센터장은 “식사 중에 배경음악을 틀어놓거나 아이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켜놓으면 아이가 늘 기계음의 말이나 음악 소리에 노출돼,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 듣지 않는 버릇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각주의력을 높이는 것도 언어발달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청각주의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림책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집중력과 기억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짧은 동화를 반복해서 통째로 읽어주는 것이 언어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고 ‘어록’을 쏟아내면 감탄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세 돌이 지나도 문장을 잘 구사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이 센터장은 “아이마다 개별적인 성장의 속도가 다르다. 아이 말문이 좀 늦게 터져도 좀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언어발달 체크리스트
0~3개월
소리 특히 부모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옹알이(특히 모음소리)
감정상태에 따라 다른 울음을 보인다.
4~6개월
소리를 듣고 소리의 위치를 안다.
친한 양육자의 언어의 감정이 실린 높은 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표시를 시작한다(예를 들어 팔을 올린다든지 음식이 보이면 흥분한다든지).
소리, 두음절 소리와 약간의 자음을 흉내낸다.
7-9개월
반복되는 소리보다는 자장가를 더 잘 듣는다.
단조로운 운(rhyme)과 억양이나 거꾸로 된 말같은 까다로운 것보다는 친근한 운을 더 좋아한다.
10-12개월
부모의 의미가 있는 소리에 반응을 한다.
감정적 톤의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한다.
13-18개월
의미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소리를 내려고 한다.
뒷 말을 따라한다.
19-24개월
많은 단어를 이해한다.
간단한 명령을 수행한다.
50단어의 어휘
단어를 연결하기 시작한다.
말을 흉내낸다.
일상 도구나 장난감을 상징화할 수 있다.
노래가 이어지며 소리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25-30개월
성인 말의 60-80%를 이해한다.
말의 차이를 이해한다.
200단어의 어휘
3~4단어 문장을 말한다.
31-36개월
소꿉장난을 한다.
두 가지 구성의 명령을 수행한다.(의자에 인형을 놓아라.)
질문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음절을 반복한다.
완벽한 음높이를 갖는다.
4세
경험 외적인 내용 외에는 성인의 대화를 이해한다.
광범위한 어휘를 가진다.
정확한 문법을 사용한다.
상상적 놀이와 대화를 한다.
무엇이든지 묻는다.
5~6세
집에서나 밖에서나 성숙된 말을 하고 높은 지능을 요구하는 내용만 이해하지 못한다.
언어는 지능적이고 문법적으로도 정확하다.
일어난 일, 이야기 그리고 지식을 다시 말할 수 있으며 활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크게 읽기 시작한다.
돌아보니, 어느새 결혼 11년!
2002년 6월에 결혼했을때 시댁 형님은 나와 동갑이었지만 이미 결혼 8년차였다.
스물다섯에 시집을 와서 8년동안 일곱살, 다섯살, 세살 세 아이를 둔 형님은 감히
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신 분이었다.
결혼 8년차라니... 언제 그 세월이 지날까...
늦은 나이에 갓 결혼한 나는 8년이란 세월이 800년 쯤 되는 어마어마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올 6월 16일로 결혼 11년째를 맞았다.
시어른들 생신 하나 제대로 못 챙기던 서툰 새신부는 그 사이 열한 살,
일곱살, 네살, 세 아이를 둔 주부가 되어 있었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세월이 돌아보니 꿈만 같다.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새색시가 되었던 나는 이제 감출 수 없이
흰머리가 늘어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고, 수줍게 빙긋 웃기만 하던
남편은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되어 있다. 11년은 확실히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결혼 두달만에 임신을 해서 그 이듬해 결혼 기념일을 이틀 지난 날에 태어난
큰 아이가 벌써 열한 살이다. 첫 아이의 나이만큼이 우리가 결혼해서 지내온 날들이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볼 새도 없이 첫 아이가 생겼고, 서툰 부모 노릇 하느라
걱정과 염려로 첫 아이를 키울때 남편은 정말 든든한 조력자였다.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출산을 하겠다는 마누라 말을 그대로 따라 주었고
진통할때도 탯줄을 자를때에도 남편은 함께 했었다.
퇴근하면 목욕탕에 수북히 쌓여 있는 똥기저귀를 일일이 칫솔로 털어서
비누칠해 빨고 들통에 삶아서 세탁기에 넣어 주는 궂은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도와 주었다. 동기들은 이미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나이에
첫 아들을 얻은 남편은 정말 기쁘고 행복하게 아들 돌보는 일을
도와주었다.
결혼 5년째에 집에서 둘째를 낳았을때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바랬던 딸아이를 우리의 새집에서 낳았었다.
딸 낳고 일주일만에 전국출장을 떠난 남편때문에 가장 힘든 시기를
주말 부부로 지내야 했었지만 둘째는 아프지도 않고 잘 자라 주었다.
마흔에 낳은 셋째때는 내 몸이 많이 약했었다.
힘든 출산이었지만 남편은 막내가 너무 이뻐서 그 곁을 떠나지 못했었다.
큰 아이가 여섯살때 어렵게 공동육아를 시작하고 바로 말더듬이가 나타나서
언어치료를 받기도 했고, 가슴 설레며 첫 아이를 혁신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2년만에 등교를 거부해 일반 학교를 떠나야 했던 고비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내 선택을 믿어 주었고, 결국엔 내 뜻대로 따라 주었다.
돌아보니 정말 쉽지않은 일을 남편은 해 주었던 것이다.
살기 편한 아파트를 떠나 낡고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하자고 했을때도
남편은 처음엔 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엔 내 뜻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200평 넘는 농사와 쉼없이 이어지는 집수리를 도맡아가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든든하게 해 내고 있다.
생각해보니 11년간 남편이 내게 얼마나 큰 울타리가 되어 주었는지
내가 얼마나 요구가 많고, 변화가 잦았으며, 큰 선택들을 남편에게 던져 주었는지
새삼 알겠다. 여기까지 올 수 있기까지 남편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주었는지도 알겠다.
늘 내가 더 힘들다고 불평하는 동안, 남편은 말없이 내가 벌이고 다니는 큰 일들을
수습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큰 아이는 대안학교를 잘 다닌다.
영리한 둘째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반 학교에0 입학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막내의 성장은 나날이 눈부시다.
아파트를 떠날때에는 두려움도 컸지만 주택에서 3년째 살면서
남편도 나도 서툰 농삿군이 되었고, 이젠 흙에서 멀어지면 살 수 없을 것 같이
자연이 좋아졌다. 아이들은 매일 매일 흙과 햇빛과 바람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란다.
큰 재산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큰 빚도 없고, 작지만 내집 한칸 가지고 있고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권도 출간했고
매일 글을 쓰고, 서로를 알뜰히 아껴가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11년동안 열심히 잘 살아온 셈이다.
앞으로 오는 날들도 살아온 날들만큼 열심히 즐겁게 힘내서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가면 되겠지.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크면 다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보자고
약속했는데 살다보면 그날도 분명 올 것이다.
감사해..11년..
앞으로오는 날들도 잘 부탁해..
[부모특강]“부모에게 존중 받는다 느껴야 동기부여 돼”
»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청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한겨레 25주년 기념 부모특강’에서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사교육 정글에서 아이와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아이의 ‘공부결심’ 유도하려면 공부방법 등 대화 필수
“아이가 학원에서는 문제를 잘 푸는데 왜 실제 시험은 못 볼까요? 학원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구경을 하고 있지요. 구경을 하고 나서 단기 기억으로 문제를 풀고, 빛의 속도로 잊어버립니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없으면 절대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다양한 전략 전술이 필요한 것이죠.”
‘육아 멘토’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사, 서울신경정신과 원장)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청 다목적홀에서 ‘한겨레 창간25주년 기념 부모특강’이 열렸다. 서 원장은 ‘사교육 정글에서 아이와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강연했고, 250여명의 참석자들은 3시간 동안 주의를 집중해 강연을 들었다.
서 원장은 “사교육을 해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효과는 미미해지고, 오히려 아이들의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며 각종 연구 결과와 자신의 임상 경험을 소개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높은 성적을 달성할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으면 성적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사교육을 한다고 모든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닌데, 많은 부모들은 착각한다. 특히 고등학교 2~3학년의 경우 사교육을 통한 수능 점수 상승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혼자 공부한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모든 영역에서 성적 상승폭이 컸다. 더 흥미로운 점은 사교육은 장기적으로 보면 효과가 거의 없었다. 서 원장은 “사교육에 의존해온 아이들은 대학교 학점이 낮았고, 혼자 공부한 아이들은 장기 추적 결과 사교육에 의존한 아이보다 임금이 평균 3.6~3.9% 높았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투자 대비 효과도 미미한 사교육에 왜 많은 부모들은 매달릴까?
서 원장은 그 원인으로 부모들의 불안과 욕망을 첫번째로 짚었다. 서 원장은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상품’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아이들과 눈맞춤을 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아이의 태도가 아닌 어른의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부모 스스로가 내 삶을 사랑하며 감사하게 살아가야 아이가 그런 부모를 보며 삶을 사랑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아이들이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싫다.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한다”며 부모들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인생의 역할 모델'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했다.
두번째로 사교육 광풍이 부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상대적 순위 경쟁을 벌이는 학벌주의와 특목중, 특목고와 같은 조기 탈락 유도형의 교육 시스템을 짚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 아이큐가 78정도밖에 안되고 정서적 어려움을 느꼈던 환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과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것을 보며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만성형 아이들도 많은데, 사교육 세력들은 경쟁을 앞세워 그런 아이들을 조기 탈락하도록 유도한다. 장기적으로 사교육 효과는 미미하지만, 어릴 때는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목중, 특목고의 시스템은 잘못된 교육 시스템이다”고 짚었다.
세번째로 그는 교육 문제는 결국 노동 문제와 얽혀 있다고 말했다. 최저 임금으로도 어느정도 생활이 유지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을 지급하면 굳이 정규직에 목숨 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많은 부모들은 너도 나도 돈을 쏟아부어 상대적으로 순위가 높은 대학에 보내 정규직에 들어가면 좀 더 안정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의 대학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모두 다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삶의 주관적 행복도가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모의 노력, 학업적 성취, 세속적 의미에서의 성공, 주관적인 행복감. 부모들은 이 네가지가 일직선상으로 분명히 이어질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각종 연구들을 보면 매우 약한 인과성만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변화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
서 원장은 부모들에게 남의 가치관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불안해하지 말고 아이와 나만의 장기적 목표를 추구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교육 정글에서 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기초부터 탄탄히 하라. 충분한 수면과 균형된 식사는 건강의 기본이다. 삶과 일의 균형, 공부와 놀이의 균형이 가장 기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사교육만 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들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 서 원장은 “밤 10시 이전에는 아이를 재우고, 맞벌이라면 숙제는 방과 후 공부방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 아빠와 대화하고 놀다 밤 10시에는 자야 한다. 노는 것과 공부의 비율도 적당한 비율로 챙겨야 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 고 강조했다.
둘째, 아이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동기부여가 된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보면, 사랑과 인정의 욕구 단계에서 욕구가 채워져야 자아 실현의 욕구가 생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진짜 관심'을 아이에게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장점이 보인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생길 수 있다.
셋째, 내가 생각하는 목표가 아닌 아이에게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인지 늘 돌아본다. 아이가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면 아이는 쉽게 포기할 수 있고, 포기르 하는 순간 자존감은 추락해 다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항상 아이가 달성 가능한 적절한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넷째, 아이 스스로 잘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이제까지 잘못을 해왔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와 공부시간, 공부양, 공부방법 , 공부내용을 대화로 결정해야 한다.
다섯째, 공부 방해 요소는 규칙으로 관리한다. 핸드폰, 티비, 게임은 규칙과 합의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냥 아이 스스로 알아서 잘 통제하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 시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빈둥거리는 시가늘이 의미있는 시간들로 모여서 종합적 사고력이 만들어지고, 창의력과 상상력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없으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초등학교때 엄마가 많이 편찮으셔셔 집안일도 많이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당시 제 친구들은 과외를 하기도 해서 함께 놀 친구가 없었지요. 특별히 저는 할 일이 없어서 방구석에 앉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짝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저 문짝은 어디서 온걸까? 나무에서 왔겠지?'열흘에 걸쳐서 저는 문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로웠던 저는 문짝을 보며 `저 문짝도 키도 작고 옷도 꽤째재해서 부잣집에서 버림 받았는데, 가난한 아이들이 문짝을 고쳐서 여기에 왔겠지'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마침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는데,글쓰기 제목이 문이었어요. 아마 저 만큼 문에 대해 탐구해본 아이는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저는 글짓기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요.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 책도 쓰고 칼럼도 쓰는 밑바탕이 된 것 같아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 서 원장은 어렸을 적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빈둥빈둥 노는 기회를 적절하게 제공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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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는 보다 나은 육아 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대의 바닷가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잠이 덜 깬 아이들을 들쳐 안고 나왔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라니 안 어울리는 같지만, 사실 우리도 기독교인으로서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는 것은 아니기에,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전 세계가 들썩들썩하는 즐거운 명절인데,
서울에서라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눈 쌓인 설산을 보겠다고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소품들로 화려하게 치장한 들뜬 도시를 쏘다닐 것이니
우리도 오늘은 특별한 곳으로 떠나보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소식, 지구 반대편에서 맞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떠올리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대의 바닷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래서! 서둘러 가야 할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페낭(Penang). 해변이 아름다워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그곳으로 가자!
카메런 하일랜드에서 아침 여덟 시 버스를 탔다.
페낭(Penanag)까지 다섯 시간 걸린다니 바닷가 호텔엔 늦어도 오후 서너 시쯤이면 도착하겠군.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지. 훅훅 찌는 덥고 습한 날씨, 덥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은, 뭔가 쾌적함과는 거리가 있는 카메런 하일랜드의 날씨를 견뎌온 보상으로 바닷물에 몸 담그고 신 나게 놀아주리라.
아직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아이를 아침 일찍 깨워 길을 나서면서도 바닷가에 대한 열망으로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열은 다 내렸으니 바닷가에서 쉬면 더 좋아지리라 기대하며.
마음 같아서는 빨리, 공간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현실은, 특히 여행지에서의 현실은 내 마음 같지는 않아서 약속시간보다 삼십 분 늦게 나타난 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시가지를 맴돌며 여기저기서 다른 손님을 태웠다.
올 때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이번에는 내려오는 데 비인지 안개인지 앞을 뿌옇게 가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 기사가 손전화에 대고 한참을 떠들고 나더니 옆에 앉은 조수와 쉬지 않고 잡담을 했다.
열대의 바닷가에 대한 핑크빛 환상이 안개 속으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달려 이포(Ipoh)라는 도시의 터미널에 내렸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버스를 예약할 때 여행사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페낭으로 직접 간다더니.
하긴 여행사에서는 터미널에서 출발한다고만 했지, 시내를 돌며 손님을 더 태운다고도 하지 않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 중간에 또 어디를 들르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렇게 수다스럽던 기사가 버스를 갈아탈 거라고만 하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사라져 사람들이 버스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야 하냐, 대체 어떤 버스로 갈아타는 거냐, 왜 갈아타라고 하는 거냐. 그래 봐야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하면서 무수히 겪은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니 느긋해질 수 있었다.
대부분 이런 일은 현지 상황을 잘 몰라서 생긴다. 교통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 여러 곳을 돌며 할 수 있는 한, 많은 손님을 태우는 것이 당연하리라. 손님의 환심을 사야하는 여행사에서 버스가 다른 곳을 들러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순순히 밝힐 이유는 없고.
다섯 시간 걸린다는, Direct라는 여행사의 말만 믿고 우리 식대로 생각하다가는 당황할 수 밖에.
이포(Ipoh)는 말레이시아 각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듯, 행선지가 다양하다.
우리와 다르게 여행사마다 직접 호객행위를 하는 데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외치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마치 남대문 시장에서 골라, 골라, 하는 소리처럼.
가장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은 ‘쿠알라룸푸르, 께약께약께약~’ 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께약이 케이엘(KL), 쿠알라룸푸르의 약자가 그렇게 들린 것 같다.
쿠알라룸푸르, 께약께약께약~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따라 했다. 이런 소리의 특징은 배우기 쉽다, 그리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
께약께약께약은 페낭에 가서도 계속, 그 뒤로도 가끔씩 생각나면.
이포 터미널에서 아루가 신기해 했던 파란 소화기
페낭 대교를 건너 페낭 섬으로 간다. 버스에서 바라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건 새로 짓고 있는 다리인 듯.
페낭의 숭아이 니봉(Sungei Nibong: 니봉 강) 터미널에 내리고 보니 네 시, 다섯 시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벌써 여덟 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이제 터미널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우리의 최종목적지, 탄중붕아(Tanjung Bunga) 해변까지 가는 104번 버스를. 해람이가 장거리 버스에서 멀미를 할까 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모두가 하루종일 굶었다. 이포(Ipoh) 터미널에서 전날 밤에 준비한 옥수수와 고구마를 먹은 게 전부였다.
엄마, 배고파!
바닷가에 간다며, 도대체 언제 가는 거야???
당연히, 아이들의 원성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아이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밝게 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 역시 힘들고 짜증스러웠는데 그걸 들키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이포에서부터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하게 머리를 조여왔다. 혹시 버스 노선을 잘못 아는 게 아닐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 한국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와 같은 버스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버스가 언제 오냐고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느꼈는지, 아루가 가방에서 색종이를 꺼내 묵묵히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기다림을 배운다.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기다림’이 아닐까? 돈 만 있으면,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 하듯이 쉽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다림이란 책이나 누군가의 설명으로 배울 수 없고 온전히 자신의 경험으로만 배울 수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참고 견디는 이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기다림을 체득하는 중요한 순간임을 깨닫는다.
여행에 대한 우리 나름의 원칙은, 빠름과 효율 그리고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안락함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빨리, 서둘러 가기보다 아이들 걸음에 맞추어 느릿느릿 걷고 싶었다. 정상에 다다르진 못하더라도 오솔길에서 둘레둘레 걸으면 자연과 사람을 더 긴밀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정상에 다다른 기쁨도 좋지만, 과정의 소중함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바로 눈앞의 택시에 올라 호텔 앞까지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하염없이, 끝까지 버스를 기다린 이유이다.
그렇다고 택시는 절대 안돼, 라고 생각지는 않았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지닐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묵묵히 색종이를 접는 아이를 보니 조금 더 참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두통이 더 심해졌다. 버스 뒷자리에서 해람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바다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버스가 페낭 섬의 중심지, 조지타운(George town)에 들어서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사람도 많았다. 심호흡하며 간신히 견뎠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탄중 붕아의 호텔에 도착했을 땐 머릿속으로 그렇게 상상했던, 가까스로 도착했다는 안도감이나 기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다.
좌린이 아이들 데리고 밥을 먹을 가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보통 아이가 아프고 난 후에는 엄마들이 앓아눕는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자기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많이 쓴 결과이리라.
그래, 이제 내가 좀 쉴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잠깐 눈을 붙였다. 잠시라도 쉬었더니 머리가 맑아져서 전화를 받고 식당을 찾아갔다.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지!
호텔의 반짝이 장식을 보니 열대의 바닷가에서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자던 애초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아직은 늦지 않았어! 조금 더 힘이 나는 듯했다.
이슬람교도가 많지만, 이 나라도 ‘예수님의 탄생’과는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위기인가 보다. 호텔 레스토랑이 크리스마스 파티로 들썩였다.
물론 우리는 값비싼 호텔 레스토랑 대신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에너지가 금방 방전됐다가도 다시 쉽게 충전되는 아이들은 지금이라도 수영장에 뛰어들겠다고 야단이었으나 여덟 시가 지나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수영장 벤치에 앉아 밤바다와 호텔 레스토랑의 흔들거리는 크리스마스 불빛을 바라보았다.
예상과 달리 길에서 진을 다 빼고 무척 지치고 힘든 하루였지만,
아아, 그래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에는 눈이 온단다.
페낭 밤바다~ 좌린이 여수 밤바다~ 노래를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좌린의 노랫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밤 마실 나가자!
해람이를 따라 밤바다 산책을 나갔다. 바닷바람 쐬며 맨발로 모래를 밟는 것도 좋았다.
손전등을 비추니 곳곳에서 게가 나타났다. 큰 것은 해람이 손바닥만한 것도 있었는데 우리 앞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바닷속으로 혹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내친김에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형 할인마트 간판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융통성을 발휘하여, 할인마트에서 단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보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한 가지씩 골랐다.
엄마, 여기 봐!
마트에서 단감을 발견한 아루가, 제게 낯익은 과일과 포장지에 찍힌 한글을 보고 반가워 소리를 질렀다. 단감이라, 후후, 고향의 맛이지...
허나, 솔직히 좌린과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라면!
십년 전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날 때 라면스프를 두둑히 챙겨갔다. 단골로 다니던 집 앞의 분식집에서 라볶이를 만들 때 스프를 쓰지 않고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모아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매콤한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뜨거운 물에 타서 국물을 마시거나 현지 라면을 사서 스프를 바꿔 끓여 먹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라면을 멀리하고 있지만, 외국의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발견하니 무척 반가웠다. 예전 여행의 기억도 떠오르고.
아이들도 늦게까지 놀다 잠이 들었고 좌린과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어쩌자구 편한 집 놔두고 이 고생이냐, 십 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레퍼토리,
그때와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키득키득.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둘이 넷이 되었다는 것.
색다른 곳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겨보자는 계획을 제대로 이루진 못했지만, 우리 네 식구 지금 여기, 이국의 바닷가에 함께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카메런 하일랜드에서 다 못한 이야기
해람이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타만네가라에서 카메런 하일랜드 가는 버스에서 내내 토하고 힘들어하더니만 막상 도착해서는 팔팔하게 잘 지냈다. 아루가 열이 나 아프고 나도 따라 골골하는 동안, 해람이는 좌린과 밤마다 마실을 다녔다. 어딜 그리 쏘다녔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해람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니면서 햄버거도 사 먹고 카레 김치 만두(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인도 식당에서 파는 삼각형 모양의 만두 튀김인데 속에 커리와 야채가 들어 있단다. 입에 잘 맞았는지 페낭에 와서도 카레 김치 만두를 찾곤 했다.)도 먹었단다. 나 여기 어딘지 알아. 이렇게 가면 우리집(숙소) 근처잖아. 길 가면서 아는 척도 하고. 해람이는 아루와 달리, 늘 아빠보다는 엄마를 우선순위에 둔다. 아빠가 밤늦게 퇴근해 잠도 못 자고 우는 아이를 안아 재웠는데도, 잠 못 이루는 예민한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열심히 연구했음에도, 그런 아빠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아빠보다는 엄마란다. 좌린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을 텐데 솔직히 나는 이런 편애를 조금 즐기고 있었다. 엄마, 나랑 결혼하자,는 아이의 말에 해람아, 미안하지만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야, 이런 농담도 즐기고.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특히, 해람이가 아빠랑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 두 남자가 둘이 캄캄한 밤에 쏘다니고 와서, 둘만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질투심이었다.
좌린의 사진 파일을 들춰 보았다.
아, 이것이 해람이가 말한 그 햄버거로구나.
햄버거 가게 주인인가봐
카레 김치 만두!
그런데 이런 두 남자의 우정어린 밤마실을 경계하는 이가 나 말고 또 있었으니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빠는 내 편에 가깝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던 딸래미!
머리 아프다면서 누워 있지 못하고 두 남자의 밤 마실을 따라나섰다. 문구점에 들러 원하는 스티커, 그림 그릴 종합장을 득템 하시다.
108만 아내들은 오늘도 몹시 부러워하고 있겠지
» 한겨레 자료 사진.오늘도 저녁 약속
있어?”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아내의
문자메시지에 찔끔한다. 사실 날마다 약속이니 새로울 게 없다. 내 직업은 많은 사람들을 두루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게 일이다. 만날 사람이 없어 약속 없는 날이 외려 특별한 날이다. 그런 날이 잦으면 '무능'을 자책하기도
한다. 아내도 그런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굳이
나의 약속 유무를 매일같이 묻는다.
“응, 약속 있어.”
“누구 만나? 어디서
먹어?”
상세히 설명을 하거나, 대충 둘러대거나
어쨌든 대화는 그리 길지 않다. 어차피 나를 의심해서 뒷조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남이 해주는 밥 먹는다니 부러운 게다.
집에서 아이 둘을 보는
아내는, 밥 한 끼 온전히 먹기도 힘들고, 차 한 잔에 수다떨 여유도 없다.
어디 밥자리 약속만 부러울까. 어쩌다 내가
회사 안팎에서 칭찬들을 일이라도 생기면, (물론 아내는 누구보다도 기뻐해주겠지만) 그건 또 얼마나 부러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승진이 더딘 직업이라 여지껏 직급이 오른 적도 없고,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아내의 부러움은,
축하만큼이나 커지지 않을까 싶다.
자기는 동동 발구르며 그러고 있는데, 아무리 일 때문에 필요하다고는 해도, 끼니 때마다 사람들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고 웃고 떠들다 오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 심정 십분 이해한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직접 우리 손으로 키우기로 하면서, 육아를 위한 누군가의 양보는 불가피하게 됐다. 이유야 뭐가 됐건, 양보한 쪽의 마음이 괜찮을 리 없다. 아내는 내가 부러울 거다.
우리 부부만의 얘기가 아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면, 육아, 가족문제, 경제적 곤란 등 다양한 이유로 어느 순간 한쪽의 양보가 필요한 날이 온다. 멀쩡히 직장 다니던 사람에게 “당신, 일을 그만두면 어떨까?”라고 하거나, 힘겹게 집안일을 꾸리던 사람에게 “당신, 일을 하면 어떨까?”라고 갑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많은 경우 부담을 지는 건 엄마다. 아빠들이 직장을 관둘 땐 자기 꿈을 좇겠다는 이유를 대며 가족에게 되레 부담을 떠안기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도 꿈을 좇아 직장을 관두는 일이 없진 않지만, 그 경우 대다수는 독신이다. 엄마들은 아빠들이 부럽고 독신들이 부럽다.
피할 수 없는 부러움이라면, 나누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내가 양보를 하지만, 언젠가 나도 (첫째 때처럼) 육아를 전담하며 다시 양보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땐 나도 아주 많이 부러워해주겠다. 나의 이 다짐으로, 108만명 가운데 적어도 나의 아내 하나만이라도 마음에 조금의 위안을 얻기 바란다.
손이 젖었을 땐 손가락 사이를 말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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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와 물로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 중요하지만 과한 피부자극은 해가 된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
[건강] ‘만성 손습진’ 어떻게 할까
여름철에 많이 걸리는 손습진. 일명 ‘주부습진’으로 불리지만 다른 직업군에서도 많이 발병된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이지만 별것 아니겠지 방치하다간 생활에 큰 지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물에 닿는 시간이 많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만성 손습진’이 악화하기 쉬운 계절이 됐다. 특히 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아 손습진이 악화되기 쉽다. 손습진은 적절한 관리로 조절되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 수면장애나 우울감마저 일으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관련 학회는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손습진은 예방 가능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손이 물에 닿은 뒤에는 손가락 사이를 잘 건조시켜야 한다고 권고한다. 손습진이 있으면 비누나 세정제 등을 쓰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비누나 세정제 사용 삼가고
뜨거운 물은 되도록 금지
물 접촉 시간은 15분 안넘게
고무장갑 안엔 면장갑 착용을‘대한 접촉피부염 및 피부알레르기학회’가 지난 4~5월 전국 13개 대학병원을 찾은 만성 손습진 환자 353명을 조사한 결과 만성 손습진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97명으로 전체의 55.8%에 이르렀다. 습진 부위가 이불 등에 스치기만 해도 불편한 감각이 들어 잠들기가 어렵거나 중간에 잠을 깨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보통 인구의 4%가량이 손습진을 앓고 있는데, 이 가운데 5~7%는 심한 만성 손습진으로 고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번 조사 결과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피부 질환일 수 있는 손습진도 만성으로 빠져 수개월 이상 앓게 되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물건 등을 손으로 쥐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이 80.5%나 됐으며, 악수 등을 꺼릴 수밖에 없게 돼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을 한 경우도 76.2%에 달했다. 결국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비율도 46.2%나 됐다.이번 조사는 대학병원을 찾을 정도로 심하거나 만성으로 오래 고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라 일반 손습진 환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손습진을 방치해서 심한 만성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직업군별로 만성 손습진 환자를 분류하면, 물에 닿는 일을 많이 하는 주부가 24.9%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의료기관 종사자 23.5%, 사무직 11.3%, 학생 7.6%, 음식업 종사자 5.7% 차례였다. 주부 외에 다른 직업에서도 물에 접촉이 많으면 시달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만성 손습진은 습진이 손에 나타나 석달 이상 계속되거나, 1년 안에 두번 이상 재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요 증상은 피부가 벗겨지거나, 피부가 붉어지는 홍반이 나타나거나, 비듬과 같은 피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칫 위생 상태가 좋지 않거나 감염성 질환에 걸린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만성 손습진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흔한 환경적 요인은 비누와 세정제 등에 든 화학물질에 너무 오래 노출되거나 물에 접촉하는 시간이 긴 경우다. 이 때문에 평소 업무나 생활 속에서 손을 잘 관리하는 것이 예방 및 관리의 지름길이다. 우선 손을 씻을 때에 세정제나 비누를 너무 자주 쓰지 말고 손을 씻은 뒤에는 손가락 사이를 잘 말려야 한다. 또 씻은 뒤에는 3분 안에 보습제를 바르는 게 좋다. 비누와 세제 등을 자주 만지는 직업을 가진 경우 되도록이면 뜨거운 물을 사용하지 말고 물과의 접촉 시간은 15분 안쪽으로 줄여야 한다. 이때 고무 장갑이나 비닐장갑을 반드시 쓰되, 안에는 면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요리를 할 때 날고기나 생선 등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재료를 직접 손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손톱은 짧게 유지하고 습진 부위를 긁지 않도록 한다.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의학적인 손습진 치료방법으로 습진이 생긴 자리에 스테로이드나 면역조절제 등을 쓰거나 가려움이 심할 때에는 항히스타민제 등을 쓸 수도 있다.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도움말: 대한 접촉피부염 및 피부알레르기학회 노영석 회장(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 이가영 학술이사(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