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맞벌이가정 ‘우리 아이 어쩌나’
고 젖가 시대
모유 수유 53일 차
고 젖가 시대
분유 값 안 들어서 좋겠다고?
모유 값이 훨씬 비싸다.
몸이 젖을 만드느라 힘을 많이 쓰는지
배가 자주 고파서 자주 먹는데
그 음식 값이 어마어마하다.
고기, 과일, 떡, 야채...
다름 아닌 '젖 활동비'다.
그 음식들이 젖에 녹아나오니
'젖 재료비'이기도 하다.
그러니 "젖 값 많이 들겠네."라고 해야 맞다.
모유 수유 54일 차
허기
먹어도 자꾸 허기지는 것 같고
영양 있고 맛있는 음식을 좀 먹고 싶어서
요즘 우리 집 요리사인 남편에게 말했다.
“젖 양은 먹는 양과 비례해.
이래서 젖 먹이겠어? 허기진다구.”
그러자 남편이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바다 지금 엄~청 통통한 거? 굶어!"
헉. 그랬지. 우리 바다가 그랬지...
핑계를 잘 못 댔다.
그냥 맛있는 거 좀 해달라고 할걸.
커밍아웃? 햇님군의 사립초 생활기-1편
살짝 겁이 난다.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다음주면 올해의 학교생활이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고, 크리스마스 이브엔 겨울방학!
초등학교 1학년을 잘 보낸 것 같아 햇님군의 학교생활에 대해 커밍아웃을 해보고자 한다.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고 있었고, 두려운 마음이 컸기 때문에
섣불리 학교생활, 내 주 관심사였던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수 없었다.
눈치밥 일년 먹었고, 일년동안 생과 사를 오가는 큰 일들을 겪어내면서 조금은 초연해졌다.
고로 나는 조금 더 담대해졌다.
작년에 나는 사대부초를 지원해서 떨어졌고, 모 사립초에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모사립초는 햇님군의 유치원과 연결된 부속초등학교로 초등학교 탐방도 이곳으로 다녀왔었다.
동네 유치원 절친들도 모두 여길 간다고 하는 상황에 햇님군 마음도 오죽했을까.
자긴 여길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
사립초의 학비가 부담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아이가 원한다는 점에서 추첨에 도전해볼만 했다.
2대 1의 경쟁률에서 당첨되었고, 아이는 동네 유치원 절친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니고 싶어했던 학교여서, 그리고 여러가지 점에서 익숙했기때문에 아이는 제법 잘 적응하고 잘 지낸 것 같다.
무엇보다 적응스트레스가 클 것같아 나는 매주 내 나름대로의 보상책을 생각해서 실천했다.
아이 입장에서 좋아할법한 이벤트를 만들었는데 주로 친구, 형님들과 노는 시간을 갖는 거였다.
아파트 광장이 잘 되어있고, 제법 사교적인 편에 속하는 아들 덕분에 열심히 애쓰지않아도 나만의 이벤트는 쉽게 이루어졌다.
방과후를 2과목하긴 했지만 유치원 하원 시간과 비슷했기 때문에 유치원때의 나돌아다니는 습관도 버리지 못했다.
학교도 가고, 친구만나 놀고, 체험도 다니고, 학기별 핵심 과제(1학기엔 받아쓰기, 2학기엔 일기쓰기)를 헉헉대며 했다.
어떤 기준으로 1년을 보냈는지는 다음 글에서 하나씩 풀어볼까 한다.
< 다음 편을 위한 떡밥-올한해 기록들>
올 한해..
남편도 아팠고, 친정어머니도 아프셔서 참으로 정신없었던 한해.
나와 햇님군이 생활했던 기록들을 풀어보겠다.
아주 열심히 살았던거 같진 않다.
그냥 몇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생활하니 가능했던 일이고, 연말에 학교상장으로도 돌아온 결과물들이다.
베이비트리 송년회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고, 승리할 수 있는 법.
내가 햇님군과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실험.
그것들을 2013년 이후. 앞으로의 칼럼에서 풀어내고 싶다.
+ 우리의 일년 생활을 담은 햇님군의 일기장.
일기장에 교장선생님이 남겨주신 글을 사진으로 올려본다.
[육아카툰30편] 2013년 베이비트리의 우~아한 송년회 후기
즐겁고 따뜻했던 2013년 베이비트리 송년모임
베이비트리 독자 여러분, 한 해 마무리 잘 하고 계신가요? 지난 11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의 북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2013 베이비트리 필자·독자 송년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을 모시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필자분들과 ‘책 읽는 부모’분들 중 참석 가능하신 세 분을 송년회에 모셨습니다. 전문가 분들중에는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장, 박진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송은주 문화은행 대표, 이현주 기린한약국 한약사, 신혜정 국립의료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참석을 하셨습니다. 생생육아 필자분들 중에는 김미영 <한겨레> 기자, 전병희님, 신순화님, 빈진향님, 이정은님이 참석하셨고요. 책 읽는 부모들 가운데 ‘난엄마다’님, ‘루가맘’‘분홍구름’님이 참석하셨어요. 요즘 속닥속닥 게시판에 `살까? 말까?'를 연재해주신 윤지혜님도 참석해주셨습니다. 앱 제작에 참여한 김현정 자연음악가, 문현주 어린이도서연구회 상담실장, 장혜주 모유수유 전문가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베이비트리 전담 기자로 있는 저 양선아 기자, 기획자 김노경 팀장, 안정순 과장도 함께 했습니다. 강성만 <한겨레> 기획 에디터도 함께 하셨고요.
산 다미아노 북까페 참 분위기 있지요? 일본 디자이너가 책장 디자인을 했다는군요.
올 한해 베이비트리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송년회를 열기 전 올 한해 베이비트리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 정리해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잠시 독자분께 올 한해 베이비트리 관련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1월~5월 ‘한겨레-성북구 부모특강’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부모특강 페이지도 별도로 마련했지요. 많은 전문가분들의 주옥같은 강연에 독자분들이 만족했습니다.
둘째, 새로운 필진들이 많이 합류했습니다. 김우경, 신혜정, 황진복, 이승욱, 최남숙, 류성용, 최형주, 윤영희님이 필진으로 합류하셨지요.
셋째, 베이비트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 SNS를 통해 보다 많은 독자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넷째, 5월21일자부터 <한겨레> 지면에 베이비트리면이 생겼지요. 격주로 지면을 통해 베이비트리의 육아 관련 기사와 글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다섯째, `반갑다 친구야'와 함께 먼지쌓인 가방을 지구촌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나눔 공익 캠페인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눔에 동참했고, 웹에 별도의 ‘반갑다 친구야’ 페이지를 열어 소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베이비트리 임신출산앱을 제작해 거의 완료했고, 출시하기 직전입니다. 베이비트리 기획운영자 김노경, 안정순, 정수빈님이 많은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이날 송년회에서는 베이비트리 임신출산앱 제작과정을 간단하게 소개했고요.
일곱번째, 책 읽는 부모와 육아서 읽고 서로의 생각 나누는 일 계속 했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트리파와 반트리파 논쟁’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진정한 베이비트리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한겨레> 25주년 창간 기념사업으로 한 ‘찾아가는 지식나눔 특강’으로 자존감 관련 특강을 나갔던 일과 <자존감은 나의 힘> <나는 일하는 엄마다>라는 책이 나온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석해주신 전문가분들이 짧게 자기 소개를 하고 계십니다.
베이비트리 임신출산 앱에 참가해주신 전문가 분들이고요.
우리 생생육아 필진분들 글도 잘 쓰시지만, 말씀도 어찌나 잘 하시던지...
책 읽는 부모님들도 각자 올 한해 베이비트리 활동 소감 말씀해주셨고요.
베이비트리 활동에 적극 참여한 <한겨레> 관계자들입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임신출산앱에 소개될 태교 음악 연주와 문현주 선생님의 전래 동화 구연, 권오진 선생님의 젓가락총 놀이였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때로는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해와 달 옛이야기에 흠뻑 빠졌습니다.
또 젓가락총으로 종이컵을 맞추려고 다들 집중을 했지요.
여느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올해, 베이비트리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셨는지요?
베이비트리는 누군가 혼자 뚝딱 만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전문가, 파워블로거, 기자, 독자들이 모두 똘똘 뭉쳐 새롭게 창조해가는 공간이지요.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육아, 아이들의 자발성과 본성을 살리는 육아를 꿈꾸면서요.
부모들과 아이들의 모든 고민들을 함께 다루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성찰을 해보고자 합니다.
내년 초에는 베이비트리 임신출산앱이 출시됩니다.
기대 많이 해주시고요.
이 앱을 통해 베이비트리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베이비트리 다음주 기사를 마감하고
이렇게 송년회 후기를 쓰는 저,
진정한 베이비트리언 아닌가요? ^^
이날 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하셨지만
올해 베이비트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주신
홍창욱님, 윤영희님, 최형주님 비록 멀리 있어 함께 하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요.
임지선 기자, 김외현 기자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속닥속닥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남겨주시며 참여해주신
박상민님, 엘리자베쓰님, 어른아이님, 나일맘님, 푸르메님, 꿈꾸는 식물님, 해피고럭키님, 뽀로로0308님, 안나8078님, 오감도13님께도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올 한해도 모두들 잘 마무리하시고요,
새해 힘차게 맞이하세요.
비록 세상이 참 우리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여도
함께 연대하고 함께 고민하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3년 12월13일 양선아 기자 드림
재롱잔치, 아들바보된 날
아들의 재롱잔치가 있었던 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1년 반이 넘도록 유치원 가기를 싫어했던 데다,
1월생이다보니 또래보다 하는 게 뭐든지 어리고 늦어서 ..
같은 반 친구 중에도 1, 2월생이 몇 명은 있어 그걸 위안삼기도 했는데
그 아이들이 또래보다 월령수가 어린 것과 상관없이 유치원 적응, 바른 생활습관,
지적 발달 등 대부분의 유아기의 과업을 순조롭고 빠르게 달성해가는 걸 지켜보니,
"우리 아이는 생일이 늦어서..."식의 핑계를 더 이상 대기 힘들었다.
재롱잔치 날에도
고집이 센 아들이 정해진 의상을 입지 않는다고 떼를 쓰거나 해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진 않을까..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자존심만 너무나 강한
아들이 혹 무대 위에서 실수라도 해서 울다가 결국 퇴장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다른 반 아이들의 깜찍한 춤과 연극이 끝나고 드디어 아들의 차례가 왔을 때,
커튼이 열리며 남성성을 물씬 풍기는 웅장한 음악이 깔리자(아들의 애창곡, 울트라맨)
몇몇 남자 아이들이 서 있었는데
엄마인 나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아들이 어느 위치인지 알아보질 못했다.
그때, 남편과 딸의 놀라고 다급한 목소리 - "센터야!!!!"
응?? 뭐?? 무대를 다시 자세히 보니, 아들은 정말 여러 아이들 중에 제일 앞자리,
그것도 한 중간에서 댄스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강하고 멋진 울트라맨을 표현하는 춤인 만큼, 비장한 표정에 야! 으아!같은 기합을 넣어가며
5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근사하게 무대를 빛내고 있었다.
공연 도중, 많은 관중 속에서 엄마를 발견했는지,
씩- 웃으면서도 모른척하며 계속 공연에 집중하는 아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 .. 순식간에 아들 바보가 된 나는 눈물콧물을 동시에 훌쩍였다.
옆자리의 남편을 슬쩍 보니, 그도 아빠 미소가 흠뻑 번진 얼굴에다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핸폰으로 아들을 찍느라 바빴다.
내가 팔로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으니, 남편도 마주보며 웃더니
"신이 이 녀석, 젤 중간에서 한다고 미리 말해줬으면, 더 앞자리에 앉는건데 말야."
아쉬워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다시 무대 위를 보았다.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얼굴로 친구들 사이에서
춤을 추며 여유있게 무대를 즐기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5년여의 시간이 꿈만 같았다.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앉는 것도 할 수 없었던
아들 모습이 엇그제 일 같기만 한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자랐다니..
댄스 공연이 끝나고 합창 시간에는 <토토로> 주제가를 씩씩하게 부르며
의젓한 모습으로 같은 반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면서
그동안 유치원에서 배운 실력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펼쳐보이다니.
재롱잔치를 끝내고 아이들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다른 엄마들이 내 주변으로 다가와
"신군, 너무 잘하더라. 신군밖에 안 보였어. 그새 너무 듬직해졌더라~."
그저 예의상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내가 받은 감동이 객관적으로도 증명되는 것만 같아
뿌듯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유치원을 나와, 할머니댁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물었다.
"신아, 무대 위에 섰을 때 어땠어? 안 떨렸어?"
"아니~ 기뻤어!"
아들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운전하던 남편과 나는 다시 마주보며 흐뭇+대견..
얼마전 내가 병원에서 피가 모자라단 진단을 받고,
안 그래도 바쁜 연말을 꽉 찬 병원순례 일정으로 보내야 해서 걱정과 부담이 많았던 차에
엄마아빠를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 아들이 이번 재롱잔치를 통해 부쩍 성장해줘서,
이렇게 올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마음이 놓인다.
이만큼 키우고 나서야 고장이 나기 시작한 내 몸마저도 고맙고 다행스럽다.
시아버님이 몸이 좀 안 좋으셔서 재롱잔치에 참석은 못 하셨지만,
따뜻한 집밥을 차려두고 우리를 기다려주신 시댁에 도착해 누나가 열심히 찍어준
비디오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시 돌려보며 즉석에서 댄스공연을 또 보여주었다.
짧은 팔다리를 온 힘을 다해 움직이는 어린 아이의 순수하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며
가족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크게 웃고, 따뜻한 저녁을 함께 했다.
키우기 힘든 아이, 쉬운 아이는 따로 있는 걸까.
이 물음에 '키우기 힘든 아이는 분명 있다'고, 주관적이지만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
대답과 고백을 나는 하고 싶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선생님이 언젠가,
"아이들 때문에 부모가 점점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정말 그렇게 되어가는 건 아닐까, 두려운 때가 많았다.
많은 부분이 나아지고 성장했지만, 여전히 아들을 키우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는 많다.
지금보다 더 어렵고 곤란한 일을 많이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재롱잔치 덕분에 좀 더 즐겁게 그 숙제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춤을 추는 아들이 나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진 않았을까.
"엄마! 잘 못한다고 실망해서 고개돌리지 말고, 끝까지 나를 봐주세요."
신아. 이번에 네가 엄마에게 정말 중요한 걸 가르쳐 줬구나.
고마워.. 새해부턴 좀 더 느긋하게 지켜보고 기다릴 줄 아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께.
그동안 크느라 너도 애썼다.
엄마의 아이돌, 우리 아들, 많이많이 사랑해~^3^
야경에 취하고 우정에 취하고, 우리말에 취하고
말레이시아 여행기 이어 갑니다.
남편과의 불화로 엄청난 조회수!! 송년회에서 주목 받을 수 있었네요.
위로, 격려해주고 조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흠흠, 여기는 다시, 싱가폴입니다.
엄마, 저기 좀 봐! 두리안 같이 생겼지? (에스플레네이드 Esplanade극장)
어어, 콤타르가 언제 여기로 옮겨졌지? (페낭의 고층 건물, 원기둥 모양이 닮았다.)
아침에 먹은 사과 같아.
아침에 먹은 사과란, 바로 이것! (사과 커터를 처음 본 아이들이 열광했다!)
싱가포르에는 똑같은 건물들이 없단다. 같은 설계로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했기 때문.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재미난 구경거리이지만 너무 반듯하고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컴퓨터 도시
싱가포르에선 비누 냄새가 난다. 밤에 개가 짖으면 그 개의 성대를 잘라 버린다. 남자들은 더운 날씨에도 긴 바지만 입어야 하고, 여자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모든 자동차는 시속 80킬로미터를 넘으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내는 경적이 내장되어 있다. 교통 혼잡과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오전 6시부터는 승용차를 운전자 혼자 타고 다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직장 동료나 무료 편승자들을 태워 주어야 한다. 국민들의 행로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경찰은 자동차 밑에 발신기를 부착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이동 상황을 대형 스크린 위에서 추적할 수가 있다.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에게 자기 이름을 말해야 한다. 도시 곳곳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할 만큼 한정된 인구를 가진 새로운 나라이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이런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최초의 컴퓨터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싱가포르 국민들은 싱가포르 공화국이라는 거대한 컴퓨터의 소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지난번에 센토사 섬에 가려고 하버프런트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갈림길에서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다.
“미안해요. 실수로 이렇게 빙 돌아가게 되었네요. 카메라가 많아서 아무 데서나 차를 돌릴 수 없거든요.”
한참을 돌아 다시 제대로 된 길을 가면서 택시기사가 미안해했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는데 그냥 좀 돌리면 안 되나, 싶은 마음이 들던 찰나였다.
싱가포르는 범죄율이 낮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나라로 유명하다. 단정하고 잘 꾸며진 이 도시 곳곳에는 빨간 동그라미 안에 빗금을 그은 ‘금지’ 표지판이 눈에 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지하철에서는 먹거나 마시지 마세요. 그리고 CCTV가 찍고 있습니다, 라는 표지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의하면 기름때가 묻는 종이를 버리는 행위, 화분에 물을 주다가 거리에 물이 고이게 하는 행위(물이 썩으면 모기가 생긴다.)도 금지! 벌금 대상이란다.
정해진 규율을 어겼을 때 무시무시한 벌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애연가 좌린 선생도 담배를 피울 때마다 사람들에게 어디서 피워야 하는지, 여기서 피워도 되는지 묻곤 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환경이 깨끗해지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금지 표지판과 CC TV를 너무 자주 맞닥뜨리니까 지나치게 감시하고 필요 이상으로 제재하는 것 같아 불쾌해진다. 잔소리쟁이가 쫓아다니며 ‘안돼!’를 외치는 것 같고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잘못하면 혼날 줄 알아!’ 하고 겁박 당하는 기분이랄까.
며칠 다녀보니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지하철에서 물 마시는 사람도 보았지만, 책에서 읽은 내용이 정말 사실일까 싶기도 한데, 독재 정치가 독립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무척 통제된 사회인 것 같다.
컴퓨터 도시의 설계자인 리콴유는 31년간 총리를 지냈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수석 총리, 그의 아들이 총리가 된 현재에도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뉴스 시작과 함께 ‘리콴유 고문께서는~’이라는 ‘땡전’ 뉴스가 여전하단다.
독립 초기에 일어난 말레이-중국계의 유혈 폭동은 언론, 집회, 사상의 자유를 강력하게 제한하는 구실이 되었다. 남북한 분단 현실을 장기집권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종북, 사회 갈등 세력으로 몰아가는 우리 현실과 비슷한 맥락인 듯.
경제성장이라는 이유로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되는가?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다.) 정당한 비판과 절차를 무시하는 독재 정치가 그들의 포장처럼 투명하거나 공정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 결과, 그리고 우리의 정치 현실이 떠올라 잘 꾸며진 이 도시에 자꾸 반감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오후 늦게 클락키 역에서 친구를 만나 강변을 따라 멀라이언(merlion, 반은 물고기, 반은 사자, 싱가포르 상징 동물) 공원까지 걸었다.
좌린은 야경에 취했고-어쨌든 도시의 불빛이 참 아름답기는 하다!-
나는 경치보다 사람들~ 석유 재벌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 이 언니들의 의상이 참 세련되고 멋있었다!
모두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친구를 만났다. 블로그로 알게 된 사진 찍는 친구, 내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여행한다고 올렸더니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며 만나자고 쪽지를 보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대학 동창, 1학년 때 기숙사 방 짝의 같은 과 친구였다. 심지어 실험 수업을 함께 듣기도 했단다!
전공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날마다 사진기 메고 동아리 방, 집회 현장, 학교 앞 술집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던 나는 그녀와 같은 모범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내가 그럭저럭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가 여행하고 아이 낳고 사는 동안 그녀는 전공을 바꾸어 가며 공부를 계속했단다. (미쿡 유명 대학의 학위도 있다!) 학위를 밑천으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해 보였지만, 열심히 달려온 그 길을 놔두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단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 사진, 그리고 아직 ‘꿈’을 좇는 우리, 거의 처음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친구,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의미가 다채로워지는 것 같다. 함께 지낸 옛 추억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고 현재의 일상을 나누는 친구도 있고, 거창하게 말해서 소울메이트라고 할까?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느낌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다. 자주 만나거나 이야기를 오래 나누지 못하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은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나를 북돋워 주곤 한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네 마음속 빛을 따라 살아라, 라고.
맥주를 마신 건 어른들인데 아이들이 흠뻑 취했다.
낮부터 오래 걸었는데 어디서 힘이 나는지 펄펄 날아다녔다. 밤늦고 피곤하니 택시 타자는데도 아이들이 버스를 고집하며 앞장섰다.
우우우우~
괴성을 지르며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해람이를 보니 마치 취한 사람 같았다.
해람이를, 아이들을 취하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한국 말, 한국 사람!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즐거웠나 보다.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낯을 가리지도 않고 처음 보는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까불고 수다를 떨었다. 친구가 귀찮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동안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글자 속에 둘러싸여 아이들이 느꼈을 긴장감과 생경함에 비로소 생각이 미쳤다.
물론 늘 우리가 곁에 있지만, 길거리에서, 숙소에서, 식당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막연히 두렵고 불안하기도 했으리라.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이 지쳐 쓰러졌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등을 쓸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낮에 만난 친구와 나눈 이야기, 느낌이 통하는 친구가 생겨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여행에 대해, 새로운 친구, 새로운 풍광을 만날 때의 흥분,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남미를 여행할 때 스페인어를 몰라서 겪었던 일들, 외딴 언어의 섬에 갇힌 듯 답답하고 외로웠던 경험...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을까? 사실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기보다 내 마음에 취해 토해내듯 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일기에 적었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를 허락하는 한편 내 안의 외로움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이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언어, 풍경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에 ‘자유’니, ‘외로움’이니 하는 단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우리말, 우리나라 사람에 취해서 격하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그 마음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들에게 ‘여행자’로서의 동지의식이 느껴진다.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
그림 마루벌 제공 |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
마루벌 펴냄(1997)
겨울이 되면 피해갈 수 없는 그림책 작가가 레이먼드 브릭스다. 그의 그림책은 유난히 겨울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많다.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은 <산타 할아버지>와 연작인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는 물론 <곰>도 겨울 느낌이 물씬 난다. 물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애니메이션으로도 큰 인기를 끈 <눈사람 아저씨>다.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아이는 눈사람을 만든다. 자기 키보다 더 큰 눈사람을 만들고는 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를 매준다. 아이는 스스로 만든 작품에 뿌듯하다. 이윽고 밤이 되었지만 아이는 온통 눈사람 생각이다. 잘 있을까, 추운데 괜찮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내다본 순간 놀라운 일이 시작된다. 눈사람이 모자를 벗고 아이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아이는 눈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집 구경을 시켜준다. 거실과 욕실, 안방을 거치며 눈사람에게 집안 물건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눈사람은 호기심꾸러기에다 장난꾸러기다. 아빠의 옷을 입어보고, 두루마리 휴지로 장난도 친다. 구경을 마친 둘은 거하게 음식을 차려 밤참을 먹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눈사람이 아이를 안내할 차례다. 눈사람은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손을 잡고 하늘을 난다. 그래서 성을 구경하고 부둣가에 가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아이들은 이 장면에 모두 열광한다. 밤하늘을 날아 먼 곳을 가서 보지 못하던 풍경을 보고 돌아오는 것. 이건 글자 그대로 아이들의 꿈이다. 낮에 만든 눈사람이 밤에는 마법이 풀린 듯 살아나고 그 눈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런 꿈은 누구나 한번쯤은 꾸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꿈일 것이다.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만드는 눈사람은 아버지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보다 못한 친구, 자기의 약한 부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수동적이고 여러모로 부족한 눈사람을 만들어 내며 아이들은 역으로 자신의 유능함을 확인하고 우월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든 물건을 만들든 그 시기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존재를 담아내는 경향이 있다. 눈사람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필요한 아이는 친구 눈사람을, 엄마가 필요한 아이는 엄마 눈사람을 만든다.브릭스에게 절실한 존재는 아빠였다. 그것도 친밀한 아빠다. 자기 일에 빠져 있는 아빠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빠, 아이의 바람을 이뤄주는 아빠다. 강하고 능력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미있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아빠를 그는 바라고 있다. 그의 눈사람은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와 무척 닮아 있다. 이 그림책이 그려진 1970년대 말의 영국의 아이들에겐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빠가 필요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렇다.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
코끼리 똥의 화려한 변신
그림 책공장더불어 제공 |
투시타 라나싱헤 글, 로샨 마르티스 그림, 류장현·조창준 옮김
책공장더불어·1만원이 책은 세상에 한 권뿐이다. 코끼리 똥을 모아 햇볕에 말린 다음 세균을 없애려 하루 종일 끓인 뒤 분쇄해 채로 걸러 압축해 말리면 종이가 나오는데 종이마다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 종이로 책을 만들기로 하고 손작업으로 한 권씩 제작을 했으니 각자가 구입한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코끼리 아저씨>는 세상에 한 권뿐인 책이 맞다.동물들에게 삶의 터전과 먹이를 제공해주는 나무를 베어 없애가며 종이를 만드는 대신 사람들은 코끼리 똥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코끼리는 정말 많이 먹는다. 매일 180㎏의 풀, 과일, 나뭇잎, 나무껍질 등을 먹고 16번 정도 똥을 싼다. 섬유질이 풍부한 코끼리 똥 10㎏이면 에이(A)4 크기의 종이 660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만든 종이는 도톰하고 보드라우면서도 울퉁불퉁해 투박한 매력이 있다.이 그림책은 실제 코끼리 똥으로 종이, 책, 각종 물품을 만드는 스리랑카의 사회적 기업 ‘막시무스’가 제작했다.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들면 가난한 사람들도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코끼리들도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된 가치다. 책을 읽다 보면 미심쩍은 마음에 코를 킁킁대게 되는데 아무리 맡아보아도 똥냄새는 나지 않으니 신통방통한 노릇이다. 5살부터.임지선 기자, 그림 책공장더불어 제공
[12월 16일 새 그림책] 강아지는 모두 ADHD래요 외
장난감 도서관, 벽지 서민에겐 `그림의 떡'?
»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에서 두 엄마가 경기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장난감 가득 든 가방을 받고 있다. 센터의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는 2주에 한번씩 이뤄진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10일 오전 10시 반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비롯한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즐비하게 전시됐다. 경기도 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 소속 보육전문요원이 전곡읍에 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을 빌려주기 위해 물건을 가득 싣고 읍을 찾았다.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는 2주마다 한 번씩 이뤄진다. 오전 11시가 되자 엄마들이 한 두 명씩 나타난다.
“자동차처럼 부피가 큰 장난감 위주로 빌려요. 워낙 장난감이 비싼데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빨리 싫증을 내잖아요. 장난감을 빌려쓰니 육아비가 많이 절감돼요. 6개월 정도 이용했는데 대만족이에요. 2주 정도 장난감 가지고 놀다 새로운 장난감으로 바꿔주면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
3살, 10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전정훈(33·경기도 전곡읍)씨의 얘기다. 전곡읍에서 문화센터만 가려고 해도 차로 30분 걸리고, 젊은 엄마들이 애용하는 키즈카페 하나 읍내에서 찾기 힘들다.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는 시골의 영유아 자녀 부모들에게 센터가 제공하는 각종 육아 지원 서비스는 그야말로 ‘가뭄 속의 단비’다. 센터는 장난감도 대여해주고, 문화공연도 하고, 육아 상담 전문가를 데려와 일대일 상담도 해준다. 다수의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지원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갈수록 느는 ‘장난감 도서관’
이처럼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장난감 도서관은 계속 늘고 있다. 장난감 도서관협회가 집계한 결과, 2005년도에 29곳에 불과하던 장난감 도서관이 올해에는 175곳에 이르고 있다. 8년 만에 그 수가 5배 늘었다.
우리나라 장난감 도서관의 시작은 장애아동의 발달과 교육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그의 아내 김후리다 박사가 1983년부터 지적장애인 학교인 성베드로 학교에서 장애아동의 조기 교육을 위해 장난감 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장난감 도서관은 그 취지에 공감한 사회복지관, 학교, 주민자치센터, 어린이집, 보육정보센터 등이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면서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영유아 보육에 대한 공공투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면서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개정안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반영됐다. 개정안 핵심내용 중 하나는 기존 보육정보센터를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존 보육정보센터가 어린이집 정보 제공, 보육교직원 교육 등 어린이집 지원 기능에 편중돼 있었다면,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장난감 대여 및 부모 교육, 영유아에 대한 체험, 놀이공간 제공 기능과 일시 보육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장난감 도서관 운영에 대한 각종 경험이 쌓였으니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토대로 더 정교한 제도적 지침을 마련해 현장 밀착형 육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런 예산 중단에 ‘발 동동’
정부가 육아종합센터의 핵심 기능으로 장난감 대여 등을 명시적으로 밝혔지만, 정작 농어촌 지역에서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를 해오던 센터들은 내년 사업 예산이 끊겨 애를 태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각 센터당 매년 1억 3천만 원씩 예산 지원을 받아 ‘장난감 이동 도서관’을 운영해온 경기 북부, 전남, 전북 육아종합지원센터가 당장 내년부터 지원을 못 받게 됐다.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이나 도서 벽지 등 보육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농어촌 읍면 지역을 찾아가 장난감도 빌려주고 육아 상담도 해왔다. 특히 그런 지역의 아이들은 장애아, 조손, 다문화 가정 등 취약아동 가정들이 많고 가가호호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과 인력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을 통보받은 뒤 지난 4년 동안 운영해 온 이 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는 김동례 전남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다. 도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운영은 국비 50%, 도비 50%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전남 같은 지자체에서는 ‘장난감 이동 도서관’을 위해 도에서 추가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
김 센터장은 “서울 등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의 질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결국 육아지원도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꼴이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세 곳에서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를 받아온 아이들은 총 625명에 이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농어촌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 중심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아이돌봄센터)을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이동식 장난감 도서관 사업의 효과와 중복된다고 본다. 또 장난감 이동 도서관은 사업이 끝난 뒤 시설 등 실체가 남는 게 없는 점도 단점이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 역시 “장난감 이동 도서관보다는 아이돌봄센터가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 그쪽으로 예산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외지역 장난감 지원사업 잘 키워가야
정부 쪽 설명을 요약하면 더욱 질 높은 육아 지원을 위해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보다는 돌봄센터를 만드는데 예산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서 육아지원을 하고 있고 서비스를 받아온 사람들은 아직 돌봄센터가 설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에 난감함과 우려를 표시한다. 유민정 경기도 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 보육전문요원은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는 단순히 장난감만 빌려주는 게 아니다. 각 가정의 특성을 파악하고 부모님들과 대화를 많이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들과 친해지고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가 중단되게 됐다”며, 아이돌봄센터가 구축되기 전까지 계속 서비스를 하고, 돌봄센터가 만들어진 뒤 기능을 재조정해도 늦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나타냈다.
황인정 장난감 도서관협회 사무국장은 정책 담당자들의 시설 건립 위주의 사고방식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보기 좋고 거대한 시설을 짓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의 연속성이 있어야 부모들도 신뢰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 곳 센터가 예산 부족으로 관련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업은 각 센터가 예산 범위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복지부, 농식품부, 기재부가 협의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장난감 이동 도서관’ 사업을 지속할 필요성이 있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장난감 도서관 운영 제대로 하려면?
운영 지침 만들고 전문인력 양성해야
»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에서 한 아이가 경기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보고 있다. 뒤쪽에선 센터 소속 보육전문요원이 장난감이 든 파란 가방을 나란히 놓고 대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장난감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장난감만을 빌리고 나눠쓰는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도서관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난감과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이다. 모든 아이들은 놀 권리가 있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상호작용하면서 육체적, 신체적, 교육적, 사회문화적 발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장난감 도서관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운영요원들의 전문성 강화와 동시에 장난감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운영 지침과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운영요원은 장난감 구입, 세척, 관리, 놀이상담, 놀이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영유아의 발달적 특징을 이해하고, 부모의 요구를 파악해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장난감 도서관 전문인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고 서 교수는 전했다.
고은미 부산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요즘 엄마들은 정보 습득력도 높고 육아에 관한 지식도 많고 자기 주장도 강하다”며 “장난감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을 상대하려면 보육전문요원들이 전문성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보육사업안내 지침서에 보육전문요원의 자격사항, 처우문제 등에 대한 어떠한 지침도 없다”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부모들이 장난감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전국적인 온라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동례 전남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전문가가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는 장난감을 검토한 뒤 그것을 구입하고 온라인 상에서 부모들이 쉽게 내 아이에 맞는 장난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인증 시스템 계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유아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더 나아가 청소년과 성인까지 장난감 도서관 이용 연령층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놀이와 휴식, 재미와 즐거움은 영유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1100개의 장난감 도서관이 있고 30만명의 어린이가 장난감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장난감 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다. 남아공이나 브라질에선 청·장년과 어르신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분유는 언제 먹여야 하나…“아이가 요구할 때 먹이세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15)
Q: 50일 넘은 여아를 분유수유하고 있어요. 아이가 분유를 먹다 자꾸 잠을 잡니다. 잠을 자면 깨워서 분유를 먹이다보니 보통 수유시간이 40분 이상 걸립니다. 분유를 먹은 뒤에는 거의 5cc이상 토합니다. 더 토할때도 있구요. 또 먹는 중간에는 잘 삼키지 않는지 입가에 분유가 많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분유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데 꼭 그래야하는지 아니면 아이가 달라고 할때마다 줘야하는지 궁금합니다. 항상 녹변만 보고, 방귀도 심한 가스 냄새가 납니다. 분유가 안맞는걸까요?
A: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성장(키,몸무게), 수면, 식욕, 대소변, 보채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하나씩 우선 확인해 주세요. 아직 위의 분문이 발달하지 않아서 분유가 흘러나오거나 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장 기본은 아이의 시계에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기적으로 깨워서 먹이는 것보다는 요구할 때 먹이는 것이 좋습니다. 어머님이 조금 힘들더라도 향후 2주간은 아이의 요구에 맞춰 주세요. 2주는 우리의 몸이 변화하는 최소의 시간입니다. 트림을 안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트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 트림을 하면서 분유가 입가에 고이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트림을 시키는 것은 분유를 먹으면서 공기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녹변은 분유를 먹이는 아이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상 대변입니다. 아이의 체중이 출생 이후 지속적으로 정상이라면 사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어머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면 아이도 안좋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좋은 느낌의 교감을 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어머님이 여유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장규태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아과 교수
실내온도가 낮을 수 록 애들은 쌩쌩!!
자고 일어났더니 실내 온도가 14도 였다.
겨울이 되면 늘 이정도다.
거실에 해가 들기 시작하면 기온이 오르지만 아주 더디게 더디게
올라서 늘 오전이면 이 정도 기온속에서 생활한다. 난방을 하는데도
이 정도 온도다. 집은 크고 넓은데 사방이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는
이 집은 오래된 목조 창틀로 어디로든 찬 바람이 술술 새어든다.
겨울이면 15도 이하의 온도에서 잠이 들고 한 낮에도 기껏 18도 내외의
기온이 고작이다. 날이 풀려 20도라도 되면 더워서 겉옷을 벗게 될 정도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다.
가난한 친정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때 제일 싫었던 것이
겨울의 추위였다. 더운 물도 잘 안나오던 친정집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일도 고역이었다. 더운 물 펑펑 나오는 따듯한 집에서
살아보는게 그 시절 내 소원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신도시 아파트는 웃풍도 없이 따스했다.
물론 더운물도 펑펑 나왔다. 추위에 대한 상처가 많았던 나는
언제나 집을 따듯하게 하고 살았다.
실내온도 24도가 내려가면 얼어죽는 줄 알았다.
더위는 잘 견디지만 추운것은 질색이던 내가, 그래서 더운 날
마라톤은 하면서도 겨울에 하는 스포츠는 이해할 수 도 없던 내가
따듯하고 편안한 아파트를 떠나 춥고 낡고 오래되고 커다란 주택으로
이사를 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집, 사계절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집, 무엇보다 마당에서 개를 기를 수 있는 집을 얻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것은 '따듯한 겨울'이었다.
한 겨울에 이사한 새 집의 추위는 상상 그 이상으로 혹독했다.
몇 년을 비워 두었던 큰 집은 난방을 하루 종일 해도 너무 너무 추웠다.
사람의 온기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데워주어야 비로소 집이 훈훈해 진다는
사실을 뼈 저리게 실감하며 첫 겨울을 보냈다.
자고 나면 실내 온도는 12도.. 14도라도 나오면 살 것 같았다.
첫 돐도 안 된 막내까지 어린 아이를 셋 이나 데리고 추운 집으로 이사오면서
아이들이 탈 날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큰 아이는 이사를 앞두고 기침이 너무
심해져서 폐사진을 찍을 것을 병원에서 권하고 있었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아이가 새 집에서 더 아프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며 이사를 했는데
찬 공기도 쐬지 않게 하라던 의사의 권고는, 이사하고 나서 바로 펑펑 내린
눈에 열광한 아이가 내복바람으로 마당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큰 아이는 그 겨울 내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마당에서 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침은 점점 좋아졌다. 병원이 멀어 자주 들리지도 않는 사이
어느결에 아이는 나아 있었다. 아파트살때 한 달이 넘게 잡히지 않고 심해지던
기침이었는데 말이다.
첫 겨울엔 잠을 자기전에 절차가 복잡했다.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두툼한 폴라폴리즈
옷을 한 벌 더 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 나는 심지어 장갑까지 끼고 잤다.
아파트에서 필요없던 두꺼운 이부자리를 사느라 큰 돈을 쓰기도 했다.
아파트에선 밤새 이불을 발로 차가며 자던 아이들이 새 집에선 내가 덮어준
그대로 두꺼운 이불 속에서 꼼짝 안하고 잠을 잤다. 잠결에 손이라도 이불 밖으로 나오면
찬 공기에 놀라 재빨리 이불속으로 다시 집어 넣곤 했다.
각오는 했지만 내 몸은 추위에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좋았지만
추운 것은 참기 어려웠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며 겨울 나느라 애쓰는동안
세 아이는 감기 한 번 없이 첫 겨울을 지냈다.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새 살림에 적응하느라 남편과 나는 골병이 들 정도로 몸이 고됬지만
매일 찬 바람을 쐬고 마당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시내의 병원에 언제
들렸는지 기억도 안 날정도로 건강해졌다.
큰 아이는 비염이 있어서 환절기마다 코가 차 오르고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새 집에서 네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환절기가 언제 지났지 싶게 신경쓸 일 없이
가벼운 증세로 지나게 되었다. 첫 돐을 이 곳에서 맞은 막내 이룸이가 제일
건강한 것은 물론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항생제나 해열제같은
병원약을 먹어본 일이 없다. 당연히 몸에 주사바늘이 들어가본 일도 없다.
감기도 걸리고 배탈이 나기도 하지만 며칠 콜록거리면 스르르 낫는다.
아파트에서 살때는 몇 번의 고열로 마음을 조이게 하던 둘째도 새 집으로 오고 나서는
나를 걱정시킬 만큼 크게 아픈 적이 없다. 아파도 혼자 이겨내니 언제부턴가는
아이들 아픈 것을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육아가 얼마나 수월해지는지, 엄마들은 잘 알것이다.
이제 새 집에서 만 4년을 살고 나니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법을 알겠다.
비결은 우선 실외와 실내의 온도차이가 적을 수 록 건강하다는 것이다.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사는 것이 아이를 단단하게 한다.
계절을 몸으로 겪어 내면서 사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여름엔 냉방기로 더위를
가려주고, 겨울엔 지나친 난방으로 아이를 둘러싸면 오히려 아이들 몸은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힘이 키워지지 않아 병이 더 쉽게 들어오는 약한 몸이 되기 쉽다.
매일 밖의 공기를 충분히 쐬게 하는 것, 이것도 중요하다. 덥다고 실내에서 놀고
춥다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면 몸이 단단하게 여물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기회를 주면 아이들 몸의 적응력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적응력을 인위적인 것으로 가려주기 전에 자연스런 환경에 더 많이 내어 놓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더위도 추위도 제 힘으로 이겨내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덕분에 나도 추위에 꽤 단련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내복위에 두꺼운 폴라폴리즈 옷 한 벌을 더 입고 양말도 두꺼운 것으로 신는다.
그리고도 그 위에 다시 두툼한 조끼를 입고 생활한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얇게 입고도
춥다는 소리를 안 한다. 찬 바람이 쌩쌩 불어도 밖에 나가 논다.
눈 내리면 종일 눈을 쓸어야 하고, 개들과 닭들에게 매일 얼지 않은 물을 줘야 하고
늘 몸을 쓰게 만드는 새 집 덕분에 나도 여간해선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되었다.
허리가 아프네, 어깨가 쑤시네 엄살을 하지만 감기 몸살에 걸리는 일은 확실히 줄은 것을 보면
이 집이 내 몸을 더 강하게 단련시킨 것은 분명하다.
에너지도 부족한 나라에서 실내 난방을 지나치게 하면서 사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일이다.
조금 춥게 살아보자. 처음엔 힘들지만 어느새 우리 몸은 더 건강해진다.
덥고 추운 계절을 몸으로 겪고 이겨내며 사는 것이 건강의 가장 큰 기본이라는 것을
새 집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아직도 견뎌야 할 겨울은 길지만 세아이와 추위에 씩씩하게 맞서면서 건강하게
지내보자... 다짐하고 있다.
유방암 수술 환자 40~50대가 많은 이유
햇님군의 사립초 생활기 2편- 나의 7가지 원칙
2011년부터 베이비트리에 몸담아 내년이면 햇수로 4년차.
조회수나 댓글에 상처도 받았고, 글을 어찌 쓰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살짝은 예측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사립초라는 타이틀이 가져오는 뉘앙스나 일년동안 생활하면서 무엇을 했는지 정리한 표는
과교육, 자연스러운 교육, 성공적 교육에 대한 의미, 이 땅에서 살아남기 등등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킨거 같다.
반트리파의 논란이 떠오른 것처럼 그간 베이비트리엔 너무 착하고 행복한 글만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일상 혹은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일상에 만연한 교육문제에 대한 화끈하고 솔직하고 노골적인 글이 없었다는 것.
그걸 굳이 내 아이 일상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맞나싶지만,
나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교육문제, 사회문제를 가시화해보고 싶다.
나는 2012년 1월 "돈, 시간,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이라는 칼럼에서
유아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철학은
1. 시간
2. 돈
3.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
이라고 이야기했다.
부자든 거지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은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올 한해 아이를 사립초에 보내고 아이와 함께 보냈던 하루 24시간.
햇님군은 하루 10시간씩 혹은 더 많이 충분히 잤다.
무언가 더 많이 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지 않았고,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엄마가 운전하며 아이를 여기저기 실어나르지도 않았다.
잘 자란 아이덕분에 대중교통 이용을 잘 했고,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뚜벅이엄마로 정말 재미있게 잘 다녔다.
그렇다면 어떻게 누군가의 눈엔 과교육같아보이고, 자연스러워보이지 않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까?
바로 7가지.
7가지를 생활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 영어수학 대형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2. 학습지를 하지 않는다.
3. 매일가는 피아노와 태권도를 하지 않는다.
4. 잠수네식 다독을 하지 않는다.
5. 티비 만화를 매일 보지 않는다.
6. 엄마표 학습이랍시고 애랑 공부하지 않는다.
7. 사비가 많이 들고 멀리 나가는 체험 등을 하지 않는다.
사립초를 다니기때문에 5교시 혹은 6교시의 수업을 했지만 하교후 영어수학대형학원에 다니지도 않았고
요즘은 보통 6세부터 한다는 구땡, 빨xx, 튼모 영어나 ㅇ 선생님 이런 학습지를 하지 않았다.
전업주부인 덕분에 아이케어가 걱정되지 않았으니 피아노학원에 태권도장가는 일반적 스케줄을 짤 필요도 없었고
책이라면 참 좋아하지만 잠수네식 다독이 어린 아이에게 과연 합리적인 방법론인지 의문이기에 다독 강요로 아이 시간을 빼앗지도 않았다.
학교에 입학하니 신세계가 열려서 함께 놀 친구와 형님들이 늘어났고, 덕분에 만화영화나 장난감 갖고 놀 시간따윈 사라졌다.
나는 고작 8살짜리 외동아들 엄마의 좁은 식견을 가졌다.
나처럼 하면 애가 공부잘하고 뭐가 좋고 그러니까 이렇게 따라하세요라는 글을 쓰고
그걸 통해 또다른 사교육시장을 만들어내고 싶진 않다.
다만 베이비트리를 통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요즘 화두인 '안녕들하십니까'처럼.
당신의 교육은 안녕들하십니까?
#1.
7가지 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글은 다음 글에서 하나씩 풀어보겠다.
#2. 올한해 내가 가장 열심히 과교육했던 생태체험!
베이비트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심히 아이와의 생활을 글로 남겼던 곳을 소개해본다.
성북생태체험관 나누기 http://cafe.naver.com/sbgreensharing/2811
12월 12일. 정말 많은 눈이 내렸던 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햇님군은 한해동안 생태수업을 함께 했던 형들과 마지막 생태수업을 마무리하고
산속에서 눈을 맞으며 새먹이를 달기도 하고 눈싸움을 하기도 하며 놀았다.
수업가다 만난 똥강아지~ 우리를 따라오길래 생태체험관에 데려와 먹이를 줬었다.
마지막 수업은 새에 대해서 배우고, 겨울철 새먹이를 위해 쇠기름을 준비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난 늘 아이의 관찰자에 가까운 역할을 해왔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게 도와주지않고 지켜보는 입장.
눈에 그냥 누워버린 햇님군. 영화속 장면은 그냥 나오는게 아니더라~!
개구쟁이 아이들과 단체샷 찍기도 힘들었던 우리 선생님.
별 네 개짜리 리조트에 전용 수영장!
엄마, 우리 어제 바퀴달린 오리배 봤지, 땅에서는 버스가 되고 물에서는 배가 되는.
우리가 어제 갔던 데가 바로 여기야.
여기 지도에 인어사자(merlion) 그림이 있잖아. 우리가 여기서 오리 배를 본 거라구. 저기 사과 건물도 있고...
아, 맞다. 여기가 바로 레이저쇼 하던 데야.
관람차에 불 들어오는 것도 봤는데. 관람차는 이렇게 돌아가더라. 엄마, 잘 봐, 이렇게, 이렇게...
“엄마, 이거 내 가방이다.”
우리가 짐을 싸는 동안 해람이가 옆에서 그동안 모은 관광 안내 브로셔를 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비닐봉지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서울에 해람이 배낭도 따로 있긴 한데 해람이가 가방을 스스로 못 챙길 것 같아서, 결국 내 짐이 되겠다는 생각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동안 해람이 물건은 아루 가방에 넣어서 아루가 들고 다녔는데 해람이가 다짜고짜 가방 독립 선언을 한 것이다.
“우와, 해람이 가방 멋진데!!”
“포쓰있어!!!”
좌린과 내가 멋있다고 한마디씩 했더니
“흥, 나는 등에 메는 배낭도 있고 이렇게 옆으로 메는 작은 주머니 가방도 있어.”
해람이의 비닐 가방(?)에 쏟아지는 찬사에 샘이 난 아루가 말했다.
“누나, 내 가방도 등에 멜 수 있어. 이거 봐! 그리고 이렇게 손목에 차도 되고, 두 손으로 들어도 되고. 내 가방도 좋지??!!!"
해람이가 제 가방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비닐봉지 손잡이에 팔을 하나씩 껴서 등에 메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났다.
해람이도 가방이 갖고 싶었구나.
여행에서 짐을 싸고 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일주일에 한 번 숙소를 옮길 때마다 치르는 이 중요한 일에서 해람이를 쏙 빼놓은 것이 조금 미안했다.
“비닐 봉지 좋은데! 현지인 스타일이잖아.”
가방을 사줄까, 하는 내 말에 좌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현지인 스타일!
브라질을 여행할 때였다. 브라질은 치안이 나쁘다고,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리오 데자네이루에 머무는 기간에도 버스 강도 사건이 있었다. 무장 강도가 버스 기사를 위협하여 버스를 외딴곳으로 끌고 가서 강도 행각을 벌인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했다.
여행 안내책에도 무장 강도와 도둑에 대한 장황한 경고와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 길게 적혀 있었다.
타겟이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현지인처럼 입고 행동해라, 현지에서 옷을 사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귀중품은 되도록 가지고 다니지 말고, 카메라는 비닐봉지에 넣어 다녀라.
이러한 충고 때문인지 리오의 관광 명소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어설픈 옷차림에 비닐봉지나 추레한 가방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도 여행자들은 표가 나는 법, 길을 걸으면서 좌린과 '여행자 찾기'놀이를 하곤 했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맞은편에 앉은 한 남자를 보았다. 저 사람이 여행자일까, 현지인일까, 내기를 걸었는데 그 남자가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좌린과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든 그것은... 마미야 중형 카메라였다!
해람아, 맞다. 소중한 것일수록 티 안 나게 비닐봉지에 넣어 다니는 게 좋다.
수륙양용 오리배 브로셔
언더워터월드 수족관 브로셔
시티투어 이층 버스 브로셔
맥퀸 그림 카드
빨강, 파랑, 초록, 흰색 버튼들...(아루와 경쟁적으로 수집한 펫트병 뚜껑들)
해람이 가방 속의 귀중품들.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일 드디어! 우리가 몹시 고대하던 보르네오 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그리고 싱가포르의 물가, 깔끔하지만 고시원 느낌이 나던 게스트하우스로부터 벗어나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지난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공항까지 가는 에어아시아 무료 셔틀을 알아내어 나는 몹시 우쭐해졌다.
싱가포르 이민국의 바리깡으로 각 잡은 단정한 남자를 지나쳐 자면서 뒷머리 눌린 더벅머리 말레이시아 남자를 보니 배시시 웃음이 났다.
또 한 가지, 오늘 우리가 잘 숙소는 공항 근처의 리조트, 무려 별 네 개짜리 리조트라는 사실! 원래 계획은 조호바루에 새로 생긴 레고랜드를 가려고 했는데 테마파크는 그만 가자고들 해서 대신 리조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공항 바로 옆에 있는 리조트가 특별 할인을 하시길래 덥석!
수영장에서 오래 놀고 싶어서 입실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갔는데
이런, 오늘이 수영장 청소를 하는 날이란다. ‘수영장 정기 점검 및 청소 일입니다. 투숙객의 수영장 사용을 제한하여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리가 이 리조트에 온 이유는 첫째도 수영장, 둘째도 수영장, 오로지 수영장 때문이었는데.
실망스러웠지만, 아이들이 더 실망할까 봐 그런 마음을 감추고 방에서 조금 쉬었다가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비행기 타기 전까지 실컷 놀자, 수영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오늘은 구경만 해볼까? 자연스레 발걸음이 수영장으로 향했다.
청소하는 직원에게 괜히 말 붙여 귀찮게 이것저것 묻고 근처에서 계속 얼쩡거렸더니, 수영장을 보며 군침 흘리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수영장이 한 군데 더 있고 거기는 오전에 청소를 다 했다고 알려주었다.
야호! 방으로 달려가 물놀이 준비를 해서 다른 수영장을 찾아갔다. 리조트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넓은 골프장도 있단다.
수영장 가는 길에 만난 이구아나
엄마, 구부려 빨대 되게 크다!
또 다른 수영장은 국제 규격의 50미터 레인 수영장. 투숙객이 별로 없는지, 청소하는 날이라고 모두 체념한 건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와~ 우리 가족 전용 수영장이네! 모두가 입이 하마처럼 벌어져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방수기능이 있는 아루의 똑딱이 카메라로 물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물 위에는 해람이가 동동 떠 있다.
내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해질 때까지 신 나게 놀았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에도. 드넓은, 어제 청소를 해서 깨끗한 수영장을 우리가 독차지했다. 날씨도 끝내주게 파랗다.
리조트에서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미리 알아서 청소도 싹 해 놓고.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 못 오게 한 건 아닐까?
야자나무에 둘러싸인 멋진 수영장에 누워 하늘을 보며 계속 실실거렸다.
십 년 전 인도를 여행할 때부터 호시탐탐 노렸던 룽기(치마처럼 입는 천)에 드디어 익숙해진 좌린, 원피스보다 아빠의 너덜거리는 티셔츠를 더 좋아하는 따님.
나도 안다. 이것이 호화 리조트에 어울리는 리조트룩(look)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러나 우리는 전용 수영장을 가진 사람들 아닌가!
방도 좋고 바삭바삭한 침대 시트의 느낌도 좋고.
깔끔하고 쾌적한 욕실에서 밀린 빨래를 해 널었다.
엄마, 이게 뭐야?
칫솔, 치약이잖아.
그럼, 이건?
구두약! 어머, 여기는 구두약도 있네.
아이들이 화장실에 비치된 일회용품들, 종이 상자로 포장된 것을 하나씩 열어 보며 신기해했다. 마치 선물 상자 열듯이.
일회용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호텔에 비치된 세면도구를 뜯어 쓰지 않는다. 다만, 조그만 샴푸와 물비누를 보면 귀엽고 예쁘다는 생각에 자꾸 챙기게 된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커피 숟가락을 하나씩 챙겼다. 병원놀이 도구라고, 청진기로 썼다가, 내시경으로 썼다가 구강 검진 막대로 썼다가...
전용 수영장까지 마련해준 리조트 측에는 상당히 미안하지만, 여기서 하룻밤 자며 방세 말고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근처에 식당이 없다는 걸 미리 알아서 공항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히 사서 들어왔다.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분위기를 내기에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쓰레기 치우고 잘 정돈해 놓고 방 청소하는 분들을 위한 팁은 잊지 않았다.
제가 다녀본 리조트 중에 최고였어요! 고맙습니다!
체크아웃하며 프론트 직원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는 센스!도.
남편,아이 없이 즐기는 엄마들만의 파티
거의 매주, 송년회 약속이 하나쯤 잡혀있는 12월도 벌써 중순을 훌쩍 넘어섰다.
작년까진 어느 자리건 아이들과 혹은 남편까지 함께 참석했지만, 올해는 그러기가 웬지 부담스러웠다.
가만 있어도 바쁜 이 12월에 가족들 모두가 참석하는 건, 어떤 면에선 저녁 한 끼 다같이 해결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가능한 한 같이 데리고 움직이는게 차라리 편하기도 하고.
그런데 둘째가 이제 좀 커서 그런걸까.
요즘은 엄마없이 아빠, 누나랑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는 둘째 덕분에
친구들과 잠깐 만날 일이 있을 때는 되도록 맡기고 혼자 다니고 싶다.
이제 어딜 데리고 가면, 두 아이는 자기들이 알아서 잘 노는 편이긴 하지만
먹는 것도 신경써서 챙겨줘야하고, 둘째는 아직 화장실을 따라가야하고,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하다보면, 사람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늘 끊기게 된다.
아. 1년에 한 번 있는 송년회만큼은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훌훌 아무런 준비없이, 아이 물건이 가득 든 짐 보따리도 없이,
홀가분하게 다녀왔으면!
친구들도 나처럼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마침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이제 아빠랑만 있어도 잘 노니까, 이번엔 우리 엄마들끼리만 한번 만나보는 거 어때??"
물론 너무 좋지! 안 그래도 남편은 사흘이 멀다하고 회사 사람들, 학교 동기들이랑 송년회다니느라
맨날 바쁜데, 나도 한번쯤은 애들 맡기고 살랑살랑 혼자 가고싶어!
올해 초까지 살던 아파트 친구들이, 아파트 내에 있는 파티룸을 예약해서
(이제 나는 이곳 입주민이 아니니 친구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이용하기가 어렵다)
12월 어느 저녁, 드디어 엄마들만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리운 예전 아파트의 파티룸을 오랫만에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음악들이 잔잔하게 들리고
테이블에는 음식이 하나 가득~ 저녁준비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
자리, 그것도 신경써야 할 식구들 없이 오직 내가 먹고 마실 것에만 집중해도 된다는 사실이
눈물나게 고맙다. 다른 엄마들도 모두가 한마음.
먹음직스런 음식들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듯,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벌써 수다판이 벌어져
푸하하 캬캬캬 난리도 아니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이날 파티는 각자 2만원 정도씩 낸 회비로 마련되었는데
스시나 술, 음료는 사 오고, 탕수육, 피자, 샐러드, 치즈케잌 등은 솜씨좋은 엄마들이 미리
재료를 구입해 집에서 만들어왔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회비만 달랑 내고 빈 손으로 참석했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영희씨, 작년까진 송년회 때마다 음식하느라 애썼잖아!
올해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즐겨."
그렇게 말해주는 다른 엄마들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이런저런 검사와 검진 때문에
병원을 다니느라 바쁜 내 사정을 아는 이 친구들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아, 내가 이 아파트에서 8년동안 산 게 아무것도 아니진 않았구나 ..'
싶어 뭉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오코노미야끼!!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엄마가 한 사람에 한 접시씩
손수 일일이 구워 즉석에서 소스를 뿌려 따끈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웬일로 앉아서 호강을 하는 나는, 양배추와 돼지고기가 듬뿍 든 오코노미야끼를
감격스러워하며 먹으면서도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닦으며 굽고 있는 그 엄마를 보고 있자니
또 짠해졌다. 음식 노동의 고달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평소에도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 집안 살림에 식당일에,
모처럼 여자들끼리만 모인 이런 자리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그녀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이렇게 여자들끼리 온갖 수다보따리 다 풀어놓으며 배꼽을 잡고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서른 둘에 벌써 아이 셋을 키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가 열심히 들어주며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러다, 다들 요즘 손에 물 넣으면 너무 아픈 이야기에 또 한번 공감 100프로 모드.
이날 유치원에서 떡치기 행사를 돕고 온 엄마는, 찬물에 손 적셔가며 떡 주무르고 하는데
엄마들이 모두 "아.. 손이 너무 아파.. "
하고 속삭이더란 말을 듣고는 또 한번 공감과 눈물바다 모드.
서로의 손을 막 보여주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그나마 내 손은 나은 편, 몇몇 손톱 둘레가 모두 빨갛게 부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구.. 저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손 아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듯이 어떤 고무장갑이 좋고, 무슨무슨 약을 바르고 자면 빨리 낫는단다, 식의
정보교환이 이어지는데, 그러다 결국 겨울이 끝나야 낫는다! 는 결론과 한숨으로 마무리..
너무 맛있고 너무 즐거웠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루 저녁 몇 시간만이라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수다떨며
내가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둘째를 4년만 키우고 나면 훨 수월하다더니, 이제 나에게도 그런 때가 온 것일까.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 자신에게 속삭여 보았다.
'영희야, 그동안 수고했어.'
엄마들만의 파티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몇몇 엄마들도 너무 고맙다.
내년 이맘때에는 더 건강해져서 맛나고 푸짐한 한국요리로
그녀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엄마들이여! 시간내기 어렵겠지만 우리들만의 파티, 좀 더 즐겨봅시다.
아이들에게 몇 배는 더 생기있는 엄마로 돌아갈 수 있어요.
남편들이여! 아내가 가끔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 주세요.
그래서 술자리에 가 있는 배우자를 기다리며, 혼자 아이들 돌보는 마음이
어떤 건지 직접 겪어보세요.
새해엔 부부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더 진화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마일리지 쌓아서 다음에 또 보자”
» 한겨레 자료 사진
초등학교 동창회가 다시 불이 붙었다. 10여년 전엔 ‘아이러브스쿨’이란 웹사이트가 주도하더니, 이번엔 ‘밴드’라는 모바일서비스가 주역이다.
아이러브스쿨 시절 20대 중반이던 우리는 대부분 미혼이었다. 아직 학생이거나 또는 사회생활 초년병인 푸른 시절이었다. 당시 꽤 많은 선배님들은 추억여행의 금도를 넘어서면서 가정불화를 일으켰다. 사회적 문제가 됐다. 싱글인 우리는 자유로웠다. 오히려 그 시절 만난 동창과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흐지부지 10여년 연락이 끊긴 채 지냈다. 30대 후반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는, 일부 ‘화려한 싱글’을 빼면, 다수가 엄마, 아빠가 돼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저마다 자기를 닮은 아이들 사진이었다. 고향 사투리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눴다. 한 친구가 ‘우리는 바람피우지 말자’는 글을 올렸다. 다들 킥킥댔다.
어느날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다가, 이럴 게 아니라 실제로 한 번 보자고 했다. 몇주 뒤 금요일 저녁 남녀 각각 절반씩 열댓 명이 모였다.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가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두 여자동창의 전화기에 불이 났다. 전업주부인 아내들에게 “왜 아직 안 오냐”며 귀가를 재촉하는 남편들의 전화였다.
10분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던 한 친구의 하소연. “사실 나도 할 말이 없지. 예전에 내가 그랬거든. 10분마다 전화 걸어서 빨리 안 오고 뭐하냐고 했지. 그때는 너무 밉더라고. 나는 혼자서 집에서 애들한테 시달리는데, 자기는 뭘 하는지 맨날 밖에서…. 일하다보면 그럴 일이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속상해서. 그런데, 참 우습지.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지. 남편이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야.” 아이 넷의 엄마인 친구는 클클 웃더니, “이젠 가야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친구는 싸늘한 표정으로 한참 전화통화를 하다가, 테이블로 돌아와 수다에 재합류하기를 반복했다. 이 친구는 자리가 파한 새벽 4시까지 남아있었다. 귀가 뒤 아침 ‘밴드’에는 “내 결혼생활 8년을 걸고 마신 술이었다. 남편이 삐쳤다. 우리 이제 10년 뒤에 보자”는 비장한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튿날 “남편 화 풀림 ㅋㅋ (남편이) 베이컨 넣고 볶음밥 해줘서 딸이랑 먹고 있음”이란 ‘낭보’를 전해왔다. 다행이었다.
남자동창들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다들 마음에 미안함과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정께 마감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설마 아직 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들렀던 길이었다. 집에는 아무 얘기를 하지 못했다. 모임 참석 뒤 토요일 아침 티 안 내려고 평소와 똑같이 일어나 주말을 보냈더니 그 주는 유독 피곤했다. 결국 지금까지도 말을 못하고, 이 지면을 빌어서 ‘동창회 참석’을 고백하려니 미안스럽다.
그날 모임 뒤 ‘밴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마일리지 쌓아서 다음에 또 보자.” 가정에 충실한 모습으로 믿음을 충분히 쌓은 뒤, 다음 동창회 때는 시간 걱정 말고 놀자는 뜻이다.
10여년 전 동창회 땐 연애와 취업 얘기로 밤을 지새웠건만, 이제는 제일 큰 화제가 애 키우는 얘기다. 애들은 몇이냐, 몇 살이냐, 어떻게 키우냐, 뭐하고 노느냐, 어디가 좋냐, 뭘 가르치냐 등등 끝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대체 선배들은 어쩌다 바람이 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나도 앞으로 마일리지를 쌓겠다는 심정이긴 한데, 아, 아무래도 뒤늦은 고백 탓에 되레 좀 까먹었지 싶다.
몸을 비비 꼬며 밤 젖
모유 수유 57일 차
밤 젖
밤에 바다가 울면 겨우 눈을 뜨고 기어가서 젖을 물린다.
졸음은 쏟아지고 몸은 쑤시고 꼬이고 난리다.
낮의 힘듦과는 다른, 밤의 고통이다.
두 달이 다 되어도 적응이 안 되고 힘들기만 하다.
어느 날은 깜빡 졸다가 깨어나 보니
바다도 나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고 맞는 몽롱한 아침에는
‘어젯밤도 해냈구나. 자, 또 시작이다!’
하는 비장함이 있다.
모유 수유 60일 차
젖 집중
요즘 몇 번 젖을 물려놓고 드라마를 보느라
바다가 젖 먹는 것에 관심을 못 쓰고 얼렁뚱땅 수유를 마치곤 했다.
드라마는 재밌었지만 바다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가 이 말이 떠올랐다.
‘음식에 만드는 이의 마음이 담겨야 음식을 먹는 사람의 몸과 영혼에 영양이 간다.’
젖을 주는 데에도 정성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앞으로 젖 주면서 드라마 보는 것은 안 하기로 했다.
귀로 듣는 것만 할 것이다.
소심한 아빠여, 아이에게 자유를 허하라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이불속이나 뽀뇨집(소형 칠판위에 이불을 덮어 씌운 곳)에 숨어버리는 뽀뇨.
잠을 늦게 자서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그런 거라는 판단을 엄마가 내리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일하러 가기 싫듯 뽀뇨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이다.
추석 때 고향집에 가서 누나들과 애들 이야기를 한 참을 했는데 조카들 4살, 5살 때는 어린이집에 가는 둥 마는 둥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끔은 뽀뇨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진다.
아빠도 요즘 아침 잠이 많아서 어떨 땐 배웅을 하고 어떨 땐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가기 싫은 뽀뇨와 보내려는 아내 사이에서 마음의 갈등이 인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이라면 “뽀뇨 내가 볼게요. 오늘은 집에서 놀지 뭐”하면 되는데
근래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뽀뇨의 등을 밀게 된다.
바지를 쫓아가 입히고 물 묻힌 손수건으로 얼굴을 딲고 가방 찾아서 챙기고 신발까지 억지로 신겨서 가야 하는데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아침부터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둘째를 가져서 몸이 힘들다보니 더 그런 듯 한데 뽀뇨에게 자유를 주고 싶은 마음은 충만한데 책
임을 질 수 없는 처지가 가끔은 안타깝고 내가 제대로 아빠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부모의 시간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울 수 있는 다른 것이 있어서”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전자 쪽으로 기우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어린이 집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피고 선생님과 피드백하며, 아이에게 일과를 물어보거나
친구 사이가 어떤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딱 그 정도까지인데 어린이집(학교)을 가기 싫어도 가야되는 제도적(?)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 진짜 아빠인지,
아이가 정말 가기 싫어할 때는 자유를 주는 것이 아빠의 역할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에 홈스쿨링을 하는 아빠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도 있고
아는 누나가 몇몇 동네분들과 모임을 조직하여 직접 아이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참여하는 얘기도 듣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보통 정성으로는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4살인데도 하루 어린이집 못 보낼까봐 전전긍긍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앞으로 그렇게 할 용기와 자신이 있을까?’라는 소심한 아빠가 된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어린이집에 자연스럽게 보내기 위해 ‘밴드’도 붙여주고
새로 꺼낸 ‘떡볶이 단추 달린 코트’도 입혔는데 예상한 것보다 바로 반응이 와서 한참을 웃었다.
봉고차를 타자마자 바로 자랑을 시작했다는 뽀뇨는 딱 그 나이, 4살인 것이다.
아빠도 딱 그 나이에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날씨 탓인지 몰라도 어린이집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 기억이 참 별로 없다.
유치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1학년 때는 학교 가기 싫어 늦게 갔다가 복도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4~5살 때부터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가기 싫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아빠의 눈높이겠지만 아내와 내 마음에게는 “뽀뇨 내가 볼게요”하며 책임지는 아빠가 되고,
뽀뇨에게는 “아빠, 심심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아끈 다랑쉬 오름을 뽀뇨와 찾았다. 아직 뽀뇨는 오름보다 친구가 좋은 나이 ㅎㅎ>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올챙이송 돌림노래"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