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오카다 준 글, 박종진 옮김, 윤정주 그림/보림 펴냄(2004)
아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보다가 그 시절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흔적을 만나면 단숨에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오카다 준의 <신기한 시간표>도 그런 책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엄마가 본 뒤 자기 책으로 삼고 싶다고 했고 단편마다 별점까지 매겨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화를 읽을 무렵 아이는 <해리 포터>와 <고양이 학교> 시리즈를 비롯해 판타지의 세계에 흠뻑 빠져 지냈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는 등교할 때부터 마침내 모든 학생이 집으로 돌아간 저녁까지 학교에서 벌어질 법한 판타지가 연작 형태로 벌어진다.
단편 중 하나인 ‘돌멩이’의 주인공 료타는 오늘 이상할 만큼 운이 좋다. 엄마가 마음에 딱 드는 점퍼를 새로 사준 것도 그렇고, 지각을 할 뻔했는데 선생님이 늦게 들어와 무사히 넘어간 것도 그렇다. 스스로 ‘파워’가 생겼나 싶은 날이다. 한데 친구 군페이가 새로 산 점퍼의 등에 매직으로 낙서를 하고 말았다. 순간 ‘군페이 녀석, 돌멩이나 되어 버려라’ 하고 중얼거린다. 한데 다음 시간 군페이가 사라지고 말았다. 장애가 있는 군페이는 가끔 제시간에 교실에 돌아오지 않고 없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군페이를 찾아 나선다. 료타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했던 말을 떠올리며 혹시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뿔싸 군페이의 책상 서랍 속에 돌멩이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군페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다. 이제 료타는 안절부절못한다. 정말 군페이가 돌멩이가 되어 버린 거라면 어떻게 하지?
세상의 모든 학교는 믿거나 말거나 싶은 황당한 이야기들을 한두 가지는 간직하고 있다. 수업 중이라 조용한 복도를 혼자 걸어갈 때, 또는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어쩌다 학교에 혼자 있게 될 때 그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가끔은 신기할 걸 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배식을 한 뒤 급식실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혹시 마녀로 변해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먹을거리는 나누지는 않을까. 혹시 청소도구함에 선생님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의 이런 상상이 이 동화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처럼 <신기한 시간표>는 아이들이 어떤 순간에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그 판타지 안에서 두려움과 걱정, 불안을 이겨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판타지는 일상세계 너머 혹은 일상세계 안에 숨은 또 하나의 세계다. 아이들은 이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고 인간이 지니게 마련인 걱정과 불안, 시기와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경험하고 순화한다. 어른들은 간혹 아이들의 이런 환상세계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사실 어른들도 비슷한 꿈을 꾼다. 매주 복권을 사며 요행을 바라는 것 역시 판타지와 같은 백일몽이다.
작가는 ‘꿈꾸는 힘’이나 ‘어두워지면서’ 같은 단편을 통해서 어른들에게도 그 세계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으로 세상을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든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다. 초등 3~4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