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꼭 나쁜 것일까
무조건 말리는 게 답은 아니다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정혜경 옮김/문학동네·1만2800원
“싸우자, 싸우자~.” 대여섯살짜리 꼬마, 특히 혈기 왕성한 남자아이들은 ‘놀자’는 표현을 이렇게 해서 엄마를 당황시킨다. 마치 뱃속에서 그렇게 훈련이라도 받고 나온 듯 틈만 나면 로봇인형이나 장난감 총칼을 들고 싸움을 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도 불안하기만 하다. 잡아당기고 툭탁거리고 밀고 넘어지면서 친구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게 싸움인지 놀이인지 구별이 가지 않고, 금방이라도 거친 싸움으로 불길이 번질까, 다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사랑스러운 그림책 제목에 왜 ‘위대한’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썼을까.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영웅심리가 깔려 있으니 그에 걸맞은 표현을 붙인 것 같다. 일단 이 책은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 최대한 빨리, 강하게 아이에게 주입하려는 엄마들의 기대를 깬다. 짐작건대 기원전 100만년 전에 “이 매머드는 내 거야!” “아니야, 내 매머드야!” 싸우는 인류 최초의 결투가 벌어졌을 테니 싸움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태어났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싸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어른들의 꾸짖음에도 반기를 든다. “모르는 소리. 싸움은 건강에 아주 좋다. 싸움의 효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팔다리 관절이 단련된다.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된다. (중략) 따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아이들의 생각만 옹호하지는 않는다. 나쁜 싸움도 있다. “큰 사람 대 작은 사람. 정의롭지 못한 싸움이다. 3 대 1. 공정하지 못한 싸움이다. 이러한 경우, 싸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진정한 싸움이란 이런 거다. 똑같은 키, 똑같은 몸무게, 똑같은 수.” 몇몇 어른들의 싸움은 더 나쁘다. 진짜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 같은 것. “진정한 싸움은 놀이이지만, 증오 때문이라면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 싸움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거칠게 다투느냐가 아니라 치고받더라도 “타임!”을 외치면 끝낼 수 있고 내일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시작했어?” “왜 싸웠냐?”라는 어른들의 추궁은 아이들에게 의미도 없고 깨달음도 주지 못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잘잘못을 가리고 꾸중하는 훈육을 반복하며 스트레스 받는 엄마들에게 힌트를 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