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맥 바넷 글, 존 클라센 그림/길벗어린이(2013)
벌써 겨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색을 잃고 있다. 비록 크리스마스와 눈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겨울은 나가서 놀기가 어렵다. 집에 오래 머물다보니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장난을 치는데 그 끝은 부모의 호통인 경우가 많다. 맥 바넷이 글을 쓰고 존 클라센이 그림을 그린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의 배경은 그런 겨울이다. ‘어디를 보아도 새하얀 눈과 굴뚝에서 나온 까만 검댕밖에 보이지 않는 작고 추운 마을’에서 애너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너벨은 어느날 조그만 상자를 발견하는데, 그 상자에는 갖가지 색깔의 털실과 대바늘이 들어있다. 놀랍게도 상자의 털실은 아무리 옷을 떠도 줄어들지 않는다. 애너벨은 털실로 친구들과 이웃들, 강아지와 곰, 심지어는 집과 나무에게도 알록달록 옷을 입힌다.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며 끝도 없이 나오는 털실에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끝이 두렵다. 오늘 가진 것은 사라지더라도 내일은 다른 더 나은 것이 주어질 수 있다고 믿기에는 아직 어리다. 아이들은 순간에 살고, 즐거운 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한한 것, 끝나지 않는 것에 매료되곤 한다.
애너벨은 털실로 겨울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다. 애너벨이 원래부터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마법의 털실 상자를 주웠을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하며 부러워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이다. 다만 그것이 막막할 뿐. 그런 소망을 대신 이뤄주는 애너벨에게 아이들은 빠져들고 함께 좋아한다.
애나벨은 여러 사람과 동물에게 스웨터를 짜준다.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도 털옷을 입힌다. 재미난 점은 그의 털실은 끊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를 가늘게 연결하고 있다. 털실은 애너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자, 사랑이 이어주는 연대다. 그런 사랑과 연대만이 겨울을 버티게 한다. 얼어붙는 시대에 떨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서 따뜻함을 자아내 서로를 감싸야 한다. 그래야 애너벨처럼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짧은 그림책에서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한겨레 신문 2014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