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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잠자기 싫어! 엄마랑 놀고 싶단 말야~ 엄마랑 스티커 붙일거야!”
5살 동빈이(가명)는 밤 11시에도 엄마와 놀겠다고 떼를 쓴다. 광고 기획자인 엄마 이시형(40·가명)씨는 몸이 녹초가 돼 집에 왔지만 아이와 놀아준다. 이씨는 “몸은 피곤하지만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아이랑 놀아주다보면 금세 밤 12시. 눈밑 다크써클이 짙어진 이씨는 다음날 회사에서도 아이가 걱정돼 안절부절이다. 무릎이 안좋은 시어머니가 동빈이와 잘 놀아줄지, 혹시 안전 사고는 생기지 않을지 걱정돼 계속 집에 전화를 한다. 이씨는 집에서 전화만 와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된다. 이씨는 “회사 일도 집중이 안되고, 내가 아이에게 엄마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떤 엄마가 죄책감이 더 높나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 ‘혹시 내가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며 양육 죄책감을 갖는 엄마들이 많다. 이씨도 그런 경우다. 흔히 엄마들의 이런 죄책감을 단순한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양육 죄책감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모든 엄마들의 죄책감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엄마가 처한 환경, 성장 배경, 성격 등의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죄책감 수준은 달라진다. 엄마들 스스로 자신이 가진 죄책감을 좀 더 객관화하고, 죄책감의 원인을 따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연구 내용들을 종합하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모성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람일수록 죄책감이 강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리 양육자가 아무리 아이를 잘 보살펴줘도 엄마가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또 양육맘보다는 직장맘일수록 죄책감을 더 많이 갖는다. 양육맘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에게 질이 높은 양육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직장맘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에 죄책감을 갖는다.
세번째로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에 따라 엄마의 죄책감이 유발하는 부정적 양육 태도의 정도가 달라진다.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엄마들의 경우,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가 낮으면 아이들에게 통제나 거부의 태도를 갖는 부정적 양육행동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외에도 엄마가 완벽주의적 성격이 강할수록 엄마의 죄책감은 높고, 나이가 어린 엄마일수록,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수록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엄마의 죄책감, 그 후폭풍
이렇게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 엄마의 죄책감은 엄마 자신과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명선 아동청소년상담센터 맑음 소장은 “죄책감이 높은 엄마들일수록 불안감도 많고 우울감도 높다. 이런 엄마들은 양육 효능감이 떨어져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양육 태도를 보인다. 엄마들의 부정적 양육 태도는 아이의 사회성이나 (감정, 인지, 행동) 조절 문제 등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이 말하는 부정적 양육 태도란 △아이를 자꾸 통제하려는 태도 △아이를 과잉 보호하는 태도 △훈육해야 할 시기에 적절한 훈육을 못하고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많은 엄마는 자신의 정서적, 체력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역할을 하다 스스로 지치게 되면 아이에게 짜증이나 폭발적인 화를 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강압적인 방법을 쓰거나 벌을 주기도 한다. 반면 과도한 죄책감에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과잉보상하기도 하고, 과잉애정을 쏟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너무 부끄러움이 많거나 자기 혼자만 잘난 ‘왕’이 되거나 공격성이 많거나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결국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이 떨어지게 돼, 친구와의 관계 등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앞의 이씨의 사례에서도 밤 11시면 아이가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인데도, 엄마는 적절하게 훈육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계속 부모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과의 관계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쟁취하려 들 수 있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부정적인데, 엄마의 죄책감까지 높다면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 정도는 더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주영 동덕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엄마의 죄책감이 높으면 엄마가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죄책감 때문에 더 못 발휘하게 된다. 아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바람직한 양육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과도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등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죄책감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정책센터장은 “직장맘들이 더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부실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우리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양육맘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초등학생 시기가 되면 엄마들의 심리적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이 시기에 과도한 죄책감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이 많다. 수업 시간을 연장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후 3시까지 안정감 있게 생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방과 후 돌봄서비스 강화나 기업의 장시간 노동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주문하면서 “보육 정책이 취업맘들이 제대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촘촘히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엄마 죄책감 덜어내려면
일반적으로 직장맘이 양육맘보다 죄책감 수준이 더 높다. 엄마의 죄책감은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좋다. <직장맘과 아이들 도와주기>(최명선·홍기묵·한미현 지음, 이담북스 펴냄)의 지은이인 최명선 아동청소년센터 맑음 소장의 조언으로 직장맘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1. 내가 못하는 것보다 잘하고 있는 걸 생각하라
엄마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 내가 못하고 있는 것보다 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양육에 대한 책임도 엄마가 모두 질 필요 없다. 죄책감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현상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직장을 다님으로서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자꾸 생각하자. 일하는 엄마들의 자녀들은 독립심과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직장맘들의 자녀는 양육맘의 자녀에 비해 자기성취능력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긍정적인 부분을 양육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생각하자.
2.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아이와 함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냐보다는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가 더 중요하다. 퇴근해서 질적으로 상호작용하도록 노력하자. 퇴근해서 밀린 가사를 먼저 하는 것보다 단 30분이라도 온전히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놀아주자. 핸드폰을 끄고 설거지도 미루고 아이와 함께 놀자. 보드 게임, 몸 놀이, 공원 산책, 신문지 찢기 놀이, 물풍선 놀이 등등 각종 놀이를 이용해 단 30분이라도 집중해서 놀아주자. 아이는 이 시간을 통해 정서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3.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대리 양육자로 삼아라
나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선택할 때는 최대한 나와 비슷한 기질, 비슷한 양육 방식을 가진 사람을 대리 양육자로 삼아라. 그래야 엄마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 돈이나 시간, 아이와의 물리적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나와 비슷한 양육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친정 엄마가 대신해 아이를 키워주는 경우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을 덜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대리 양육자와 될 수 있는 한 많은 대화를 하라. 죄책감은 아이의 일상에 대해 내가 잘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대리 양육자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의 일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엄마의 죄책감은 줄어든다.
4. 남편과 아이 양육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하라
아이에게 가장 안좋은 것은 아빠와 엄마가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비를 보는 것에 대해 아빠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할머니는 아무때나 보여주고, 엄마는 떼를 쓰면 보여준다면, 이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울 수 없게 된다. 결국 아이는 행동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직장맘은 남편, 대리 양육자와 양육 태도를 일치시키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남편의 양육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남편이 알아서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을 버리자.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동빈이랑 보드게임해줘”하고 정확히 표현하자. 남자는 상대방의 숨은 의도나 욕구를 여자만큼 민감하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5. 내 안의 어린 시절 자아의 욕구가 뭔지 파악하라
엄마 자신이 현재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모아 보면 대체로 어린 시절 자신이 부모에게 원했던 일인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자상함의 이름으로 많은 간섭을 받고 자랐다면 아이에게 선택권을 많이 주고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신을 방치했다면 항상 아이와 함께하고 싶고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자아에게 말을 걸어보라. 일상에서 자신의 욕구를 살피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것은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켜준다. 자신의 욕구를 잘 아는 사람이 자녀의 욕구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아이나 남편의 무리한 요구나 부적절한 요구에 경계를 지어줄 수 있다.
6.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과감히 나를 위해 투자하라
아이들에게 했던 부적절한 행동들에 대해 후회하고 안타까워하지 마라. 지금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면 된다. 엄마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아이 때문에, 또 엄마 스스로의 감정 때문에 힘들다면, 전문가와 양육 상담을 하라. 집단 양육상담 프로그램이나 모아애착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보는것도 방법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상담할 시간에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과감하게 엄마의 심리적 건강을 찾기 위한 투자를 한 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외에도 마음을 터놓을 만한 친구를 만나고 가벼운 스트레칭, 산책 등을 하는 등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무엇이든 물어보세요](13)
직장맘들 토론회서 대책 호소
콜센터 안내원
12시반 퇴근시간 지나도 붙잡혀
두아들 집에 올 시간 넘기기 일쑤
학습지 교사
방문수업 오후 2시부터 시작인데
각종 교육·회의 준비에 아침 출근
정부가 할 일은
시간제 확대는 현실 고착화 불러
점심 유급화 등 노동시간 단축을
35살 ㄱ씨는 첫아이를 임신한 8년 전 해운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를 갖자 사직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올해 3월 일자리를 찾았지만 경력이 부족한데다 4살짜리 아이까지 보살펴야 해 결국 과외업체 콜센터 안내원 자리밖에 없었다. 조건은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 오전 9시3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일하면 되고 영업 부담도 없다고 했다. 실상은 달랐다. 영업 한건당 수당 1만원을 준다며 영업을 유도했다. 과외상담을 1건도 못 채우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저녁 6시까지 붙들어두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통 퇴근은 오후 3시에나 가능했다. 남편은 빨리 귀가해야 저녁 8시다. 계획과 달리, 낮 12시30분이면 학교가 끝나는 첫째나, 오후 2시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둘째를 보살필 수 없는 상황이다.
30대 여성 ㄴ씨는 큰아이가 3살 무렵이던 4년 전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밤 11시까지 일하는 학원강사보다, 오후 2시 방문수업이 시작되는 학습지 교사가 더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수업 준비와 각종 회의며 교육 때문에 오전 10~11시까지는 출근해야 했고 금요일을 빼면 밤 11시가 퇴근 시간이었다. 그사이 큰아이는 7살로 자라났고 2살짜리 둘째도 생겼다. ㄴ씨는 어쩔 수 없이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본인부담금이 높아지는 보육 지원 제도다.
“잦은 야근과 회식 등 장시간 노동문화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시간제 일자리로 몰리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서울시직장맘센터가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연 ‘보육의 오늘을 말하다, 내일을 그리다’라는 토론회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이렇게 정리된다.
여성민우회가 5~10월까지 미취학 자녀를 둔 양육자 19명을 집단 심층면접한 결과, 여성 양육자들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거나 시간제 일자리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였다.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는 직장과, 보통 오후 4~5시 문을 닫는 어린이집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저녁 7시까지 아이를 돌봐야 한다.
권박미숙 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활동가는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몰리는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 조건이나 임금 체계가 불안정한 더 열악한 일자리여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사실상 어렵다.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남성 ㄷ(41)씨도 참석했다. 아이가 4살인 그는 아내가 이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 쓴 상태에서 보조양육자도 없어서 아이가 10개월 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일해 육아휴직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남성에게 육아는 부수적인 일이라는 사회적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휴직 때 아빠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고 말했다. 권박미숙 활동가는 “육아휴직이 여성만 사용하는 제도로 잘못 이해되면서 여성은 직장 내에서 일을 덜 하는, 불성실한 노동자로 인식된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해야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민우회는 토론회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점심시간 유급화 등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어린이집을 종일제와 반일제로 구분하는 등 현실에 맞는 운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내 나이 마흔하고도 넷, 결혼 11년차..
그러나 남편과 단 둘이 한 이불 덮고 잔 기간은 결혼하고 두 달만에
첫애 가진 후 출산하기까지 달랑 12개월 뿐이다.
첫 애가 태어난 후 아이와 내가 침대 아래에서 자고 남편 혼자 침대 위에서
자기 시작한 후, 2007년에 태어난 둘째가 내 옆을 차지하고 2010년에
태어난 막내까지 아이 셋이서 내 옆을 다투는 세월이 벌써 10년 째다.
그러다보니 남편과 나누어야 할 둘 만의 시간을 갖는것이 점 점더 어려워진다.
애들 어릴땐 남편하고 한 이불 덮는거 꿈도 못 꾸었다고 푸념하시던
형님께 '그런데 어떻게 셋째는 만드셨어요?'물었더니
'그건 같이 안 자도 다 생기게 되있어'하시더만...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한 이불 덮고 안 자도 애는 다 만들며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다섯 식구가 한 공간에 모여 자는 우리집에서 남편과 모처럼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작전 아닌 작전이 필요하다.
우선 애들을 다 재워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눕기 전에는 절대 잠들지 않는
아이 셋을 다 재우기 위해서는 집안 일 다 끝내고 우리도 같이 누워
불을 끄고 애들 잘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눕자마자 코 고는 남편이나
밤만되면 저질 체력으로 허덕이는 나나 애들 재우다 잠들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다 중간에 깨더라도 부부생활이고 뭐고 잠이나 자고 싶어 마다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의지가 강한 날은 애써 잠을 참으며 애들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건너편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 신호를 보내 살그머니 일어나 발끝으로 걸어서
다른 방으로 간다. 그리고 반드시 문을 걸어 잠근다.
이렇게 해야 남편 한 번 안아볼 수 있다.
어제도 모처럼 서로 의지가 강한 날이었다.
애들 재우다 같이 잠들었는데 한 밤중에 남편이 나를 깨웠다.
조용 조용 일어나 제일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짧게 은밀한 시간을 막 나눈 찰라, 남편이 몸을 벌떡 일으켜 귀를 귀울이는 것이다.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뭐지? 하면서도 애들한테 어서 가봐야지 싶어
서둘러 옷을 입고 문 열고 나왔더니, 어두운 마루 한 가운데 윤정이가 울며 서 있다.
자다 깨었는데 엄마도 아빠도 안 보이니 무섭고 놀라서 여기 저기 돌아다닌 모양이다.
우리를 보자마자 '엄마, 아빠 어디 있었어?'한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큰 아이도 깬 눈치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응... 안방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아빠랑 가서 보고 있었어'
얼결에 이렇게 둘러댔다.
'무슨 소리?'
'뭔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가 봤지'
둘째는 이 정도로 다시 안심을 하고 눕는데
'안방 화장실에 가봤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하고 큰 놈이 묻는다.
뭔가 눈치챘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리바이를 밀고 나가야 한다.
'세면대 아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더라고...'
'세면대 아래, 어디요?'
큰 놈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으윽.. 이 녀석... 이 정도에서 그칠것이지...
'세면대 아래 휘어진 곳 있잖아. 거기서 물이 떨어지고 있어서 아빠가 확인하고
잠깐 손 보셨어. 천정에도 물이 많이 고여있던데 필규 너 저녁에 욕조에 물 엄청 채우고
목욕했지? 날도 추운데 더운 물을 그렇게 많이 써서 나중에 씻는 사람들은 더운 물이
잘 안나왔다고.. 천정에도 습기가 많이 차고... 안방 화장실은 제일 외벽이라 추워서
그렇게 습기차면 얼 수 도 있어. 다음부턴 그런 목욕 하지마. 겨울 지날때까지...'
난 애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화살을 아이에게 향하면서 이런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그래서 어제 마지막으로 그런 목욕 한거예요'
다행히 큰 녀석이 주제를 돌렸다.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오빠야, 안방 화장실 얼면 오줌싸다 썰매 타도 되겠다'
기분 좋아진데다 잠까지 확 깬 둘째가 이렇게 말했더니 큰 아이도 큭큭 웃는다.
'왜 다들 자다가 깨서 난리야. 어서 자. 내일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려고.'
남편은 이렇게 훈계를 하며 큰 아이 옆에 누웠다.
'아빠, 나랑 안고 자요'하며 큰 아이가 남편에게 매달린다.
둘째는 다시 내게 찰싹 붙는다. 이런 소동속에도 굳건히 잠들어 있는 막내도
잠결에 발로 내 배를 비벼댄다. 두 아이 사이에서 다시 옴쭉달쭉 못하며 나도 잠을 청했다.
아이들은 자면서도 엄마를 확인하는 놀라운 촉수를 작동시킨다는 것을
10년 육아 기간 내내 경험하고 있지만 어젯밤은 정말 아찔했다.
그러다 안방문을 열려고 했다면, 안방문이 닫혀있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되었을까.
11살 큰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도 성생활이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한 밤중에 다른 방에서 나오는 부모의 모습을 들키고 싶진 않다.
언제쯤 아이들이 제 방으로 독립해 들어가고 우리 부부만 한 방에서 자 볼 수 있을까.
열한 살 큰 놈이나 일곱살, 네살 딸 들이나 너희 방으로 가서 자라는 말을
마치 집에서 내쫒기나 하는 것 처럼 질색을 하며 받아들이고 있으니 당분간도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정말 아이들이 다 커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릴때면, 그때도 우리에게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남아 있을까..
어렵고 힘들어서 더 간절해지는 감정이 막상 쉬워지고 편해지면
그때도 이렇게 서로에게 적극적일까.. 온갖 생각들이 솟아오른다.
유명한 연작 만화인 홍승우의 '비빔툰'을 보면 신혼일때는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눈에 불꽃만 튀기면 아무때나 살을 섞던 부부가
애가 생긴 후에는 잠 한 번 같이 자기 위해서 설계도를 꺼내 작전을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막 하려고 하는데 애가 깨는 경우, 하는 중간에 애가 엄마를 찾는 경우, 한 사람이
애를 재우러 들어가야 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작전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만화의 결론에는 작전과 상관없이 애랑 한 밤중에 씨름을 하기도 하고
재우런 간 배우자 기다리다 잠들어 버리기도 하는 가슴 아픈 모습이 나오는데
내가 살아온 10년 세월이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경우엔 10년간 띄엄 띄엄 세 아이를
낳는 바람에 지금도 여전히 미션 임파서블같이 아슬아슬 외줄타는 부부생활이다.
결혼전엔 정말 몰랐다. 옆집 남자도 아니고 내 남자와 자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울 줄은.... ㅠㅠ
» 한겨레 자료 사진.
필자도 두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고 어떤 원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부모의 말과 행동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대표적인 표현이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라는 말이다. 거울처럼 아이에게 영향을 주므로 자녀를 훌륭한 성인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아이의 두뇌발달에 대한 다양한 원인에 대한 영향 평가가 보고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의 말과 행동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끔 아이가 좋지 못한 성적을 받아오면 ‘너는 안되겠다.’,‘머리가 나쁘구나.’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한 마디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빼앗고 두뇌의 활동을 억누르며 능력을 저하시킨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고 격려와 칭찬을 해 주면 두뇌의 회전이 빨라지고 어려운 문제를 쉽사리 풀 수 있게 된다. 즉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의 심리 속에는 자기가 한 말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규제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스스로를 향해 말하게 함으로써 더 한층 좋은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나는 내 스스로 생각한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게 지도한다면 무의식의 힘이 현실에 직면해서 제 힘으로 생각하는 아이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더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칭찬이 필요하다. 누구도 칭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칭찬을 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지적해서 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아이에게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늦기 때문에 칭찬의 대상이 되는 행동에 대해 명확히 지적해야만 그 효과가 크게 되고 아이 스스로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한 점을 지적해줘야 새로운 자신감과 욕구가 생기게 되어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아이가 부모 뜻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보통 엄마들은 소리지르며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너 또 그러면 혼난다.’라고 흔히 대응한다. 당장에는 아이가 그 말에 따를 수 있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부모의 권위를 강요하는 말이며 비논리인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 아이가 배우는 것은 다만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는 사실뿐이다. 그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게 되면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창조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말에 대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고 평소에 대화를 통하여 조금씩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동양에서 부모들은 좋은 스승을 찾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좋은 스승을 찾는다는 것이 부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폭넓고 편견 없는 교육을 위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고 할 수 있다.
» <한겨레> 자료사진
만 0∼5살 영유아들이 평균 2.27살에 스마트폰을 처음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초 이용시기가 빠를수록 스마트폰 이용시간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청소년정책연구원과 육아정책연구소가 함께 연 `영유아 및 아동·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예방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발표됐다.
연구소가 서울·경기 지역의 0∼5살 영유아를 둔 부모 1천명을 대상으로 영유아의 스마트폰 노출 실태를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26.4%가 3살에, 23.6%가 1살에 처음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응답자 자녀들은 만 3살이 되기 전인 평균 2.27살에 이미 스마트폰에 노출됐다.
0∼2살 영아만 봤을 때 영아의 과반(54.5%)이 1살에 처음 스마트폰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초 이용시기에 따른 스마트폰 이용시간을 보면 0살은 33.45분, 1살 32.84분, 2살 29.56분, 3살 34.42분, 4살 28.65분, 5살 24.81분으로 대체로 최초 이용시기가 이를수록 이용시간도 길었다.
전체 응답자의 영유아 자녀 36.7%는 하루에 평균 30∼40분 스마트폰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10∼20분(24.4%), 20∼30분(21.7%)이라는 답변도 많았다. 매일 1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영유아도 전체의 9.5%나 됐다.
특히 주 양육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영유아 자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많았고 스마트폰에 처음 노출 시기도 이른 편이었다고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영유아 자녀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로는 전체 응답자의 70.9%가 ‘자녀가 좋아해서’를 꼽았다. ‘또래와 공감대 형성’(12.5%), ‘습관적 사용’(6.1%), ‘정보 검색 등 지식 습득’(4.8%) 등의 순이었다.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는 만화(30.5%), 게임(26%), 음악(13.1%), 교육용 콘텐츠(12.1%), 카메라·사진첩(11.7%) 등의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52.8%)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시간 제한 등 가정 내 스마트폰 이용 규칙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영아 학부모 중에서는 규칙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58.1%로 다소 높았다.
부모가 스마트폰 이용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경우 자녀의 이용시간은 31.5분인데 반해 제한하지 않는 경우는 45.5분으로 차이를 보였다.
스마트폰 중독이 의심되는 영유아 사례를 조사한 결과 또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을 뺏으면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고 이 부연구위원은 전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영유아 스마트폰 중독 척도 개발, 영·유아 스마트폰 이용의 법적 규제 조항 구체화, 부모를 위한 지침 제공 등을 제안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22일 개관하는 국립나주박물관 |
22일 개관하는 국립나주박물관(위)은 마한 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옹관(아래)의 형상을 좇아 설계됐으며, 인접한 반남 고분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건물의 대부분을 지하에 배치했다. 나주국립박물관 제공 |
나주/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21일자)
36일 차
턱 빠지고 눈 빠지고
젖을 한 가득 물고 쪽쪽 빨고 있는 바다야,
턱 빠지겠다.
그 귀여운 모습을 한 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눈 빠지겠다.
38일 차
바다야, 부탁해
땅땅하게 꽉 찬 젖을 바다가 쭉쭉 빨면
젖이 홀쭉해지면서 시원~하다.
유축기가 짤 수 없는 깊고 깊은 곳의 젖을
바다는 쭉쭉 빨아낸다.
그래서 유축기보다 더 성능이 좋은 바다 입에
내 젖을 열심히 물린다.
바다야, 부탁해.
남김없이 싹 비워줘.
아주 아주 가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
알록달록 색종이 가루가 내 머리 위에 쏟아지는 듯한 날.
어제 하루가 내겐 그런 날이었다.
베이비트리를 통해 알게 된 lotus님과 몇 달을 벼르다 드디어 처음 만나게 된 날.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그녀의 '초록 집'을 찾아가는 길은 작은 여행과 같았다.
사실 내겐 온라인을 통해 만난 사람과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겪는 외국살이가 때론 귀양살이같아서,
간만에 마음 통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선발로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기로 약속해놓고는 이런저런 소심한 걱정들이 앞섰는데..
'만나기 전에 살을 좀 더 빼야하지 않을까?'
'온라인에서는 드러나기 어려웠던 나의 허술한 점들을 눈치채면 어떡하지?' ...
하지만, 마흔이 넘어 좋은 건, 삶의 작은 모험들을 이젠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이렇게 사람사귀기가 무서운 세상에, 온라인에서 나눈 글만으로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알람을 평소보다 일찍 맞춰두고 일어난 아침,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뒤
그간의 망설임을 비웃으며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만 3살 아이와 아직 돌도 지나지않은 아기를 키우며 날마다 고군분투중인
그녀가 차려준 점심! 대파만으로도 이렇게 달콤한 야채맛을 즐길 수 있다니. 한 수 배웠다.
오랫동안 푹 잠들어준 아가 덕분에, 오랜 수다를 모국어로 풀 수 있었던 달콤하고 꿈같은 시간.
남 사는 거 듣고보는 것만큼, 즐겁고 유익한 공부가 또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만난 그녀의 큰아이 손을 잡고 전철역까지 걷는 동안,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7년 전, 뭐가뭔지 몰라 날마다 노심초사, 우왕좌왕했던 어설픈 나의 초보 엄마 시절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고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 속에 일렁거렸다.
평생 모른 채로 지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한 공간을 계기로
낯선 나라에서 만날 수 있다니. 그것도 같은 '아이 엄마'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앞으로 이어질 육아의 날들은 생각보다 더 험난할 지 모른다.
하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오늘같은 공감과 만남이 긴 육아의 골목골목에 숨겨져 있다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을까.
그저께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집, 맞은 편 집 아주머니댁은 중년 부부 두 분만 조용하고 단촐하게 사신다.
그런 집 앞을 우리 둘째가 유치원만 갔다오면 친구랑 고함고함지르며 놀지를 않나,
자전거에서 스쿠터, 장난감 자동차까지 온갖 발통달린 것들을 굴리며 노는 탓에
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과밭에서 따온 사과를 몇 알 드릴까 말까
망설이다가(아직 이사온 지 반년정도라 서먹한 이웃에게 뭔가를 가져가면,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싶어 그냥 벨을 누르고 가져다 드렸다.
그랬더니 두 분이 함께 현관까지 나오셔서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며 고마워하셨다.
그렇게 집으로 다시 돌아와 잠시 있으니, 우리집 벨이 울리고
맞은 편 집 아주머니께서 손수 만든 과자라며
아이들과 먹으라고 내 손에 들려주시며 하시는 말씀,
"아휴, 진작 주고싶었는데 망설이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쳤지 뭐야. 사과 고마웠어요."
아!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가?!
먼저 손내밀까 말까 망설이고 기회만 엿보다 그냥 포기하거나,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이웃과의 관계는 참 그렇게 되기 싶다. 한번 시도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겪을지도 모르지만
먼저 시작하는 용기가 늘 좋은 이웃을 얻게 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lotus님과의 만남이 그걸 다시한번 증명해 주었다.
지난 겨울, 집에서 담은 된장.
서로 다른 재료로 두 통 담았더니, 색깔도 맛도 서로 다른 된장으로 무르익었는데
요즘 된장국은 이 두 종류를 섞어 끓여먹고 있다.
하나의 된장맛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맛의 조화와 차이가 있는데
사람 관계도 이랬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서로 다르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 혼자 있을 때보다 둘 이상 다수가 함께 했을 때
더 성숙하고 무르익은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리아야, 가람아, 아줌마네 집 된장 얼른 먹으러 오렴!!
올해 거둔 나팔꽃 가지는 더 야성적이고 무성한데 아마 화분이 아닌 땅에서 키워 그런가.
이 가지로 이쁜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어 손님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어린 아이들 돌보느라 힘들었을텐데,
따뜻한 정성과 마음으로 처음 만나는 저를 맞아주신
lotus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연이 있게 해 준 베이비트리도 고맙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쉽게 만나기는 어렵지만,
댓글로 따뜻하고 유쾌한 소통을 해주시는 많은 분들도 늘 고맙습니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육아월드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이곳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요?
그리고 새해에는 또 어떤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될까, 벌써 궁금해집니다.
지난 11월 17일, 중국 신동방그룹의 초청으로 북경에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6번째 맞는 자녀양육에 대한 전국 포럼으로서 상하이, 광저우 등 전국에서 2,000명이 넘는 자녀교육 전문가들과 고위 관료가 참석을 하였으며, 그 열기가 대단했다. 칭화대 교수의 자녀양육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과 전문가 토론, 자녀에게 독서를 가르치는 법 등이 이어졌으며, 필자는 ‘놀이는 창의성의 원천 동력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의외로 폭팔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장내의 참석자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바다로 변했다. 또한 강의 후, 100명 이상과 기념사진을 찍는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 자녀와의 놀이를 인생의 측면에서 해학적으로 보여주었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하다. 더구나 서너 곳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통역사가 애를 먹기도 했다. 중국어를 할 줄 몰랐지만 통역사가 있기에 별 불편함은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포럼의 경우, 정부의 기관이나 혹은 학계에서 주관하여 개최를 하는데 반하여 중국에서는 교육관련 기업에서 개최를 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더구나 오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참가자가 편안하게 묵을 수 있게 하고, 식사에 불편이 없게 하는 등 대국적,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시범조가 단상에 나와서 재미있는 놀이 시범
*교육에 대하여 엄숙한 중국인들이 금방 박장대소를 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의 자녀양육 현실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선진화된 우리 교육과 양육 시스템이 중국에 진출하여 또 다른 카테고리로서의 한류를 형성시킬 수도 있다는 모멘텀을 기대한다.
먼저, 중국 자녀양육의 사회적인 환경을 보자. 정말 열악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중국 북경에 도서관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단박에 알 수 있다. 도서관이 없다는 말은 곧 아이들이 책을 읽을 기회가 현저하게 적음을 말한다. 또한 이는 인문학적인 사고방식의 매우 부족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6년~1976까지 진행된 문화혁명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한다. 중국의 문화혁명이란 무엇인가? 모택동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데오르기적인 사건이며, 한마디로 현대판 분서갱유(중국 진나라 때, 진시왕이 모든 책을 불살랐으며, 수많은 지식인들을 산채로 매장시켰던 사건)라고 보면 된다. 많은 지식인과 학자들이 전위대인 홍위병에 의하여 고문과 살해되었으며 시골로 이주되었다. 그 결과 중국의 기초 학문은 피폐해졌고, 훌륭한 문화와 전통들이 사라지고 단절되었다. 지금의 30~50대의 아빠들은 바로 그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세대들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6.25전쟁 후의 삶을 상상하면 비슷할 것이다. 빈곤은 물론 교육과 문화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자란 세대이다.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보자. 우선 맞벌이가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이는 주로 1명이다. 한 명을 더 낳으면 천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아이들이 바로 중국의 소황제라고 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부모가 모두 해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버릇이 없고, 이기적이며 훈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주거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형태이다. 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실이다. 좋은 점이 있다면 우리와 달리 저녁 식사의 경우, 아빠가 준비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는 우리의 한 세대 전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지만 마음으로만, 속으로만 사랑하는 형태이다. 이는 곧 부자간에 대화가 현저히 적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놀이 문화가 거의 없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 전부다. 그리고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직업은 1)공무원 2)군인 3)의사 4)변호사 순이란다. 공부원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바로 세무공무원이란다. 아마 부정과 부패, 비리로 인하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그런 듯 하다.
중국의 정부 정책 중에서 2008년에는 ‘유아 교육은 놀이로 하라’라고 각 성에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진행시킬 교육적인 인프라가 없기에 현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의 책 관련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의 출판사들은 책을 출판 한 후에 판매 추이를 봐서 책을 추가로 발행한다. 그러나 중국은 1쇄를 발간하면 절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이 발간될 때 사지 않는다면 구매하기가 어렵다. 그곳에서 어린이 책도 여러 권을 살펴봤는데 우리보다 10년 정도 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서의 경우, 강사의 강의내용을 살펴봤는데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법 등의 초보 수준이었다.
‘놀이가 창의성이다’ 라고 필자가 주장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조차 놀이의 중요성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가 적다. 필자의 놀이 디베이스 속에는 총4,500개의 놀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놀이야 말로 아이에게 창의성은 물론 16가지 인성을 형성시키고 발달시킬 수가 있다. 그 중에서 신문지로 1,000개의 놀이를 할 수 있으니 이것보다 더욱 창의적인 놀이는 없다.
모든 놀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모든 놀이는 쉽다.
모든 놀이는 돈도 들지 않는다.
더구나 놀이는 아빠와 아이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놀이는 곧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미다스의 손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다.
*중국의 신동방그룹:한국의 재능교육, 대교 등과 유사한 중국 최대의 교육전문회사이며, 영유아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그리고 유학까지 담당하며 그 규모가 수 십 배의 크기이다.
글:권오진/아빠학교장, 인성발달연구소장
만5세를 몇 달 앞둔 둘째는 유난히 먹는 것과 장난감 욕심이 많다.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동네 수퍼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고,
주말에 가족 모두가 함께 쇼핑이라도 하는 날엔
아이스크림같은 달달한 음식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장난감 가게에 "반드시 구경만 한다!"는 약속을 하고 보러가서
어김없이 울고불며 사달라 떼쓰며 가게를 나오곤 하는데...
그래서 남편과 나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주말에 밀린 장을 보러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대형 마트나들이가 늘 두렵다.
아직 사리분별이 어려운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드러내는
거의 원시적인(?) 물욕에 대해, 그 상황마다 부모가 현명한 판단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원하는 대로 다 사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게 우리 부부의 기본방침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마음과 요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건,
요즘 물건들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보니,
어른인 우리조차 그 유혹을 이기기가 힘든 때가 많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물건을 둘러싼 실랑이를 벌이지 않으려면
먼저 장난감과 과자로 가득찬 소굴(?)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 소굴 근처로 갈 수 밖에 없는 날이 있다.
아이들의 겨울 내복과 방한 용품을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허둥지둥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가게 된 날 있었던 일이다.
요즘 둘째가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장난감은 이미 '싼타할아버지에게 소원비는 걸로!"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반드시 구경만 하기로 약속을 하고 장난감 코너에 잠깐 들렀다.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변신 벨트'의
새로운 모델이 막 출시된 때라, 아이는 그 앞에서 황홀해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마침, 유치원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이 새로운 장난감을 가진 아이들이 마구마구 자랑을 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의 욕구도 나날이 부풀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싼타할아버지를 기다리기엔 한 두 달이란 시간이, 다섯 살 아이에겐 마치 1,2년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역.시.나 ... 조용히 나오기로 했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고
장난감 코너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차장까지 오는 내내
울부짖는 아이를 데리고 걷는 우리 식구들의 표정은 험악하게 굳어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흘낏흘낏 돌아보았다...
아. 이젠 이런 순간이 정말이지 지겹다.
아들 녀석은 더 어릴 때부터 이렇게 늘 고집이 세고,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했다.
여자아이들보다 남자 아이들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는 얘기는 많이 듣긴 했지만
매순간 가는 곳보다 이런 식이고, 요즘은 야외나들이를 많이 하느라 이런 매장을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더 흥분하는 듯 했다.
차를 타고 나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야단치고,
타이르고 구슬러서 겨우겨우 진정시켜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가게에서 아이가 본 물건은 요즘 '갓'나온 새 장난감이라 그런지
갖고싶은 아이의 마음이 보통 때보다 더 간절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누나에게 새 장난감의 한 부분을
대충이라도 좋으니 종이로 만들어달라며 매달렸던 모양이다.
숙제를 하던 큰아이가 귀찮아하며 종이로 대충 뭉쳐 만들어준 '수제(?) 장난감'은 이랬다.
왼쪽에 있는 자물쇠처럼 생긴 게, 새 장난감의 한 부품인데 이걸 장난감 카달로그를 보고
누나가 대충 만들어준 게 오른쪽에 허술해보이는 종이 장난감이다.
둘째 아이는 이걸 어찌나 소중하게 가지고 놀던지, 유치원에 갈 때도 호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종이 한쪽이 뜯어지기라도 하면 열심히 테잎으로 붙여 며칠이나 잘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귀엽고 재밌기도 하고, 정말 갖고싶어하는 아이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놀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올테니!
그런데 사실,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는 '변신 벨트'를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다해도(물론 엄마아빠가 몰래 준비해서 연출하는 거지만) 또 좀 걱정이다.
변신 벨트를 갖게 되면, 거기에 따르는 부속 장난감들이 또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는 잠시동안은 원하던 물건을 얻은 기쁨에 들뜨겠지만,
차차 그 관련 부속 장난감들에 대한 욕구로 엄마아빠와 또 다시 줄다리기를 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에 우연히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겨
나의 이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다들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요즘 얘들 다 그런걸 뭐.
얼마 안 지나 싫증낼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사주고마는 부모들도 많을걸?!"
"아유, 우리 아들은 요즘 물욕대마왕같다구. 보는 것마다 다 사달래. 정말 못살겠어!"
"근데, 어느 정도 상황을 지켜봐서 꼭 원하는 거는 사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릴 때 어느정도 물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좀 더 커서 물욕에 대한 자제가 어려워
더 돈을 많이 쓰게 되는 일도 생긴다더라구..."
휴.. 정말 부모 노릇 하기 힘든 시대다.
이제 겨우 5살 아이에게 덜컥 안겨주기에는 꽤 비싼 장난감들이지만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치는지 엄마인 나도 잘 안다.
남자 아이들의 본능과 상상력을 마구 자극시키고 만족시켜주는 장난감들을
아이가 꽤 오랬동안 잘 가지고 논 걸 보면, 그만큼의 돈이 크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장난감이 너무 많다는 것.
하나가 유행이 지나고 나면 또 새로운 것들이 아이들을 유혹할 거란 사실이다.
하긴 뭐. 둘째 아이만 물욕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오랫만에 나간 대형 쇼핑매장에서 작정을 하고 지갑에 두툼하게 채워간 현금을 단 몇 시간만에
홀라당 써버린 이 엄마에 비하면야 뭐... 식구들 겨울옷만 장만한다더니
매장 분위기에 취해 크리스마스 기분은 혼자 다 내며,
이것저것 사들여 집안 곳곳에 쇼핑봉투가 널린 것도 모자라
택배 주문할 것들도 마음속에 몇 개나 줄서있는데다, 며칠 전 못 사고 그냥 돌아선 가게의 물건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니 ... 이걸 어쩌나.
어른도 이렇게 물욕을 다스리기가 어렵고,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인가 아닌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5살 아이에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매번 어렵기만 하다.
큰아이도 유아기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졌으니
둘째도 지금이 아마 물욕의 절정기가 아닐까 하며, 좀 더 크기를 기다리면서 타이르고 있다.
자연으로 바깥놀이를 많이 나가고, 좋아하는 친구와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한다해도
아이에게 이 문제는 별개인걸까.
휴.. 얼른 싼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오셔야 조용해질텐데.
9월부터 크리스마스, 싼타, 크리스마스, 싼타 .. 하루에도 몇 번을 외치고 있으니!
한참 온 것 같은데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니.
아들 녀석보다 이 엄마가 먼저 숨넘어가겠다~
1989년에 출간됐지만 절판된 고 서정숙 시인의 유아 동시집을 새로 갈무리해 펴냈다. “아가 입은/ 앵두.// 엄마가/ 똑,/ 한 개 따 먹어도/ 그대로 있고.// 아빠가/ 똑,/ 한 개 따 먹어도/ 그대로 있고”라는 표제작처럼 경쾌한 리듬과 간결한 시어가 특징이다. 3살부터.
채상우 그림/보물창고·1만500원.
교실 안 집단 괴롭힘 문제를 다루며 직접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침묵하는’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아이들은 피해자를 못 본 척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해법은 아이들의 연대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초등학생부터.
고정완·나누리 글, 송하완 그림/풀빛미디어·1만1000원.
잘 쓰인 텍스트는 그대로 외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야기 안에 아이들이 모르는 말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전래 동화에는 아이들이 모르는 옛말이나 농기구 등이 등장하는데 이런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던지 설명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13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아는 사이였으니 그와 나의 역사를 따져보면 20년, 그러나 졸업할 때까지는 길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아는 여자’, ‘아는 남자’에 불과했으니 여기까지 거슬러갈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쓸 글을 생각해 보아도 이렇게 긴 역사를 떠벌리는 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뉴밀레니엄이 도래한 시기에 ‘결혼’했고 13년 동안 같이 살았다.
친한 후배는 우리의 결혼식이 애들 공연 같았다고 말했다. 늘 꾀죄죄하던 둘이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얼굴을 허옇게 바르고 나타났으니 달라 보였겠지. 우리 사진으로 슬라이드쇼를 만들었고 남편이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리고 ‘신랑 OOO는, 신부 OOO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를 사랑하겠습니까?’라는 엄숙한 물음에 수줍게 대답하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했기에 주례를 두지 않고 둘이 만든 ‘결혼 선언’을 함께 읽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힘들 때 나보다 더 힘든 상대방을 헤아리겠습니다.’와 ‘다투더라도 한이불 덮고 자겠습니다.’이다.
13년 동안 우리는 꽤 잘 지냈던 것 같다. 신혼집에 친구들을 불러 함께 놀았고 동갑이다 보니 상대방의 친구라는 경계를 허물며 잘 지냈다. 일하고 남는 시간은 거의, 심지어 그의 회식, 워크샵도 따라다니며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말도 잘 통했다. 여지껏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크게 충돌한 적도 없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방향도 얼추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론 사소하게 다투고 상처준 적도 있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어느 날, 불과 열흘 전의 일이다. 아이들 재우고 옥상에서 둘이 술을 먹는데 남편이 내게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뒤통수를 둔기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예상 밖의 일격,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그는 돈 버느라 바쁘고 나는 집에서 어린 애들 돌보느라 힘들었던 지난 몇 년, 그 긴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각자 조금씩 벌고 각자의 길을 모색하며 집안일, 아이들 보살피는 것을 같이하는 지금의 생활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어떤 년이야? 충격 속에 가장 먼저 튀어나온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 한 편이 만들어지려 했다.
“누가 생겼구나.”
“아니.”
일단은 안심. 그러고 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는 내려와 잠자리에 들었다. 어떤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면 스스로 알아서 방어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당시에는 꽤 담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깼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이 말이 마음속에 파문을 만들기 시작하여 마침내 큰 소용돌이가 되었다. 나는 상처 받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모멸감, 그리고 배신감에 휩싸였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수많은 드라마 대사와 노래 가사가 내 감정을 변호하고 지지했다. 냉정히 따져보려고도 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니면서, 왜, 지금 이렇게 잘 지내는 와중에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돌이켜보면 십 여년 전에도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럼 왜 결혼하자고 그랬냐고!! 그래서 판 깨자는 거야?
지금처럼 그냥 살면 되지. 사랑에 얽매이지 말고 물 흐르듯 같이 잘 살아보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같이 사니? 뭐 때문에?
그동안 아이들과 예쁘게 잘 살았잖아. 그걸 놓아버리면 안 되지.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는데 애들 때문에 그냥 같이 살자는 거야?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지만, 함께 잘 살아보자.’는 건 대체 뭔데.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이란 노래는 들어봤어도 이런 건 노래 가사에도 없다. 애들 때문에 못 헤어지고 어쩔 수 없이 구질구질하게 살아보자는 건가.
일주일 동안 숱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똑같은 멜로디가 조금씩 다르게 변주될 뿐. 나는 계속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절망하고 뭐가 문제인지 따졌고 그는 사랑이라는 말에 모든 걸 다 걸고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그 ‘사랑’이 싫다고 말했다. 변한 게 없다는 그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내가 이런 말로 왜 상처받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남자고 나는 여자다. 여자들은 보통 이럴 때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 나는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우리가 처음 만날 때부터 지켜본 지인들에게 울며 전화를 했다. 그녀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보듬어 주고 용기를 주었다. “왜, 딴 여자가 생겼대?” 처음에 그녀들은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과 똑같이 반응했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어도 척척 알아들었다. 같이 분노하고 같이 아파해주고. 공감, 마음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들도 ‘남자’가 아닌지라(남자라고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남자들은 보통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니 자기 말고 다른 ‘남자’가 어찌 생각하는지는 모를 수도 있겠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봐도 이 남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게 아닐까? 무언가 일단 부정하고 반항하고 보는. 남자 중에 전두엽이 늦게 발달하는 사람도 있대.” 이런 추측을 해보고 헤어지자는 건 아니니까 힘들지만 좀 지켜봐 주라고 격려해주었다. 무엇보다 “네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네 마음 잘 다독여!”라는 말이 참 따스했다.
충격적인 고백 이후 다툼, 괜찮은 척, 다툼을 반복하다가 일주일째 되던 날, 밤새워 다퉜다. 이기적이고 어른답지 못한 생각이지만 내 감정에 그냥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치밀어오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말고 터뜨리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러나 당사자인 남편에게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너무 격해져서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내 감정은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될 뿐이다.)
감정을 토해내고 미칠 듯 괴로워하며 또 하루를 보내고 기진맥진하여 책상 앞에 엎드려 그래 관두자, 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불현듯 낮에 고민 상담해주던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에 너무 얽매이지 마.”
부스스 일어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한동안 아침 명상을 한다며 조금씩 읽던 책, 정하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우연히 펼친 곳, 어느 한 구절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이제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보자.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어보자. 자신의 생각과 투사하는 것을 좇는 데 삶을 소모하도록 우리는 교육받았다. 심지어 <마음>이 이야기되더라도, 언급되는 것은 생각과 감정뿐이다. 어떤 연구자가 마음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연구할 때, 그는 자신이 투사한 것만을 볼 뿐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언어적 표현의 근원인 마음 자체를 실제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 소걀 린포체 지음.)
그동안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한 것은
사랑하지 않아, 사랑이 아니었어, 그가 했던 ‘말’에 대한 나의 집착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그럴지 모른다는 괴로움, 그렇지 않다는 억울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생각에 거리를 두었더니 분노의 감정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리고 나와 그의 성장 과정과 함께 살아온 날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그는 늘 ‘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들어했다.
“이제까지 좋아한 여자가 열 명정도 되는데 네가 그중에 하나야. 그런데 너랑은 같이 살고 싶어.” 13년 전, 애초에 그의 프로포즈는 이랬다. 그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적이 없었고 나 역시 영화와 같은 ‘낭만적인 프로포즈’가 상투적이고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나를,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살면서 나는 사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종종 서운했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그가 심술궂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는 화성인이고 나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갈등, 대표적으로 그는 내 기분과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이웃집 여자와도 쉽게 공감하는 것을! 심리학 책을 읽으며 서로의 ‘차이’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가 그 차이를 극복해주길 끊임없이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척이라도 좀 해주던지! 결혼해서 같이 산다면, 사랑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문득 내가 생각하는 그 ‘작은 노력’이 그에게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의 사고체계로는 정말 도저히 알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건 아닌지. 그리고 그가 ‘사랑’이라는 말을 부정하거나 머뭇거리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나 이외의 다른 관계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내가 고집하던 ‘사랑’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그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재미난 일을 찾아 지금처럼 사는 것이 좋다. 그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아끼고 좋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나를 대해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한다.
13년 같이 산 부부, 란 뭘까?
정말 더이상 ‘사랑’은 아닌가?
그저 친근하고 편안하게 지속되는 우정인가?
부러 생각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하는 습관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 속에서 참 혼란스러웠는데 이제 굳이 답을 찾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마스다 미리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사랑이니, 우정이니, 습관이니, 하나를 정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의 핵심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함께 산 지 13년,
‘내가 힘들 때 나보다 더 힘든 상대방을 헤아리겠습니다.’, ‘다투더라도 한이불 덮고 자겠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우리가 읽은 결혼 선언을 우리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같다.
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내 기분에 다가오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던 건 아닌지, 당연히 그가 해야 할 노력, 크지 않은 기대라고 생각한 것이 그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물론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발견해냈다고 한순간에 내 감정과 생각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다. 내가 대단한 명상가나 보살도 아닌데!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어야 했는가? 의문은 남는다. 그가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내 생각엔)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 꼭 아니라 말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지, 과연 있기나 한 건지. 그러나 그 대답은 그가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지, 내가 요구하거나 어찌해줄 수 없는 게 아닐까?
의심과 두려움도 있다. ‘사랑’이라는 구속력 없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이렇게 훅~가는 나는 보봐르처럼 구속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쿨한 인간도 아니다. 그런 척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약속이란 게 무슨 의미일까? 철저히 약속하고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이 될까? 지금 우리에겐 그의 말대로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물 흐르듯이 그냥 가 보는 게 최선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뭔가를 발견하거나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가보자. 우리가 탄 배가 사랑호인지 우정호인지 습관호인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이미 각자의 배를 타고 가고 있는지도.
» 변신 로봇. 한겨레 자료 사진.
“애앵~ 애앵~.(비상사이렌소리) It's your wife! It's your wife!(마누라 출현! 마누라 출현!)”
벨소리를 지정했더니 아내 전화를 분간하기 쉬워서 좋다. 받자마자 전화기 너머 아내는 다짜고짜 “잠깐만” 하며 전화를 바꿔준다.
“아빠아~.”
큰 아이 목소리!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웬일로 아빠를 다 찾나’ 하는 마음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다만 늘 고민이다. 아무데서나 우쭈쭈 하기는 힘들다. 속으로 ‘적당히 끊어야 한다’고 되뇌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으응~. 밥 먹었어? 뭐하고 있어?”
“아빠아, 나 로봇 변신 해주라.”
아, 오늘도! 가장 흔한 요구다. 이 중요한 순간에, 아빠와 나눌 수 있는 하고많은 용건 중에, 아이는 로봇의 변신을 단연 일등으로 꼽은 게다. 아빠가 급하게 보고 싶어 엄마를 졸라 전화한 이유가 고작 변신 로봇이라니.
요즘 유행하는 이 로봇 시리즈는 변신이 결코 쉽지 않다. 실존하는 자동차 모델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로봇으로 변신하는데, 모델별로 변신 과정도 모두 다르다. 어떤 건 허리를 돌려 무릎을 완전히 접어야 하고, 어떤 건 허리를 꺾고 무릎을 구부려야 한다. 어떤 건 어깨를 빼면서 동시에 돌려줘야 하고, 어떤 건 어깨를 접어서 넣고, 어떤 건 어깨를 아래로 꺾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간단히 착착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어서, 잘 모른 채 돌리고 꺾고 접다 보면 자칫 부서지거나 손을 다칠 위험이 크다. 어린 아이들이 직접 하기는 솔직히 무리다. 오죽하면 아이가 직접 변신에 성공한 동영상이 자랑거리로 인터넷에 올라와있을 정도다. 당연히 부모가 대신 해주느라 고생이다. 네일숍을 다녀온 지 얼마 안된 엄마들이 꺼리는 것은 물론, 아빠들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땀을 빼며 끙끙대는 게 일반적이다.
변신 로봇이 잔뜩 진열된 마트에는 환불 소동을 막기 위해선지 매장 직원이변신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라고 할 그들도 버벅대긴 마찬가지다. 새 제품이, 양심도 없이, 끊이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알파벳 글자 하나씩을 단 로봇이 두 녀석이었는데, 곧이어 다른 알파벳을 단 녀석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제는 업그레이드 모델과, 2단합체, 3단합체 모델도 등장했다. 시리즈의 끝은 어디인가. 개당 3~5만원씩 하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육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우려와 불만을 토로하는 부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데도 누군가는 흥행 성공을 자축하고 있진 않을지.
이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도 그리 교육적이지 않다. 때리고 부수고 서로를 괴롭히고…, 나 어릴 적도 그랬지만 로봇 만화는 늘 폭력적이다. 아이가 어느날 주먹을 들어보이며 “때릴까?”라고 해서 어디서 배웠나 했는데, 만화 속 악당 로봇이 똑같은 짓을 한다. 주인공들의 대사를 들어보니 “~거임” “아이씨” “대박이야, 대박” 등의 말투를 쓴다.
아이는 로봇에 열광하지만, 부모로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변신하는 화면을 보며, 선망의 눈망울로“우와아, 정말 멋있지”라고 하는 아이의 감탄을 보며, 정말 방해하기는 싫었다. 다만, 그 만화 어느 회에선가 주인공 아이의 대사가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방송의 힘이지.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보여지니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온 나는 아이의 요구에 따라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다시 자동차로 변신을 시킨다. 끼리릭, 틱틱, 삐걱삐거걱.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내용: 우리 아이 생기기전 애틋하고 따뜻했던 내 남자, 내 여자의 이야기를 댓글에 올려주세요.·기간: 2013.11.25(월) ~ 2013.12.15(일)·발표: 2013.12.16(월) 이벤트 게시판·경품: 도서(아이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3명, 뮤지컬(비틀깨비 - 서울공연) 티켓 5명(1인 2매)![]()
» <한겨레> 자료사진
다음 달부터 아이들을 학대하다 적발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의 명단이 공개된다.
또 내년 1월부터는 특별활동비 등을 포함한 보육비용, 급식 현황, CCTV 설치 여부 등 전국 각 어린이집의 자세한 정보도 학부모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영유아 보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을 보면 다음 달 5일부터 아동 허위등록 등 부당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타내다 운영정지나 시설폐쇄 처분을 받은 어린이집, 아동학대로 자격이 정지·취소된 원장·보육교사의 명단이 지방자치단체·복지부·보육관련 기관 홈페이지·아이사랑보육포털(www.childcare.go.kr) 등을 통해 공표된다.
시설폐쇄·자격취소 처분을 받은 시설과 개인은 3년동안, 운영정지·자격정지 대상의 경우 처분 기간의 2배(최소 6개월)동안 명단에 계속 이름이 실린다.
또 다음 달말까지 보육통합시스템 입력 과정을 거쳐 내년 1월1일부터는 아이사랑보육포털에 전국 어린이집의 구체적 운영 현황 정보도 공개된다.
부모들이 포털에서 △ 시설(보육실·놀이터 등), 보육교직원 직종·자격, 영유아 정·현원 △연간 보육 계획안, 특별활동 과목 및 단가 △행사비·차량운행비 등 필요경비 최대 금액 △세입·세출 예산서 및 결산서 △식단표·급식인력·식중독사고 전력, 실내공기 질, CCTV 설치 여부 △통학차량 수, 차량 안전교육 이수 여부의 주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수시 공개’가 원칙이며, 각 어린이집은 월·연간 단위로 바뀌는 내용의 경우 주기에 맞춰 최신 정보를 반드시 밝혀야한다.
기존 보육정보센터를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동안 보육정보센터의 기능이 어린이집 정보 제공이나 보육 교직원 교육 등에 편중된데 비해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일시 보육서비스, 장난감 대여 등을 통해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까지 지원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을 선택하기 전에 부모들이 더욱 쉽고 빠르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시설 운영의 투명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토요일엔 큰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김장이 있었다.
백오십 포기의 김장을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하는 큰 행사였다.
아이들은 남편한테 맡기고 나 혼자 학교에 들어간 것이 오전 10시 무렵..
학교의 넓은 거실엔 이미 많은 엄마 아빠들이 와서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수다를 떨어가며 동료 엄마들과 무채를 썰고 나서 오전 중에 버무려진 김칫속에
삶은 돼지고기로 맛나고 푸짐한 점심도 잘 먹었다.
본격적으로 배추에 속을 채워넣기 전에 화장실을 들리려고 했더니
1층 화장실엔 전기 난로가 연결되어 있어 문을 닫을 수 없었다.
2층 화장실로 갔다.
문을 닫으려고 했더니 빡빡해서 잘 닫히지 않았다.
그래도 문을 안 닫는 것은 찜찜해서 별 생각없이 힘 주어 문을 닫고 볼일을 보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화장실 문이 안 열리는 거다.
어지간히 힘을 주어 손잡이를 돌려도 문은 꼼짝 하지 않았다.
한동안 애를 써보다가 할 수 없이 문을 쿵쿵 두드렸다.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문이 안 열려요'소리를 쳤다.
'그래요?'
밖에서 힘주어 손잡이를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금방 열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원래 잘 열리지 않는 문이어서 요령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잡아 당기면서 열어보라고
밖에서는 온갖 주문을 했지만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았다.
혹시 내가 안에서 잠근 건가? 몇 번이나 확인을 했지만 아니었다.
문 손잡이가 고장이 나서 헛돌고 있었다.
'손잡이를 아예 분해해야 겠는데? 문짝을 그냥 부숴도 될까? '
여러 아빠들이 모여 의견이 분분했다. 뭘 어떻게 하든 빨리 나가고 싶었다.
열쇠다발이 나오고, 작은 칼이 등장하고, 밖에서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혹시 창으로 나갈 수 있나? 하고 봤더니
창은 일부만 조금 밀어서 환기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나간다 해도 밖은 2층이었다.
옆으로 앞 건물과 이어진 통로가 있었지만 그 역시 닿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 통로로 아이들이 몰려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모.. 뭐 하세요? 이모.. 안 열려요?'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재미난 모양이었다. 처음엔 나도 신기했다.
그렇지만 10분이 넘어가자 재미는 모두 증발해 버렸다.
핸드폰도, 책도 없이 이렇게 좁은 공간안에 갇혀 본 일은 처음이었다.
화장실이라는 곳이 책 들고 들어앉으면 한 시간도 더 있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거야 따끈한 온열 시트가 깔려 있는 우리집 화장실 얘기지, 이렇게 썰렁하고
살풍경한 학교 화장실처럼 볼일만 바로 보고 나가는 곳은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차가운 욕조 가장자리에 엉덩이만 조금 걸터 앉았다.
만약 어른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이렇게 갇히게 되었다면 정말 난리가 났겠지?
애가 안에서 울기라도 하면 밖의 어른들은 정말 안절부절 할 것이다.
당장 문 고치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어떻게든 아빠들이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도
갇힌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인 때문이겠지.
만약 이렇게 사람이 많이 있을 때가 아니라 혼자 학교에 들렀다가 갇히게 되었다면
얼마만에 구조가 되었을까?
이 건물은 길가에서 쑥 들어온 곳에 있고 화장실은 2층 구석에 있어서 어쩌면
한참 걸렸을지도 몰라. 앞집에 주인이 살고 있으니 소리치면 들리겠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에 문을 꼭 닫고 텔레비젼이라도 보고 있다면 내 소리가 안 들릴지도
모른다. 핸드폰도 없는데 만약 그럴 경우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갔다.
물도 있고 볼일을 볼 수 도 있으니 험한 꼴은 안 당하겠지만 저체온증이 올지도 몰라.
마른 수건이 몇 장 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응급구조 프로그램에선 겨드랑이에 양 손을 끼고 몸을 웅크려서 체온 손실을 줄이는 것이
살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있어볼까?
시간은 2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밖에서는 문을 아예 부수고 있는 모양이다. 손잡이는 덜렁거려 밖이 흘깃흘깃
보이는데 걸쇠처럼 문틀에 들어가 있는 쇳덩어리는 빠질 기미가 없다.
아이 키우다보면 이런 일 한번씩 겪을 수 있지.
가만... 나도 우리 아이들 어릴적에 이렇게 갇힌 적이 있던가? 필규는 방에 한 번
갇혀서 열쇠 찾느라 온 집안을 뒤졌던 기억이 있구나.
동서 얘기로는 우리 신랑도 결혼 전에 명절날 온 가족이 강릉 집에 모였다가
어린 조카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이 잠겨 못 나오는 바람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지.
애는 울고 어른들은 우왕좌왕하고, 열쇠 고치는 사람을 부르자는 서방님과
급하니 우선 안방쪽 창문으로 나가 화장실 창으로 들어가겠다는 남편과 시비가 붙어
화가 난 우리 신랑이 그 길로 다시 차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가버렸다는
일화가 있었다는데... 울 신랑, 퍽 다혈질이었구만.
하여간에 다행이다. 애가 아니라 내가 갇혀서..
하긴 아파트를 떠나고 싶었던 것도 늘 애들 손 잡고 엘레베이터 탈 때마다
갑자기 멈추어 그 안에 갇히는 생각에 항상 두려웠기 때문이지.
폐쇄된 좁은 공간에 갇힌다는 상상만해도 숨이 다 막혀온다.
그래도 여긴 하늘도 보이고 막힌 곳이 아니라서 다행인데...
춥구나.. 춥구나..
맨손체조도 해 보았다가.. 이것도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가 생각나 그냥
동그마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엄마 중 한 명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공구를 가져와주십사 한 모양인데
금방 오겠거니 했던 남편은 오지 않았다. 나중엔 문이 안 열리는 것 보다 마누라가 갇혔다는데
금방 달려오지 않는 남편이 더 미웠다.
이 인간이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구만.. 흥, 그러다가 열리겠거니 하는거렸다? 다른 남편들도
많으니 어찌어찌해서 열어 주겠거니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겠지.
흥.. 필규가 갇혔는데 못 나오고 있다면 당장 달려오지않았을까?
이거 점점 남편이 원망스러우면서 애가 더 소중한가, 마누라가 더 소중한가에까지
생각이 미치려는 찰라 벌컥 하며 문이 열렸다. 30여분이 흐른 다음이었다.
허위허위 내려와 난로옆에 털썩 앉았다.
동료 엄마들이 다가와 애썼다며 팔을 주무르는 시늉도 해주고 따끈한 커피도 내 오는데
진짜 걱정하는 표정보다는 우스워죽겠다는 표정들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이 김장은 얼추 다 끝나 있었다.
하기 싫고 귀찮다고 여기긴 했는데 그래서 벌 받았나?
화장실에 30분 갇혀 있을래, 김장 같이 할래 하면 당근 김장 하겠다.
올 김장은 내 화장실 사건까지 곁들여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남기고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화장실에 들어갈때도 핸드폰을 챙겨야 하나를
심각하게 따져보고 있는 중이다.
#1. 요즘 아파트마다 유행하는 플랭카드가 하나 있다.
바로 "축구 금지, 야구 금지"
공놀이하지말라는거다.
아파트내 놀이터에서 되도록이면 얌전히 놀라는 말씀.
축구나 야구를 하려면 팀을 짜서 스포츠센터를 찾아가야한다.
결국 예체능 사교육비로 직결!
햇님군의 경우, 올해 초등학교 입학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하는 축구.
운동장이나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날씨가 흐리면 이렇게 실내에서 운동을 해야한다.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겠다고 일부러 시간을 내고 돈을 내서 무언가를 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틈날때 운동하는게 맞지않을까. 유난을 떨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정말 일년내내 고민했던 것 같다.
이걸 지속해야하는걸까. 그만둬야하는걸까.
지금은 결론을 내렸다.
계속 하기로..
#2.
학교에서 선호하는, 필수 운동은 줄넘기다.
왜그런가 따져봤더니 크게 다칠 일도 없고 공간제약도 적고, 줄넘기 사는 비용을 빼면 비용도 적게 들고, 운동효과도 좋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학교의 줄넘기급수시험때문에 여기저기 음악줄넘기 수업이 생겼다.
어찌 생각하면 줄넘기는 혼자 연습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혼자 연습해도 어찌어찌 안되는 팔푼이같은 아이도 있다.
우리 햇님군같은 귀엽지만 운동엔 소질없는 아이 ^^;
여름방학내내 동네 놀이터에서 학교 선배 누나형들이 코치를 해줬건만 도통 실력이 늘지 않더라.
오히려 잘못된 버릇이 생겼는지 한두번에 걸리고 말아 엄마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다.
결국 가을학기 문화센터 수업 신청.
호랑이같은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더니 50개를 가뿐히 뛰었다.
나는 이제 알겠다. 겪어보지않으면 말하지 말라는 그 말을!
#3.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가?
해가 금방 지고 추운 탓에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기가 쉽지않다.
어둠속에서 딱지치기 몇번 하고 엄마들 손에 붙잡혀 집으로 향하기가 일쑤.
조금 더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나?
놀이터에 어떤 놀이기구가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달라진다.
사진 속 저 곳은 모 공립초의 놀이터다.
일요일에 교회예배를 보고나서 들리는 곳인데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없는 놀이기구가 있다.
아이에게 낯선 운동기구는 구름사다리와 정글짐이다. 평소에 자주 놀지 못했던거라 겁을 엄청 낸다.
겁먹은 아이 모습을 보니 참 답답해졌다.
우리 아이학교, 우리 동네에도 좀더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4.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되 운동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 어디있을까?
10월부터 나와 햇님군은 트렘폴린장을 주2회이상 다니고 있다.
여유있는 날은 1시간씩 뛰지만 보통 30분씩 가볍게 뛰고 온다.
금요일은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평일 저녁땐 거의 없다.
홀로 뛰는 아이를 보니 참 서글펐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에서 뛰놀고 어떻게 뛰놀고 언제 뛰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해야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