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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하루 전 날 울린 노래 BES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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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의 출산휴가,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기 하루 전날 밤, 아기띠를 하고 집 앞에 나갔다.

어둑어둑해진 아파트 단지 안을 돌며 내 품에 안긴, 이제는 14개월이 된 아기의 얼굴을 보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었다.

다음날 어린 아기를 아직 적응도 미처 다 못한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출근을 하면서, 운전대를 잡고 울었다.

그렇게 나를 울렸던 노래 몇 곡을 남긴다.

 

1. The power of love  

 

The sound of your heart beating, Made it clear suddenly
the feeling that I can't go on, Is a light years away

Cause I am your lady And you are my man
Whenever you reach for me I'll do all that I can
We're heading for something, Somewhere I've never been
Sometimes I am frightened But I'm ready to learn
Of the power of love

 

분명 내 남자를 향한 사랑 노래였는데..  아기에게 불러주다 보니 엄마의 마음으로 느껴졌다.

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진단다.

나의 아들, 네가 내게 닿으려 할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게.

우리는 이제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에 가야하지, 하지만 아가, 엄마가 힘 낼게. 사랑한다.

 

2. 섬 집 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고이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이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주기 싫었다.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릴 아기를 생각하면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직 전 날, 나는 이 노래를 불러주고야 말았다.

엄마가 신문사에 일하러 가면, 아기는 어린이집 놀러 갔다가, 선생님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울컥울컥했다.

그리고 복직 뒤, 다 못 쓴 기사 더미를 들고 엄마는 얼마나 강변북로를 달렸던가.

 

3. Run To you

 

I wanna run to you , I wanna run to you
Won't you hold me in your arms And keep me safe from harm
I wanna run to you, But if I come to you
Tell me, will you stay or will you run away

 

마치 아기가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내 옆에 머물러 줄 수 없나요. 운전대를 잡고 수없이 답했다. 아가야, 엄마도 네게 달려가고 싶단다.

 

돌아보면, 복직 전 날만큼 울컥울컥 했던 날도 없는 듯 하다.

출산휴가도 언감생심인 직장도 많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할 땐 

육아휴직까지 1년 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돌쟁이 떼놓고 일 나가기 힘든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나처럼 복직을 앞둔 엄마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났지만 복직 뒤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간절한 그리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 치여, 복직 뒤의 육아기를 남기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에 우선 노래 세 곡 올려봤습니다.^^


 


아이들의 오밤중 침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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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엄마~ 우리 공연할거야. 불 끄고 이제부터 공연 시작합니다. 불 꺼주세요. 친구들~ 오늘 무슨 공연 보러 왔지요?
나: 번개맨!
딸:그래요. 지금부터 여러분의 친구 번개맨이 나와 멋진 춤을 보여줄거예요. 그런데 공연 시작 전에 우리 친구들한테 알려줄 게 있어요. 자~ 따라해보세요~
나: 네~
딸:첫째,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지 않기
나:첫째,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지 않기
딸:둘째, 친구들과 얘기하지 말고 공연에 집중하기
나:둘째, 친구들과 얘기하지 말고 공연에 집중하기
딸:네~ 잘 했어요~ 우리 친구들 잘 할 수 있죠~
나: 네!
딸: 자, 지금부터 공연 시작합니다. 번개맨이 나옵니다. 모두 박수!
나와 이모: (박수를 치며) 번개맨! 번개맨!
아들: 짜잔~~~ 나는 번개맨이다. 흡! 흡!
 
딸과 아들은 요즘 밤마다 침대 위에서 취침 전 공연을 한다. 한동안 취침 전 책읽기를 했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싶다해서 공연을 한다. 다른 아이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번개맨’에 대한 사랑이 확 줄어들던데, 우리 아이들은 교육방송 <모여라 딩동댕>에 나오는 뮤지컬이 아직까지 재밌나보다. 아들은 거의 ‘번개맨’에 빙의가 되어 여전히 번개맨의 역할을 자임하고, 딸은 공연 진행자가 됐다가 발레리나가 됐다 요가 시범가가 되기도 한다. 엄마인 나와 이모님은 청중이 되어 “번개맨! 번개맨!”을 외치고, 공연 진행자인 딸이 청중에게 질문을 하면 답도 한다. 아들은 시디 플레이어를 가지고 와 각종 시디를 번갈아 끼우며 음악 감독 역할도 한다. 침대가 높은데다 아이들이 워낙 열심히 공연을 펼쳐 정말 공연장과 흡사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연을 펼치며 깔깔깔 웃는다. 그저 그 순간을 즐기고,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자기 몸의 느낌을 알아간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공연을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 기획해서 엄마와 이모 앞에서 신이 나서 공연을 선보인다. 공연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다. 아이들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어찌나 신 나고 행복해하는지 나 역시도 동심으로 돌아간다. 진정한 놀이의 모습은 이렇게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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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있어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이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은 그의 저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에서 “놀이는 머리가 좋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느낌이 어떤지 알아야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또 “놀이 속에 있는 모든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다. 놀이라는 것은 대부분 혼자 할 수 없고 함께 한다”라고도 말한다.
 
<그릿><회복탄력성>의 지은이인 김주환 연세대 휴먼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도 아이들이 놀면서 자율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자유 자재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놀이를 통해 자기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의지력과 노력 자체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율성이 있어야 마음 속에 뭔가를 하고 싶은 동기가 부여되고, 동기 부여가 돼야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뚝심도 생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학생도 많고, 취업을 한 뒤에도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려하지 않으려면 아이들 스스로 하는 놀이를 적극 독려해야 할 일이다.
 
밤마다 아이들이 공연을 펼친다고 할 때면 가끔 피곤해서 얼른 불 끄고 잠이나 자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최근 ‘성격 강점’에 대한 취재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뚝심, 호기심, 열정, 낙관적 정서 등 ‘성격 강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욱 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자 하는 욕구를 꺾고 싶지 않다. 다만, 너무 늦게 잠을 자 다음날의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 안되니 공연 시간 규칙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얘들아~ 앞으로도 그렇게 신 나게 놀아라!

엄마가 응원할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사랑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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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송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불변한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생상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고 한다...
...호텔 방에 누워 있으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 밑에 줄을 그을 수 있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밀양행 기차에 올랐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희망버스 일정을 따라 사진을 찍으러 가는 중, 혼자 떠나는 2박 3일의 사진 여행이다. 기차 안에서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그의 섬세한 감성이 짧은 여행에 영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가방에 쑤셔 넣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나의 일정은 이렇다. 오늘 저녁에는 내 글과 사진을 특집으로 실은 ‘밀양 문학’의 출판 기념회가 있고 내일부터 1박 2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오는 ‘희망 버스’의 일정을 따라 사진을 찍을 것이다.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따지고 보면 내가 꼭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무리해서 예약했던 기차를 놓치고 아무 열차나 타게 된 내 속마음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주위의 낯선 세계로부터 은근한 도움을 받는다.마음이 어수선한 요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부터 은근한 도움’을 받고 싶었다. 오후 3시, 권태와 절망이 위협적으로 몰려오는 시간에 늘 어딘가로, 보들레르가 말하는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었다.

 

저자가 그렇듯 기차에 몸을 기대어 앉았고 내 생각은 차창으로 흘러가는 낯선 풍경을 따라간다. 지난밤에 만났던 선배들과의 술자리, 오전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아침에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 그리고 도착지 밀양에서 지난여름에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풍경 속에 두서없이 생각들이 흘러간다. 좁은 통로로 간식거리를 실은 카트가 지나간다. 어릴 때 기차에서 삶은 달걀을 먹고 체한 기억이 선명한 나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옆에 그가 앉았으면 달랐겠지. 뭘 먹을까, 기차를 처음 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앞쪽에서부터 카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두툼한 소시지를 고르며 기뻐했을 그를 떠올린다.

 

생각이 멈춘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어서 떠오르는 엊저녁 선배의 말, “걔는 4차원이잖아. 화성인도 아니야, 안드로메다 어디 아닐까? 그러니까 그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마.” 그래, 안드로메다의 언어까지 내가 이해할 필요는 없잖아, 선배의 말을 되새기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단단한 응어리,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자꾸 치밀어 오른다. 바라본다, 충격, 분노, 원망, 체념, 지난 보름간 겪은 내 감정의 소용돌이. 창밖의 풍경처럼 흘러가도록 놔둔다. 조금은 차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답답한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글을 썼다. 거봐, 누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상처 입는 거야! 왜 내가 아파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생각을 깨고 싶었다. 그러니까 네 잘못이야, 나를 위로해줘. 예상대로 내 감정을 지지하는 댓글들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더욱 자기 연민에 쩔었고 그는 구석에 몰렸다. 내 글을 그렇게 여러 사람이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논평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주인공이 돼 버린 듯한 기분이 불편했다. 내가 옳아, 내 감정이 맞아! 애초의 생각대로라면 승리감에 취할 수도 있었는데 남편을 공격(?)하는 댓글이 보기 싫었다. 그에 대해,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그가, 그리고 우리가 훌륭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게 일구어온 세월이 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산 지 13년, “글쎄 ‘그 인간’이 어젯밤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가 남편을 칭하는 말에 한편으로 깜짝 놀라고 한편으로 그렇게 ‘웬수’ 같지 않은 우리 사이를 다행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아내 흉을 보는 남자들을 보며 ‘왜 저러고 살까’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들 그러면서도 ‘사랑’이라는 말 속에 사는데, 심지어 바람을 피우고 집에 들어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야.’라고 한다는데. 밥상 앞에서 히히덕거리던 그날 아침, 아니 그가 그런 말을 했던 바로 직전의 순간까지, 우리는 꽤 잘 지내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사랑’은 뭐였을까? 그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 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동안은 그에게 따지고 왜 사랑이 아니냐고 화를 냈는데, 그가 한 말을 외계어쯤으로 애써 무시하려고 했는데. 문득 질문의 대상이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이 어둑해진다. 창에 비치는 나를 본다. 내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과연 그를 사랑했을까?

 

그와 결혼할 때 조건을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돈이나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 그것을 믿고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있어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된 것 같다. 꼭 지켜져야 하는 것, 그래서 결혼했으니까. 내 감정이 충족되지 못할 때, 내가 원하는 모습이 돼 있지 않을 때, 내가 믿고 따라온 그 사랑이 아닐까 봐, 두려웠다. 확인하고 싶었고 기대에 어긋나면 슬퍼하고 외면했다. 훨씬 더 좋을 수 있던 일들이 ‘사랑’에 대한 나의 기대 때문에 망쳐지곤 했다. 늘 이유는 있었다, 내가 '더' 아프고 힘드니까. ‘나보다 힘든 상대방을 먼저 헤아리겠습니다.’라고 한 약속을 어긴 것은 내가 아니었나.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던 지난 일들, 난처해하던 그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프다,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리는 것이. 분노와 원망에 휩싸였던 때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나를 마주하는 것이. 하지만, 비로소 혼란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그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하기를 좋아하고 버킷리스트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끊임없이 가야 할 곳을 정해주고 해주기를 바라고 요구하지 않았나. 그래야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하지 않는다,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은 외계어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했던 솔직한 고백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정말 내가 꿈꾸던 것인가, 내가 믿었던 그 사랑에 들어맞는지, 의심하고 따져보느라 그의 마음과 행동을 순수히 받아주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자신 있게 사랑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그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던 것이,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의 마음, 그의 상처를 살뜰히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는 서로가 정말 다르다는 것, 그리고 습관이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이 나는 낯설었고 무심코 한 내 행동에서 그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여행 다닐 때, ‘어디를 가면 좋을까?’하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거의 ‘아무 데나 좋아요.’였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게 미루는 그가 마뜩지 않았고 그는 ‘아무 데나’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게 아쉬웠단다.

어설픈 이해와 존중의 몸짓보다 그 이전에 자신을 더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차이를 아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는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솔직해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몹시 혼란스러운 감정에 허우적거렸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 믿음을 발견했을 때 나를 돌아볼 용기가 생겼다.

지난 글에서 나는 그가 했던 ‘말’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썼다. 하지만, 이제 ‘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것이 서로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우리는 꽤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라는 변명과 오만에 가득 차 있던 나의 사랑을.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
인간은 호텔을 건축하고, 만을 준설하는 등 엄청난 프로젝트들을 이루어내면서도, 기본적인 심리적 매듭 몇 개로 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울화가 치밀 때면 문명의 이점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 (같은 책)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랑’을 내려놓는다.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고 싶다. 우리는 말이 잘 통하고, 함께 가꾸는 텃밭과 집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지켜져야 할’ 무엇에 매달리지 않고 함께 나누는 일상 속에서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기차가 상동역을 지난다. 곧 밀양이다. 나는 사진을 찍으러 간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밀양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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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이야기 나온 김에 찍은 사진들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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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오전, 평밭 마을 초입의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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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오후 희망버스와 함께, 상동면 도곡리 도곡 저수지~110번 송전탑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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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밀양역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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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오전 상동면 도곡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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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낮, 보라마을 고(故)이치우 어르신 논에 세운 상징탑, 걸개그림

초겨울 눈 덮인 단양팔경의 색다른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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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의 이른 아침 풍경. 물길 건너 도담리 주민이 배를 타고 건너오고 있다.



















도담삼봉 넘어 날자 날자꾸나 눈부신 설원 위로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초겨울 눈 덮인 단양팔경의 색다른 정취와 온달산성·두산활공장 설경 전망
도담삼봉·석문·구담봉·옥순봉…, 단양의 여덟 경치(단양팔경)도, 온달 장군 이야기 전해오는 산성도 흰 눈에 덮여 고요하다. 눈 시리게 반짝이는 눈빛에, 차고 맑은 하늘 아래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물길도 한결 깊어져 짙푸르다. 드물게 ‘11월의 큰 눈’이 내렸던 지난주, 볼거리 많은 충북 단양의 산과 들도 눈으로 하얬다. 눈빛에 취한 초겨울 나들이객들은 이미 제철을 만났다.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미끄러운 눈길 헤쳐 산성길을 걷고, 활공장의 상승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설경을 즐긴다. 눈에 씻겨 해맑아진 하늘 아래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 단양의 산길·물길을 만나보고 왔다.

녹음 우거진 여름과 달리 
절제미 내뿜는 겨울 온달산성 
남문 터 부근 고지대 성곽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으뜸이다

고구려 평원왕·영양왕 때의 장군 온달. 평원왕의 딸 평강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로 더 유명한 장군이다.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변의 온달산성은, 한반도 중원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에 온달이 쌓았다는, 그리고 신라군과 격전을 치르던 그가 신라군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둔 곳으로 전해오는 산성이다.

둘레 682m(외벽)의 작은 석성이지만, 우아하게 굽이치는 성곽의 자태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남한강 물줄기와 어우러져 빼어난 전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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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 동문 주변 성곽 모습.
산성은 온달관광지에서 30분쯤 급경사 산길을 오르면 되지만, 미끄러운 눈길을 피하고 초겨울 눈 덮인 산길을 산책할 겸 최가동 쪽으로 차를 몰고 오른 뒤, 아이젠을 착용하고 ‘화전민촌’ 갈림길 지나 산길을 에돌아 산성 북문 쪽으로 걸어 올랐다. 이 산길은 소백산 둘레를 한바퀴 도는 소백산자락길(단양·영주·봉화·영월 12구간 총 142㎞)의 일부이자, 단양군에서 이름붙인 ‘온달·평강 로맨스길’(고드너머재~방터 화전민촌~온달산성~온달관광지~영춘면사무소 13.8㎞ 3시간30분 소요)의 한 구간이다.

겨울 온달산성은 녹음 우거진 여름 풍경과는 또다른, 절제된 매력을 내뿜는다. 가파른 북문 터를 지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곽을 돌아 동문 터로 내려오는 동안, 경사진 산자락에 만들어진 반달형의 산성은 장소와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근사한 눈경치를 펼쳐보였다. 그중에서도 남문 터 부근의 고지대 성곽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으뜸이다. 북문 터에서 남문 터로 둥글게 휘어져 튀어나온 석성과 그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지는 남한강 물줄기의 조화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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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활공장에서 이륙한 패러글라이더.
온달 장군과 고구려 병사들도 이 아득한 남한강 물을 내려다보며 신라군과 맞섰으리라. 성벽의 어느 성돌 하나 화살 안 맞고 피땀 얼룩지지 않은 곳이 있을까. 지나칠 정도로 반듯하게 복원된 성곽 모습이 되레 안쓰럽다.

성 안엔 1960년대까지 우물과 경작지 등이 남아 있었으나 사라지고, 경작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소나무들이 남서쪽 고지대에 숲을 이루고 있다. 가장 낮은 지역인 성곽의 북문·남문 터 사이 성벽 밑에선 배수구로 추정되는 구멍이 나 있다. 성곽길 한바퀴 도는 데 20여분. 한겨울 눈 덮인 옛 석성의 매력을 감상하기 위해선 두꺼운 방한복과 스패츠·아이젠 등 겨울 산행장비 준비가 필수다. 폭설 땐 산성 탐방을 제한한다.

온달산성 들머리 온달관광지에 있는 평강 공주가 사랑하는 남편 바보 온달을 어떻게 맹장으로 키워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 온달관과, 온달이 무술을 연마했다고 전해오는 석회암 동굴 온달동굴(천연기념물 261호)에 들러볼 만하다. 온달동굴(영춘 남굴)은 고생대 석회암층에 10만년 전쯤 형성된 석회동굴로 다양한 모양의 종류석·석순 등이 장관을 이뤄, 주변의 고수동굴·천동동굴 등과 함께 관광 인파가 몰려드는 천연동굴이다. 온달·평강 로맨스길에 있는 화전민촌은 옛 화전민의 주거지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봄~가을에만 숙박체험 시설로 운영한다.

탁 트인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또다른 곳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사철 몸을 날리는 활공장(이륙장)이다. 단양엔 양방산(664m)과 두산(700m) 2곳에, 단양읍내와 주변 산줄기들을 발아래 두고 날아다닐 수 있는 활공장이 있다. 두 곳 모두 차량으로 오를 수 있지만, 산길이 가팔라 폭설 땐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단양읍내 전망이 빼어난 양방산 산길은 눈으로 길이 통제돼, 두산마을(해발 550m 지점)에 차를 두고 20분이면 걸어오를 수 있는 두산활공장으로 향했다. 두산은 가곡면 사평2리 두산마을의 뒷산이다.

희끗희끗 눈 덮인 산줄기들과 산자락을 안고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물길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두산 활공장엔 영하의 날씨 속에 수시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30대 여성이 “평소 꼭 한번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다”며 체험비행(탠덤비행)에 나섰다. 두산활공장 운영자 장선영씨는 “폭설, 강풍 때가 아니면 한겨울에도 이륙이 가능하다”며 “설원을 굽어보며 하늘을 난다는 매력 때문에 겨울에도 체험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맞바람을 타고, 여성 체험자의 오랜 꿈이 활짝 펼쳐지며 이륙에 성공한 패러글라이더가 푸른 하늘과 눈 쌓인 산줄기들을 넘나들며 하강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다시 등산화끈을 조여매고 두산 정상으로 향했다. 30분쯤 눈 덮인 산길을 오르자, 탁 트인 눈밭 너머로 줄달음치는 산줄기가 거대한 장벽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해발 700m의 두산이 소백산 발치의 한 작은 봉우리 중 하나라는 게 뚜렷이 느껴진다. 왼쪽(북동쪽) 멀리서부터 형제봉(1178m)과 신선봉(1420m), 국망봉(1421m),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m), 연화봉(1394m)과 소백산천문대, 제2연화봉(1357m) 등 눈 덮인 소백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두산 정상은 두산활공장의 보조 이륙장으로 쓰인다. 패러글라이딩은 맞바람을 받아야 이륙할 수 있는데, 주 이륙장과 보조 이륙장의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장쾌한 산 전망을 즐긴 뒤엔 남한강 물길을 따라 차를 몰며 단양팔경(도담삼봉·석문·구담봉·옥순봉·사인암·하선암·중선암·상선암) 등 경치와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만하다. 과거 단양읍이 자리했던 단성면에서부터 현재 단양읍내 지나 영춘면까지, 상·중·하선암, 단양향교와 신라적성비, 수양개 선사유적지, 도담삼봉, 석문 등 볼거리들이 깔려 있다.


물길 가운데 솟은 세 봉우리 도담삼봉은 해 뜰 무렵의 경치가 특히 아름다워 새벽부터 사진가들이 물가로 몰려든다.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300m 떨어진 강변 절벽엔 거대한 문처럼 구멍이 뚫린 석문이 있다. 석회암 용식 지형으로, 무지개 모양의 돌문에 남한강 푸른 물길이 그림처럼 담겨 있다.

이밖에 단양읍내에 있는 국내 최대의 민물고기 전시관인 다누리 아쿠아리움과 읍내 전통시장인 구경시장(1, 6일장)도 여행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다.

단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단양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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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수도권~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안동 방향~북단양나들목~5번 국도~단양읍내. 영춘면 온달산성은 읍내에서 59번 국도 타고 가다 군간교 건너서 우회전 522번 지방도 이용해 영춘교 건너 우회전해 온달관광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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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곳 단양읍 상진리의 성원마늘약선요리(043-421-8777) 정식 1만5000원, 평일 점심특선 1만원. 단양읍 상진리 다원(043-423-8050) 마늘떡갈비(사진) 1인 1만3000원. 단양읍 도전리 경주식당(043-423-4367) 복매운탕 1인 8000원, 다슬기국 7000원. 단양읍 별곡리 멍석갈비(043-423-5171) 동태우거지찜 1만5000원(2인분), 갈비살 200g 3만원.

묵을 곳 단양읍내에 그리다모텔(043-421-4120, 평일 5만원) 등 모텔과 단양관광호텔(043-423-7070, 베니키아 체인점, 평일 2인 기준 6만9000원부터), 그리고 대명리조트(043-420-8311)가 있다.

문의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2555, 단양군관광안내소 (043)422-1146, 충주호유람선(장회나루) (043)422-1188.

(*한겨레신문 2013년 12월 5일)

젖 시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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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 수유 46일 차

젖 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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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주고 나서 트림을 시키려고

바다 등을 아무리 두드리고 쓸어내려도 트림을 안 해서

괜찮나보다 하고 내려놓으면

방금 먹은 젖의 많은 양을 토해냈다. 계속 그랬다.

젖을 주면서도

이따가 또 트림을 안 하면 어쩌지? 아, 트림 어쩌지?’

하고 젖 먹이는 내내 트림 걱정을 하느라 바다 얼굴이 눈에 안 들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빠 품에서는 금방 트림을 "꺼억~"해서

젖을 주고 나면 애타게 남편을 찾아 트림을 부탁했는데

고마우면서도 '나는 왜 안 될까?'하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 '결국 나오겠지.'하고

무심히 등을 툭툭 두드리니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시원한 트림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도 다시 듣고 싶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기분 좋은 바다의 트림 소리다.

 

 

 

모유 수유 50일 차

젖 시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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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짜놓은 젖을 아는 사람들을 불러서 먹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오빠에게 오빠도 먹을거야?” 하고 물으니

나 많이 먹어야 되. 어렸을 때 젖 못 먹어서.”하길래

맥주잔으로 가득 따라주니 원샷을 했다.

우리 집 냉동실에 얼린 젖이 영역을 넓히며 쌓이고 있어서

'버리기는 아깝고 누가 가져가서 먹으면 좋겠는데.'하는 참에 꾼 꿈이다. 

생각해보니 젖으로 상징되는 엄마의 사랑 또는 영혼의 양식이

아기만큼 절실한 다 큰 어른들이 있다.

젖을 나눠먹어서라도 채울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들 중 한 명이 나다. 

 

 

2012년생 기대수명, 여아 85살·남아 78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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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생명표…10년새 4.4년↑

지난해 태어난 아기의 기대수명은 81.4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84.6살, 남성은 77.9살로 여성 쪽이 6.7년 더 길었다.

통계청이 5일 공개한 ‘2012년 생명표’를 보면, 2012년에 태어난 아기는 평균 81.4년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77살과 비교해 10년 새 기대수명이 4.4년 늘었다.

성별에 따라서는 남성의 기대수명이 10년 동안 4.6년 늘었고, 같은 기간 여성은 4.2년 늘었다. 양성간 기대수명 차이는 다소 줄어든 셈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20살인 남성은 평균 58.4년, 여성은 65.1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40살인 경우에는 남성 39.2년, 여성 45.5년, 60살인 경우는 남성 21.5년, 여자 26.6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기대수명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질환을 겪는 기간을 뺀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2년 출생아를 기준으로 보면, 남성은 65.2년, 여성은 66.7년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독보적인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제거하면 남성은 4.7년, 여성은 2.7년 기대수명이 늘어났다. 암에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평균 수명이 크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회원국 평균보다 0.6년 길었으나 순위로는 20위를 차지했고, 여성은 1.9년 더 높아 6위로 나타났다. 양성간 기대수명 차이도 높은 편이어서, 전체 평균 5.5년을 1.2년 웃도는 6위로 조사됐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착한 아이 콤플렉스, 속으로 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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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_1.jpg» 한겨레 자료 사진.


먼저 다음의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아동을 평가해 보세요.
1.  부정적인 감정 표현(싫음, 거절, 분노, 적개심 등)을 잘 못한다.
2.  싫어도 좋다고 하는 등의 거짓 감정을 말한다.
3.  항상 억압하다 보니 두통, 복통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4.  부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다.
5.  자기주장 능력이 부족하다.
6.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다.
7.  항상 자신감이 없다.
(손석한 선생님의 책 ‘지금 내 아이에게 해야 할 80가지 질문’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리스트에서 3개 이상 항목에 해당한다면 아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독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제 클리닉에 오는 중학교 다니는 여학생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순하고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라서 부모의 손이 별로 필요치 않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동생이 있는 맏이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모두 맞벌이로 바쁜 가운데 스스로 알아서 밥도 챙겨먹고 동생도 챙기는 ‘또순이’였다고 합니다. 초교 저학년까지 아이는 받아쓰기도 100점 맞는 등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문제는 초교 5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옷도 꾀죄죄하게 입고 다니고 수줍어하는 이 아이를 몇 몇 아이들이 따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부모가  바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마음에 큰 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에 흥미도 잃고 자존감도 내려가고, 마침내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열정도 서서히 사그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6학년 무렵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받아주고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되어 아이는 점점 더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무섭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아이는 더 집에 있는 것이 싫어지고 밖으로만 돌게 되었습니다. 클리닉에서의 면담에서 아이는 ‘자신이 나쁜 아이라서 왕따를 당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요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되는대로 재미있게 살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성품인 기질을 잘 이해하는 것이 육아에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저는 이제까지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로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온순한 기질’의 아이들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려 합니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이란 대표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해서 산만한 아이들, 예민하고 소심한 겁 많은 아이들, 그리고 고집 세고 반항적인 아이들과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대략 3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요? 산만하지 않고 차분한 기질과 너무 예민하지 않은 기질을 가지며, 사회성도 좋아서 부모 말을 잘 듣는 경우가 제일 키우기 쉽겠네요. 이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신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기질의 아이를 갖게 된 것은 부모의 노력(다른 말로 유전)도 있지만, 부모에게는 커다란 ‘우연의 선물’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주의할 점이 없을까요?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쉽겠지만 여기에도 나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학교나 집에서 선생님이나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는지 정기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먼저 말씀드린 제 클리닉의 아이처럼, 아이가 어려서 스스로 알아서 잘 하게 되면, 부모는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점차 아이를 실제적으로 ‘방임’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도 자기주장을 잘 못하고 속으로 삭이게 되는 경우도 있겠고요. 부모가 바쁘더라도 아이에 대한 관심과 관찰은 적당한 정도로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정기적으로 아이의 기분이나 학교생활을 물어봐주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려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착하다고 해서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싫다’, ‘화난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고 무턱대고 막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은 자기주장을 솔직하게 하거나 반항을 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온순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신’을 부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은 소위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간혹 ‘온순한 기질’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야단치거나, 자기주장을 잘 하라고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감’은 부모의 잔소리나 권유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성공 경험과 자신의 감정 및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 내면의 자신감은 누가 뭐라 해도 튼튼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물론 ‘자기주장’을 적절히 잘 할 수 있도록 아이와 상의하고 조언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래와 적절하게 타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며, 너무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동의 기질이란 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무조건 좋은 기질, 무조건 나쁜 기질이란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겐 꽃보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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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그동안 유치원 적응을 유난히 힘겨워 했다.

작년 1년은 담임 선생님이 좀 엄해서 무서웠는지 아침마다 안 간다며 울고불고 -

올해는 친절하고 다정한 담임 선생님 덕에 처음엔 엄청 좋아하더니,

이것도 얼마 안 가 5,6월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정말이지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담임과 의논을 해 봐도 유치원에서는 별 일없이 잘 놀며 지낸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단 1초도 심심한 걸 못 참는 둘째와 날마다 하루종일 같이 지낸다는 건,

나의 모성애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임을 알기에 -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하루도 빠짐없이 유치원에 보냈다.


그런 1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지나, 2학기가 되면서 아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아침에 등원할 때면, 먼저 유치원에 도착한 친구들이 아들의 이름을 마구마구 부르며

반겨주고, 오후에 데리러 갈 때면 몇몇 친구들과 뒤엉켜 너무 신나게 놀고 있곤 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니, 늘 몰려다니며 노는 남자 아이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 친구들과 너무 신나게 놀며 원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한다.

매일 아침, 자전거에 태워 유치원 앞에 도착할 때면 아들은 요즘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많이많이 놀아야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치원 마당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대문 근처로 몰려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빨리 놀자고, 얼른 들어오라고 야단이다.

엄마에게 "다녀오겠습니다!"인사를 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5살 아들 주변을

몇몇 남자아이들이 에워싸며 끌어안고 장난치고 .. 그 사이에서 아들은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아...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적응을 하긴 하는구나..

아이들에겐 정말 친구라는 존재가 참 크구나 .. 둘째를 키우면서 다시한번 절감하게 된다.


아들의 절친 중에 우리집에서 가까이 사는 친구가 있어

요즘은 그 아이와 유치원이 끝난 뒤에도 집을 돌아가며 노느라 더욱 신이 났다.

나와 아이의 친구 엄마와도 의견이 잘 맞아

아들 뿐 아니라 나도 새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우리 아이보다 생일이 반 년은 빠른 이 친구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지만,

4형제 중에 막내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에 대한 감이

기가 막히게 뛰어나다. 그래서 가끔 고집불통에 철부지같은 우리 아들과 놀 때도

둘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잘 해결해가며 위기들을 참 슬기롭게 넘기곤 한다.

아이들이 크게 안 싸우고 자기네들끼리 잘 놀아주니, 엄마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

서로의 집을 오가며 경험하는,

각각의 가족 분위기나 일상문화에도 아이들은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

위로 3명이나 형제가 있는 친구네 집에 아들이 놀러갔다 오는 날은,

항상 그 집의 누나나 형이 함께 놀아준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려준다.

나 역시, 나와 동갑 나이임에도

아이 넷을 씩씩하게 키우고 있는 왕선배 엄마에게 배우는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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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덕에 유치원 적응이 수월해진 아들 못지않게,

올 한해 딸아이가 어느 때보다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친구 때문이다.

4학년이란 나이답게, 여럿이서 우르르 모여노는 것보다

딸아이는 이제 자기만의 절친과 단둘이, 깊이있는 우정을 나누는 걸 즐긴다.

학년 초부터 한 친구와 눈이 맞았는지, 학교 돌아와서 풀어놓는 수다보따리의 대부분은

그 친구 이야기였다.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 책, 취미, 교과, 놀이, 옷 색깔 등등

'엄마 걔는 있잖아,,  거북이랑 열대어를 키운대, 살찐다고 고기는 잘 안먹는대,

우리반 남자애들 중에 00를 너무 좋아하는데, 밤마다 꿈에 걔가 나온다네 글쎄 ㅋㅋㅋ...'


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알콩달콩 우정을 키워가다가

2학기부터는 드디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노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를 일찍 마치는 수요일마다, 서로의 집을 번갈아가면서 모여 숙제도 같이 하고

간식도 먹고 그 집에서 키우는 동물 구경도 하면서(두 아이의 공통점은 동물을 사랑한다는 점)

짧기만 한 2시간을 불태우며(?) 정열적으로 논다.

아이들이 친한 덕분에, 친구의 엄마와도 인사를 하게 되었고, 가끔 차 한잔 하며

4학년 여자 아이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수다를 나누며 듣는 이야기와 정보는 무궁무진했다.

머지않아 찾아올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첫 생리를 앞두고 겪는

딸 가진 엄마들만의 설레임과 긴장, 불안을 서로 털어놓을 때는

뭔가 알 수 없는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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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친구를 통해, 올해 새로 사귄 두 엄마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즐거운 여행이야기와 함께 선물이라며 '파인애플 케잌'한 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대만에 가 본 적은 없지만, 파인애플 과자가 맛있다는 소문을 예전부터 듣고있던 터라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사람에게 받게 되다니!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친구라는 존재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또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보이는 눈빛과 표정이 얼마나 생기있고 빛나는지,
친구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기분이 좋아 흥분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어쩌면, 어른인 나도 가족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힐링과 공감을
엄마 친구들을 통해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목까지 찼다가도, 마음맞는 엄마와 한 두시간 수다를 실컷 떠는
것만으로도 뭔가 속이 후련하고 가슴 속 응어리가 씻겨내려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릴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뒤에 맺게 되는 친구관계가
늘 그리 달콤함만 있는 건 아니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기도 하고,
사소한 오해로 오랫동안 소중히 관계를 가꿔온 친구와 서서히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여자들의 관계와 세계는 그만큼 뭔가 디테일하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때론 사랑보다 우정이 더 아프다는 걸,
나도 이 나이되도록 수도 없이 끙끙 앓으며 겪어왔다.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앞으로 자주 겪으며 자라날 텐데..
특히 마음이 여린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사춘기에 겪을 동성과의 눈에 보이지않는 신경전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기가 센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자주 했던 아이라
공부보다 친구관계가 더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그래도 그런 아픔마저도 많이 겪고 부딪히며 자라길 바란다.
많은 친구를 경험해봐야 정말 좋은 친구, 내게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게 되고
사람의 '진심'을 얻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게 될 테니까.
아들 친구의 엄마는, 네 아이 중 첫째인 딸이 요즘 한참 친구관계로 고민하는 중학생인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엄마도 '진짜 친구'라는 느낌이 드는 친구를 고등학교 때 가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어.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거야. 너도 언젠가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거고, 그땐 정말 그 친구를 소중히 하고 너도 그 얘한테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해."

그 얘길 듣고 나니, 나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엄마 말을 듣고 나니
지금 당장 없다고 해서 그리 조바심낼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와 잘 맞는 친구와 만나게 될 때까지, 좀 다르지만 다양한 친구들을 두루 겪으면서
아이들이 세상 경험을 쌓는 기회로 여기며 천천히 기다려도 좋을 것 같다.

올해 만나 친해진, 두 아이들의 친구와도
내년에 반이 바뀌고 나면 언제 친했냐는 듯이 자연히 멀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이 한때를 행복하게, 찬란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지고 멀어지는 걸 걱정하기 보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리고 나누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점점 더 깊어가는 요즘,
집안에 있어도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손을
따뜻한 차 한잔으로 데우며, 아이들의 친구 엄마에게서 받은 파인애플 케잌 하나를
먹어본다. <꽃보다 누나>들의 크로아티아 여행이 너무너무 부러운 나는,
파인애플 케잌 맛으로나마 대만을 여행하고 있다.
어쨌든, 이것도 다 "친구"덕분 아닐까.

때론 우정이 사랑보다 아플 수 있다해도, 삶에 대해 함께 배우고 나누며
마음과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앞으로도 많이많이 만나고 싶다.
올 한해, 베이비트리를 통해 만난 새 친구들이 너무 많아
그것만으로도 2013년은 감사하고 행복하다.^^

책에 빠지도록 만드는 프로이슬러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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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왕도둑 호첸플로츠 1~3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프란츠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
비룡소 펴냄(1998)

어쩌다 우리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이렇게 책이 많은 집은 처음 봤어요!” 하며 감탄한다. 연이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겠어요”나 “공부도 잘하겠어요” 같은 추측과 질문이 섞인 말을 쏟아낸다. 간절한 눈빛의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모호한 대답을 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기는 하죠!”

혹 아이가 책 읽기를 힘들어하고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건 집에 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책을 만난 경험이 없어서일 확률이 높다. 이럴 경우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안겨줘야 한다. 공부에 도움만 되는 책은 독서와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책도 읽을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고양이 학교>나 <왕도둑 호첸플로츠>같이 재미나는 동화를 권해보길 바란다.

<왕도둑 호첸플로츠>를 쓴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는 두번이나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동화 작가에게 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읽어보자는 게 아니다. 작품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권의 동화를 남겼지만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왕도둑 호첸플로츠>다.

유명한 도둑 호첸플로츠가 카스페를의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받은 커피콩 가는 기계를 훔쳐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스페를과 친구인 제펠은 힘을 모아 호첸플로츠를 잡고 커피 콩 가는 기계를 되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왕도둑인데 아이들 손에 호락호락 잡힐 리 없다. 도둑이 숨은 동굴까지 갔는데 그만 잡히고 말았다. 제펠은 사슬에 묶여 도둑의 장화를 닦는 신세가 되었고, 카스페를은 사악한 마법사 페트로질리우스 츠바켈만에게 코담배 한 자루에 머슴으로 팔려간다. 물론 이게 끝이면 프로이슬러가 아니다. 도둑의 소굴을 찾아갈 때 실은 변장을 하려고 카스페를과 제펠은 서로 모자를 바꾸어 썼는데, 호첸플로츠는 변장한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카스페를을 제펠로, 제펠을 카스페를로 착각하고 만다. 제펠의 모자를 쓴 카스페를이 마녀의 지하실에서 마법에 걸려 두꺼비로 변한 요정을 만나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카고 전개된다.

동화책을 덮는 순간, ‘모자를 바꾸어 쓴다’는 대단치 않은 설정으로 이렇게 많은 사건을 만들어 내다니 프로이슬러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스포일러가 될 터라 모자 이야기를 더 들려주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해주길).

프로이슬러는 동네 이야기꾼으로 불렸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책은 내 인생의 그 어떤 책보다 가장 중요했다”고 회고하곤 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마법에 걸려 두꺼비로 변한 요정, 마법의 반지 같은 판타지가 술술 흘러나온다. 물론 옛이야기 그대로는 아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드는 장치로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이를 통한 반전이 감칠맛 난다.

프로이슬러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러므로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지는 오직 프로이슬러만이 알 뿐이다. 이런 대결을 경험한 아이라면 머지않아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12월 9일 새 그림책]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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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코끼리가 사랑을 물었다. “강해지는 느낌”이라는 생쥐, “괴로움을 잊게 된다”는 백설공주와 달리 이런 질문 자체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개미를 보며 삶의 가치를 고민해볼 수 있다. 초등 1학년부터.

20131209_1.jpg 린 판덴베르흐 글, 카티예 페르메이레 그림, 지명숙 옮김/고래이야기·1만3000원.

궁금쟁이 김 선비 옛 그림에 쏙 빠졌네!
호기심 많은 성격 때문에 매번 과거 시험에 지각을 하는 김 선비가 또다시 한양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 만난 조선시대 일상을 김홍도의 풍속화로 포착했다. 동화 ‘궁금쟁이 김 선비’ 시리즈의 첫 책이다. 초등 3~4학년.

20131209_2.jpg 박승주 글, 백명식 그림/개암나무·1만1000원. 

이야기 전성시대
방학을 맞아 시골에 놀러 온 손주들을 위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의 분위기를 살려 생태주의 작가 이상권씨가 <이야기 전성시대>와 <귀신 전성시대>를 동시에 펴냈다. 이웃들의 이야기부터 동네에 떠도는 전설, 귀신들의 가지각색 사연 등이 빼곡하다. 초등 3학년부터.

20131209_3.jpg 이광익 그림/문학동네·9800원.


유아국악교육지도자 양성과정(고용보험환급과정)

아빠보다 남자친구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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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제주 동쪽지역의 햇당근을 보러 갔다 잠시 가시리 조랑말공원을 들렀다.

함께 놀던 유담이네가 말을 못탔다고 하여 커피한잔 마실 겸 다시 공원을 찾았다.

아빠는 밭에서 금방 캐온 햇당근을 시식 및 평가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마음카페에 들어선 뽀뇨는 이내 뛰어놀기 시작한다.

 

다른 카페들보다 내부 공간이 넓고 말을 테마로 해서 그런지 유난히 뛰고 장난을 치는 뽀뇨,

결국엔 나무로 된 말 장식품을 떨어뜨려 깨고 말았다.

관장님께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져야지” 훈계를 들으며 열심히 목공풀로 수리를 하는데

정작 말 장식을 부순 뽀뇨는 영문도 모르는 유담이를 앞세우곤 “내가 안했어요”라며 딴청을 피운다.

 

‘이제 내가 아는 뽀뇨는 더 이상 애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유담이네와 함께 공원옥상에서 달리는데 얼굴이 빨개지도록 ‘나 잡아봐라’식으로 뛰다가

시멘트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한손에 과자를 잡고 있어서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엎어 지다보니 그대로 찰과상을 입은 뽀뇨.

손등이 아파 눈물을 찔끔거리며 우는데 남자친구 유담이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 외로 금방 그치고 만다.

손도 다쳤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하니 이번엔 유담이가 “뽀뇨랑 놀래. 집에 안갈래”하며 대성통곡을 한다.

유담이에게 “뽀뇨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해서. 유담아, 다음에 봐”라고 돌아섰지만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시크한 뽀뇨는 친구 유담이가 울건 말건 “아빠 나 병원에서 주사 안 맞을래”만 연발,

‘둘이 딱 4살 나이에 맞는 친구사이구나’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밤중에 뽀뇨를 재운 아내가 내게 웃으며 뽀뇨이야기를 했다.

 

“뽀뇨가 유담이를 진짜 좋아하나봐요. 어린이집 친구 몽땅 보다 유담이를 좋아한데요”,

“잉? 언제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뽀뇨가 잠들기전에 그렇게 얘길하지 뭐에요. 나이가 어리지만 남자를 아나봐요. 뽀뇨가”

 

딸아이가 커서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할 거라는 것은 어떤 아빠든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4살 아이에게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다.

그래서 다음날 뽀뇨에게 물어보았다.

 

“뽀뇨, 어린이집 친구 몽땅보다 유담이가 좋아요?”,

“네, 유담이가 좋아요”.

 

아내 이야기가 사실이었구나 하며 재차 물어보았다.

 

“뽀뇨, 유담이 어디가 좋아요?”하니 “학교가 좋아요”라고 답한다.

‘아.. 아직 희망이 있다’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뽀뇨, 유담이가 좋아요? 어린이집 민건이가 좋아요?”, “유담이가 좋아요”. ‘아, 이건 아닌데’하며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뽀뇨, 유담이가 좋아요? 뽀뇨랑 자주보는 은수가 좋아요”.

 

한참을 생각하는 뽀뇨는 손가락 두 개로 브이자를 그리더니

 

“(한쪽 손가락을 가리키며)이게 유담이, (다른 쪽 손가락을 가리키며)이게 은수.. 유담이랑 은수가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래. 아직까지 아빠에게 희망이 있구나’하는 아빠에게 오늘 아침 뽀뇨는 큰 웃음을 주었다.

아침부터 어린이집에 안 갈려고 땡깡을 부리던 뽀뇨에게 아내가

“뽀뇨,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에게 다친 거 보여줘야지”했더니 바로 신발 신고 출발,

 봉고차에 타자마자 “선생님, 나 여기 넘어져서 다쳤어요”하며 밴드를 보여줬다고..

 

 뽀뇨, 초등학교 가기 전까진 아빠랑만 놀기, 알았지?

 

<뽀뇨 많이 컸죠?>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뽀뇨의 '어른들을 위한 노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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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만에 김장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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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와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에 김장 체험을 떠났다. 그리고 겨우, 2시간 만에 김장 40킬로그램을 완성했다. 보통, 준비부터 완성까지 3일 정도 걸렸었다. 초간단, 초스피드로 김장을 마쳤다. 아내는 세상을 모두 얻은 듯, 환한 얼굴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250킬로미터를 운전한 남편은 파김치가 되었다.

 

10월이 되면 아내의 마음은 늘 무겁다. 김장이 다가 오기 때문이다. 올해도 여느 해와 같이 김장 걱정을 한다. 먼저 고춧가루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친정 어머니와 처재와 함께 괴산에 가서 태양초 고추를 구입했다. 전 날, 그런 아내에게 10만원을 보너스로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11월이 접어들면서 김장을 하는 듯 보였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김장을 해야겠지만 선뜻, 일정을 잡지 못한다. 얼핏 보면, 김장을 할 때, 친정어머니와 처제, 그리고 딸도 있기에 별로 쉽지 않을 듯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11월 하순, 아내에게 김장 체험을 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요즘 뜨고 있는 이영돈 피디의 X파일에서 정보를 얻었다. 아내는 여러 곳에 통화를 한 끝에 양평으로 일정을 잡았다. 또한 만사를 제쳐두고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아내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보너스로 10만원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마음의 빛을 청산해야 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아내와 오전 8시에 김장을 하러 떠났다. 용인에서 양평까지 가까운 거리인 듯 하지만 1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아침은 일부러 이천휴게소에서 먹었다. 국도 주변의 식당은 좀 썰렁하기 때문이다. 용인의 기온은 6도인데 그 근처에 가니 기온은 1도로 곤두박질했다. 또한 길이 얼마나 험한지 옛 강원도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는 구절양장으로 가파르며 체험 장소는 산골 동네로 해발 400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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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체험 장소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아담하고 동네 분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곳은 25년간 분교였으며 180명을 졸업시켰단다. 그리고 지금은 폐교가 되어 김장 체험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6년 전부터 동네에서는 가을이 되면 김장체험을 하고 있었기에 이장, 사무장을 비롯하여 동네 아주머니들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배추는 이미 전날 다듬고 절여서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무도 깨끗하게 있다. 또한 각종 채소 등도 준비되었다. 김장은 커다른 플라스틱 통에 채칼로 썰은 무를 왕창 넣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고춧가루와 액젓, 소금, 파 등을 대량으로 넣었다. 그리곤 나이든 사무장이 힘찬 손놀림으로 버무린다. 그러자 이내 맛있는 양념 속으로 변했다. 자, 이제 참가자들은 김장을 담그면 된다. 이미 사전에 예약된 양 만큼 배추와 속을 가져와서 버무리기 시작했다. 함께 하자는 아내의 채근에 마주보며 김장 속을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초 만에 아내의 잔소리가 서 너 번이 날아온다. 그동안 거의 해본 적이 없기에 난감했다. 그래서 결국 강퇴를 당하고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아내가 배추를 통에 채우면 차에 실었다. 비닐하우스 속은 좀 쌀쌀했지만 시골풍경은 넉넉했다. 화로를 만들어서 밤과 고구마를 올려놓았다. 더구나 막걸리는 따뜻하게 데워지고있다. 누구나 먹으라는 인심이다. 2시간 만에 김장을 마치고 식당으로 변한 교실에 들어갔다. 이미 동네 아주머니들이 식사준비를 끝낸 것이다. 점심메뉴는 시골밥상으로 돼지고기 수육과 김장 속, 그리고 시원한 배추국이 준비되었다. 점심을 먹고 2시쯤, 집으로 출발했다.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 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김치를 주 반찬으로 살아온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런 일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김장을 담그는 집이 점점 줄고 있으며, 그 양도 소량으로 변하고 있다.  사실, 김장문화도 소득의 증가와 산업의 변화와 함께 아내에게 많은 부담으로 다가가고 있다. 먼저 체력적인 면이다. 사실, 한 세대 전에는 노동의 측면에서 김장을 담그는 것보다 논이나 밭에서의 일이 더욱 고된 시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맞벌이가 대세다. 서로가 바쁘다. 그리고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을 더욱 많이 한다. 주말은 아내와 남편이 재충전을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김장을 하려면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 더구나 김장에 익숙하지 않으며 도와줄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김장은 해야겠지만 김장을 하려고 생각을 하는 자체로 부담감이 밀려온다.  다음은 김장 재료의 구입문제다. 이젠, 재료를 믿고 사기가 어렵다. 농업사회에서는 밭에서 직접 배추와 무를 키우고, 김장을 하였으며, 동네 이웃들이 상부상조를 하는 동네의 작은 축제였다. 그리고 김장을 담그는 재료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배추와 무는 물론 고추, 마늘, 파, 야채 등도 거의 자급자곡을 했다. 그러므로 김장 날만 잡으면 쉽게 마무리를 했다.

 

요즘 이영돈 피디의 먹거리 파일에서 연일 음식에 대하여 방송을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재료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져간다. 이제, 김장을 하기 위하여 쉽게 재료를 사기가 어렵다. 중국산 소금을 국내산으로 포대갈이를 하여 판매를 하거나, 제주도 옥돔 명인 조차도 원산지를 위반하여 구속되었다. 배추도 유명한 산지의 것이라고 해도 쉽게 믿기 어렵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대형 마트에서 모두 태양초라고 고추를 팔지만 믿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내는 그 고추를 사기 위해서 괴산까지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좋은 재료를 사용하려는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이다. 그런데 김장을 하려면 고추만이 아니다. 소금이나 액젓 등 각종 재료도 좋은 것을 사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배추와 무를 비롯하여 수많은 재료를 구입하기 위하여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발품과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김장도 하기 전에 이미 진이 빠지며 심리적인 공황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김치를 사다 먹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그래서 아내들은 가을이 되면 김장 소리에 긴장한다. 이미 진퇴양난이요,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의 변화에서 IT의 변화만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니다 가족 문화도 동일한 속도로 변했다. 또한 김장문화도 같은 속도로 변했음을 알아야 한다. 여반장(如反掌)!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쉽다는 말이다. 이제 김장도 쉽고 즐겁게 해보자. 김장 체험을 떠나보자. 재료도 믿을 만 하며 내가 직접 만들기에 더욱 신뢰와 애착이 간다.

 

김장을 마치고 석산리에서 출발하자 높고 낮은 미로의 길이 이어진다. 아내는 미시령을 떠올린다. 이어서 홍천강을 끼고 달리자 강이 멋있다며 보라고 채근한다. 그러나 어제부터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로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하늘이 멋있고, 풍경이 멋있다고 한다.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이 온통 천국처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시스템으로 10여 가족이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소비 권하는 사회,카드와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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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결혼 11년간 세 아이 낳아 키우는 동안

우린 큰 고비가 별로 없었다.

남편은 워낙 알뜰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엄한데 돈 쓰는 일이 없었고

나는 세 아이를 집에서 낳아 젖 먹이고 천 기저귀 쓰며 키우는 동안 애 키우는데

큰 돈 들인 일이 없었다. 장난감이며 책이며 옷이며 하다못해 신발과

속옷까지 죄다 물려입히거나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구해다 입혀가며 키웠고

세 아이 모두 입학 전 사교육은 커녕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더니

정말 남편 혼자 벌어도 아이 셋 키우고 저축까지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작은 집 한칸도 장만 했고, 아이들 이름으로 적금까지 알뜰하게 부어가며

언젠가는 아이들과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리라는 꿈도 품기 시작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많이 어려워진 것이다.

남편은 개인사업을 하다가 직장에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정년까진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이젠 정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막내 나이 이제 겨우 네살, 열한 살 첫째도, 일곱 살 둘째도 아직은 너무 어린데

남편은 쉰이 머지 않았으니 만약 갑자기 남편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내색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고 남편이나 나나 어떤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긴 하지만 살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하루 하루

돈 나가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늘 카드빚으로 뭉텅 빠져나가는 남편의 급여를 보면 가슴을 치면서도 다시

카드를 꺼내드는 어리석은 일상을 살아온 내 지난날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당장 눈 앞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카드의 가장 큰 함정이다.

계획에 없다가도 카드만 있으면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일이 흔했다.

머지않아 필요한 물건이라거나, 지금 사는 것이 더 싸다거나 하는 이유는

늘 있었지만 결과적로는 그렇게 산 물건들을 모두 다 알뜰하게 쓰지는 못했다.

 

본래 신용카드도 딱 두장만 있었지만 과감하게 모두 지갑에서 없앴다.

그렇다고 꺽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집안 구석에 모셔 놓고

한달에 들어갈 실 생활비를 은행에서 찾아다 놓고 외출할때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헐어서 가지고 나갔다.

생활이 달라졌다.

언제나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신경쓰게 된 것이다.

여유가 없으면 살 수 가  없었다. 한번에 펑펑 쓰면 나중에 모자랄테니

한달 쓸 것을 가늠하며 하루 하루 지출을 조절하는 버릇이 생겼다.

카드를 가지고 다닐때는 시내에 볼일 보러 나가면 으례 점심은 밖에서

사 먹는 줄 알았는데 현금을 들고 다니니까 외식할때 돈 내는게 제일

아까왔다. 밥때를 맞추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이들이 갑자기 졸라대는 것도 지갑에 여유가 없으면 딱 잘랐다.

이제부터 엄마는 카드가 없고 지갑엔 딱 쓸 돈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더니 처음엔 불평을 해도 지갑안의 잔액을 보여주면 쑥 들어갔다.

 

큰 아이 방한 부츠가 필요해서 며칠을 벼르다가 얼마전에 시내의 한

신발가게에서 저렴한 것을 구입했는데 큰 아이 보는 앞에서 2만원을 꺼내

부츠값을 치루었더니 아들이 부츠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카드로 살때는

5만원이 넘어도 비싼 줄 모르다가 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는 것을 보니

큰 돈을 써서 사준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카드가 없이 다니다보니 주유소에서 달랑 2만원어치 기름을 넣는 일도 생기고

한살림 매장에서 100원이 모자라 쩔쩔 매는 일도 생겼다. 가게에선

계산대 앞에 서서 동전까지 세어서 건네주는 일은 흔하다.

정말이지 요즘은 동전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단돈 100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비가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든건 아니다. 외식 안하고 옷 안 사입어도

다른 곳에 돈 들어갈 일은 꼭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눈에 띄는 변화는 있다.

아이들도 나도 돈이 나가는 일에 전보다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다섯 식구가 한 달을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 얼마나 많은지, 그 돈을 버는 것에

비해 쓰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야채들이 있는지 예민해지고 당장 안 사도 되는 것에

지갑을 닫고, 꼭 필요한 것도 돈을 덜 들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되었다.

새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소비에 길들여 있었는지 깨달으면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상태에서 깨어난 느낌이 다 든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여전히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기분 내키는 지출은 하지 않고

카드를 이용할때는 꼭 얘기해줘가며 소비를 조절하고 있다.

체크카드도 있는데 꼭 현금을 쓰는 것이 올바른가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체크 카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임엔 틀림없다. 불편하긴 하지만 카드와 현금은 피부에 느껴지는

것부터가 너무나 다르다. 돈 만원이 헐려져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붕어빵 사 먹는 몇 천원도 달리 보인다.

 

카드와 이별하고 나니 내가 지금 이미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시 보이고

마냥 품던 욕심도 내려놓게 되고, 남편의 노동에 대한 고마움도 더 커진다.

진즉부터 이렇게 현명하게 살았다면 하는 후회도 들지만 언제나 지금부터가 가장

빠른 것이다.

 

연말이다.

한 해동안 결심했던 많은 것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을 보며 가슴치기 전에

소비를 권하는 이 사회에 대해 정말 나를 위하는 건강한 결심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는 손은 아름답지만 오늘도 호기롭게 신용카드를 꺼내드는

당신의 가난한 지갑은 내년에 더 얇아질지 모르니 말이다.

 

 


사투리로 쓰인 이야기를 그대로 해도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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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들려주기 4] 사투리로 쓰인 이야기 어떻게 들려주나요?

20131210_1.jpg» 한겨레 자료 사진.
이야기에 있어 어감이 중요하다든지, 알고 모르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
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방언으로 쓰여진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나요?


역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예, 그렇습니다. 그대로 말씀하십시오.’라고 한다면 어느 지방 방언으로도 이야기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럴듯하게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 지방 사람이 들어서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야기하는 당사자는 타인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기분도 들게 되고요.

제 생각으로는 사투리로 쓰여 있는 이야기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으신 분, 즉 그 지방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으므로 전혀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 무리해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가끔 그 이야기가 대단히 마음에 들어서, 혹은 다른 텍스트를 찾을 수가 없을 때는 사투리의 어미를 ‘∼했습니다.’라고 고쳐서 말하는 것이 좋겠지요. 

회화 부분은 여러분이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약간 방언을 섞어서 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나름대로의 맛이 우러나올 것입니다.

방언의 이야기는 들어서 재미있고, 구어체가 많이 쓰이므로, 읽으면서 잘 모를 것 같은 부분도 의외로 잘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지방에 살아본 적도 없고 나아가 그 지방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무리하게 따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말로 바꾸어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초미세먼지 예보, 내년 앞당겨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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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미세먼지 예보 전국 확대

고농도 미세먼지로 인한 불편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인체 건강에 특히 유해한 지름 2.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하 초미세먼지와 오존 발생 예보 서비스를 내년 5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중부권에 대해서만 하고 있는 미세먼지(PM10) 예보는 내년 1월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고, 매일 한번만 하던 예보도 내년 2월부터 2회로 늘린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안전행정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기상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최근 중국발 스모그의 영향으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잦아지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수도권에서 미세먼지가 하루 대기환경기준치인 1㎥당 10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을 12시간 이상 연속 초과한 사례는 지난해 3회였으나 올해 22회로 7배 이상 급증했다.

환경부가 이날 발표한 초미세먼지 예보 계획은 2015년 1월로 잡혔던 시행 시점을 8개월 앞당긴 것이다. 미세먼지 예보제의 전국 확대도 애초 계획보다 한달 당겨졌다. 홍유덕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과장은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물리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시행 시점을 당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현재 서울에서만 하는 초미세먼지 경보제와 서울·경기·대전 등 7개 시·도에서만 시범 시행중인 미세먼지 경보제를 다른 시·도에서도 최대한 일찍 시행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경보제는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가 건강에 유해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지방자치단체장이 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해 주민에게 알려주는 제도로, 늦어도 2015년 1월부터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전국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요놈 하나 갖겠다고 빵 사고 햄버거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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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맥도날드 헬로키티 리미티드 에디션’, ‘플라잉 재키’

외식업체 ‘인형 마케팅’ 대박행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외식업체들이 진행하는 ‘인형 마케팅’이 잇따라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맥도날드는 지난달 30일 ‘맥도날드 헬로키티 리미티드 에디션’(왼쪽 사진) 행사를 시작했다. 맥도날드 매장에서 메뉴를 구입하면 특별 제작한 헬로키티 인형 2종을 개당 49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행사였다.

고객 1인당 2개까지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을 했는데도, 행사 시작 사흘 만에 인형 10만개가 모두 팔렸다. 지난 5일 2차로 2종을 추가로 판매하는 행사를 시작했는데, 역시 조기에 품절됐다.

던킨도너츠가 진행하는 ‘플라잉 재키’(오른쪽) 프로모션도 마찬가지다. 플라잉 재키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곰돌이 캐릭터 재키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한 인형으로, 시중에서 3만~4만원에 판매되는 제품을 던킨도너츠에서 1만5000원 이상 구매하면 20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행사다.

던킨도너츠는 인형 10만개를 준비했는데, 행사를 시작한 지 1주일도 안 돼 대부분의 매장에서 동이 났다. 온라인에서는 물량이 남아 있는 매장이 어디인지를 묻고 답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회사원 정아무개(32)씨는 “플라잉 재키 인형을 구하려고 서울 여의도 일대 던킨도너츠 매장을 다 돌아다녔는데도 결국 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뜨겁자 던킨도너츠 쪽은 급히 추가 발주를 넣어 인형 2만개를 확보해 20일께부터 행사를 재개할 계획이다.

뚜레쥬르는 지난 5일부터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형 케이크를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중이다. 3D 프린터로 고객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인형을 만들어 케이크 위에 장식으로 올려 증정하는 행사다. 26일까지 뚜레쥬르 매장에서 제품을 살 때 받은 응모번호를 이벤트 페이지(www.santa-village.co.kr)에 입력하거나, 이벤트 페이지에 연결된 온라인 구매 채널에서 케이크 교환권을 구매하면 자동 응모된다. 모두 100명의 고객을 선정할 계획인데, 응모 시작 닷새 만에 1만명이 넘게 몰렸다.

외식업체들의 인형 마케팅은 어린이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까지 인형을 구하려고 줄을 서는 이유는, 이들 인형이 ‘한정판’이기 때문이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업체들이 특별히 주문제작한 인형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려는 고객들로부터 이런 인형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산야초 세밀화] 명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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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세밀화] 명아주

명아주는 예쁜 꽃도 독특한 생존 기술도 없이 그저 키만 높이 자라는, 눈에 띄는 점이 하나도 없는 풀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는 이라면 명아주를 다시금 바라볼 것입니다. 소나무나 가질 법한 높은 자력과 수만개의 씨앗을 만드는 힘은 ‘이 풀이 어떻게?’라는 의아함마저 들게 합니다.

눈으로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을 선택하고 뿌리와 줄기에 그 힘을 집중한 명아주는 가까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강한 생명력을 선사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노인들은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인 청려장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박신영 세밀화 작가

(*한겨레신문 2013년 12월 11일자)


예상치 못한 세 딸의 수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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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우리 집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성 질환 ‘수두’의 습격 때문이다. 수두, 요즘엔 흔하게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올 겨울맞이를 ‘수두’로 빡세게 했다. 나름 선택을 받은 것! 사실 지금껏 ‘수두’를 우리 집과 먼 얘기로만 여기고 살았다. 세 아이 모두 돌 무렵 일찌감치 예방접종을 했는데, 설마…? 하고 마음 놓고 있었다. (오판이었다!) 예방접종을 하면 해당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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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우리 아이가 수두에 걸렸을 때 주위의 반응은 이랬다. “수두 예방접종 안했어?”라고 반문하거나, “제때 했어야지” 하는 충고 혹은 타박. 그때마다 “아니, 안 할리가 있어?”라고 대꾸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 -; (그리고, 수두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수두의 경우 예방접종을 받은 아이들 대부분(70~80%)는 걸리지 않지만, 예방접종을 해도 수두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단, 예방접종을 하면 수두의 증상이 약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수두 감염 증상은 9살 큰아이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한달 전쯤인 지난달 4일(월)이다. 나는 당시 충남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에서 열리는 회사의 1박2일 ‘휴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앞서 주말부터 큰딸 수아한테서 조짐-자그마한 붉은 점-이 조금씩 나타나기는 했었지만, 나도 남편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아토피를 달고 사는데다, 종종 음식 알러지 증상이 붉은 점으로 나타났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붉은 점이 월요일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가려움도 점점 더 심해졌다.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애아빠는 퇴근 후 큰딸 수아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수아한테 ‘수두’ 확진 판정을 내렸다. 
 
“수아, 수두라네. 다 나을 때까지 격리치료 해야 한대. 집에서 봐야 한다는데, 어쩌지?”
“언제까지? 큰일이네. 누가 돌보냐고….”
 
남편의 한숨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나 역시 깝깝하긴 마찬가지였다. 수두는 잠복기가 2~3주 되는데다 전염성이 강해 격리치료가 필수적이다. 맞벌이 부부한테 ‘아이를 집에서 봐야 한다’는 건 날벼락이나 다름 없다. ‘당장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그렇다고 남편과 내가 돌아가면서 휴가를 일주일 내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붉은 점에서 수포(물집)로 옮겨가고,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다 떼어질 때까지 꼬박 격리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2주일이 될지도 모른단다. 의사는 “딱지가 다 떨어진 뒤 완치 소견서를 받아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단단히 일렀다.
 
인근에 있는 시댁에 큰아이를 출퇴근시키기로 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말이 출퇴근이지, 아침 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과를 반복해야 한다. 수아는 “할머니댁에 가는 것보다 집에 있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아홉살 여자아이를 하루종일 집에 홀로 둔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수아는 수두 증상을 잘 이겨냈다. 드디어 11월 14일 수아는 수두 완치 판정을 받았고, 15일(금) 오랜만에 등교했다. “평소 학교 가기 싫다”던 수아도 오랫만에 학교에 가는 것이라 그런지, 들뜬 기색이 완연했다.
 

“그래, 학교가 재밌지? 친구들도 만나고... ㅎㅎ”
 “어. 맞아. 그 사이 진도가 많이 나갔어.”

   “큰일이네. 조금씩 엄마랑 공부해보자.”
  
수아가 학교생활에 다시 재미를 붙이게 된 건 수두 덕분이다.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걱정은 남은 두 아이들까지 감염이 되었냐 하는 여부였다. 격리치료를 했다지만, 집안에서는 격리치료가 전혀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아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조짐이 나타나지 않아 안도할 즈음,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수아가 학교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6일(토) 저녁 무렵부터 둘째 아란, 셋째 두나 몸에서 동시에 붉은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두 아이 모두 수두에 감염된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사이 잠복기여서 겉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두 아이는 23일(월)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를 어쩐담?’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두 아이한테서 동시다발적으로 수두 증상이 나타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친정 엄마한테 부탁할께.”
 

  상심하는 남편을 나는 이렇게 위로했다. 졸지에 친정어머니는 일요일 저녁 수원에서 서울로 호출(?)되셨다. 평소 수영장을 다니며, 아줌마들과 어울리셨던 어머니는 마지 못해 상경했다. “어린 애들 둘이나 시댁에 보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막내 두나 때문에…”라고 엄마를 설득한 덕분이다. 어머니는 꼬박 일주일 내내 두 아이들을 돌보셨다. 미안한 나는 국과 찌개, 아이들 먹을 밑반찬을 준비해 대령했다. 그럼에도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엄마한테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 막내 두나는 요즘 배변훈련이 한창이라 수시로 변기에 앉혀줘야 했다! 엄마는 “왜, 하필이면…”이란 말을 우리집에 있는 내내 달고 계셨다.


엄마 말로는, 둘이 놀 때는 학교놀이, 병원놀이, 엄마아빠놀이, 시장놀이 등 다양한 역할 훈련도 하고, 피아노도 치면서 노는데 싸울 때는 서로 울고불고 때리면서 싸운다고 한다. 무엇보다 집안을 조금이라도 치워놓으면 또다시 집안을 난장판을 만드는 게 고역이라고 전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식구들을 모두 정리와 청소에 약하다!) 아이들이 어지른 장난감과 책을 치우느라,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때가 없었다고 하셨다.^^; 하긴 하루 세번 꼬박 밥과 약을 챙겨먹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두 아이들은 예방접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두 증상이 약하게 왔다. 수두 물집이 10개도 채 되지 않았고, 모두 일주일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둘다 11월25일(월)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등원했다. 어머님은 금요일 저녁 수원 집으로 돌아가셨다. 어쨌거나 11월 한달은 수두 때문에 정신없는 한달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 이웃가족들과 함께 가려 했던 여행 역시 우리 때문에 물거품되었음은 물론이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없었으면 어디에 도움을 청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여튼 세 아이들 모두 큰 탈 없이 수두를 앓아 다행이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요즘 수두가 많이 돈다고 한다. 초겨울에서 봄 사이에 보통 나타나기 때문이란다. 바이러스 질환이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수두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수아네 학교에서도 수아보다 먼저 2명이 수두 판정을 받았고, 최근에도 수아네 반에서는 한 아이가 수두 때문에 결석 중이라고 한다. 수두에 걸렸을 때 주의할 점은, 가려움을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딱지를 억지로 떼는 일이다. 억지로 떼면 흉터가 평생 남을 수 있다. 수아도 이마 중간에 커다란 흉터가 ‘훈장’처럼 남았다. 쩝~

11월 28일 목요일, 함께 여행 가기로 했던 이웃 4집을 집에 초청해,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했다. 함께 가기로 한 여행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또 미안한 마음을 삼겹살에 담아 전했다... 이웃들은 “이거 수두 한 번 더 걸려야 하는 거 아냐?”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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